기억력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어렴풋한 어릴 적 기억을 헤집어 보면나의 취향에 대해 엉성하게나마 인지하기 시작했던 것은 tv 애니메이션을 보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수많은 마법소녀들이 tv를 휘젓던 시절이었다. 세일러문이 문크리스탈 파워로 소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흩날리는 웨딩피치의 드레스 자락도 만만치 않았다. 정의로운 괴도 천사소녀 네티와잘생기고 다정한 오빠에 대한 로망을 불러 일으키는 카드캡터 체리도 있었다.
물론 세일러문의 압도적 인기는 어느 작품도 넘볼 수 없었다. 내 또래 모두는 당연하다는 듯 세일러문을 보면서 자랐다. 웨딩피치도 물론 대단한인기를 누렸지만(유독 한국에서 인기였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굳이 따지면 세일러문은 필수, 웨딩피치는 선택의 영역 같은 느낌이었다. 웨딩피치는 세일러문에 견줄 수 있는 단 하나의 작품이었지만 그것이 한계였다. 그 누구도 웨딩피치가 세일러문보다 인기있다 하지 못했고 그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나는 웨딩피치가 좋았다.
그 당시의 나에겐 웨딩피치가 세일러문을 넘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것이 너무나 커다란 좌절이었다. 내 눈엔 훨씬 예쁘고 재밌었던 웨딩피치는 어디에서나 2순위였고, 모두가 세일러문 이야기를 먼저하고 나서야 웨딩피치를 얘기했다.이상한 데서 의리가 있었던 나는 일부러 웨딩피치를 더 이야기하고 더 떠올렸으며, 그러면서 실제로 웨딩피치를 조금씩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나 1등의 권능이란 대단한 것이었다. 세일러문 주문을 외고, 세일러문 노래를 합창할 수 있는 것은 당시 또래문화에 속하기 위한 필수적 덕목이었다. 세일러문 놀이를 하려면 세일러문 인형이 있어야 했고, 카드가 있어야 했고, 캐릭터의 특징과 서사를 알아야 했다. 나도 세일러문 애니메이션을 챙겨 보았고, 세일러문 인형을 샀고 카드를 모았다. 1등이 1등인 이유가 있는 것이라, 보다보면 당연히 재미있었고, 캐릭터들은 각각 서로 다른 매력이 있었던 데다 턱시도 가면은 설레고 멋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재미를 느끼면서도 나는 뭔가 답답했다. 좋은데 좋아하면 안될 것 같았다. 웨딩피치에게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 조그만 어린 아이의 머릿 속에 일부일처제의 고리타분한 담론과 정절 사상이 벌써 주입이라도 된건지, 내 마음 속 1순위를 두고 대세에 휘둘려 관심을 주고 마음을 준 내 자신이 치졸하게 느껴지는 거다. 그러나 그때는 처음 겪는 이런 감정이 낯설었고, 뭐라 정확히 설명하기에 무척 미묘한 느낌이었기 때문에 그냥'답답하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답답하다. 후련하지가 않다. 뭔가 마음의 길이 막혀있다.
동시에 또다른 취향도 자라나고 있었는데 돌이켜보면 그건 내 모범생 컴플렉스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왜 웨딩피치의 주인공이 (릴리가 아니고) 피치여야 하지? 왜 세일러문의 제목은 (머큐리가 아니고) 세일러문이어야 하지? 나는 그게 좀 억울했다. 우리 릴리랑 머큐리가 더 착하고 예쁜 것 같은데? 꼬마였던 내 눈에 피치와 세라는 지나치게 왈가닥에 말썽쟁이였다. 호기심 많아 여기 저기 분주히 돌아다니며 사고를 치거나, 혹은 사건에 휘말리는 그들은 물론 귀엽고 호감이었지만, 그런 캐릭터만이 주인공을 독점하는 게 심술이 났던 거다.
착하고 온순하고 규칙에 순응하고 조용한 아이가 되는 것. 그것만이 일고여덟살의 내가 배우고 학습해 온 '정답'이었다. 또래보다 어른스럽고 의젓하다는 평가가 어린 내 어깨를 으쓱하게 하는 칭찬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주인공 = 좋은 것'이라는 공식과 '좋은 것 = 착하고 온순하고 조용하고 어른스러운 것'이라는 두 개의 공식이 내 안에서 충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피치와 세일러문이 주인공일 수 밖에 없는, 그래야만 스토리가 재미있어 질 수 밖에 없음을 당연히 이해한다. 게다가 요즘의 내가 웨딩피치와 세일러문을 다시 본다면 아마 릴리와 머큐리보다 피치나 세일러문을 더 귀여워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당시의 꼬마에게 이 문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난제였고, 그 혼란스러움은 나를 조금 심술맞고 어딘가 꼬여있는 청소년으로 자라게 하는데 아주 약간의 기여를 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이 2등 취향 컴플렉스의 시작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