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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롬 Jun 07. 2019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김하나X황선우)

책기록#3

우리나라 1인 가구 비율의 27%를 넘는다고 한다. 1인 가구는 원자와 같다. 물론 혼자 충분히 즐겁게 살 수 있다. 그러다 어떤 임계점을 넘어서면 다른 원자와 결합해 분자가 될 수도 있다. 원자가 둘 결합한 분자도 있을 테고 셋, 넷 또는 열둘이 결합한 분자도 생길 수 있다. 단단한 결합도 느슨한 결합도 있을 것이다. 여자와 남자라는 원자 둘의 단단한 결합만이 가족의 기본이던 시대는 가고 있다. 앞으로 무수히 다양한 형태의 ‘분자 가족’이 태어날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 가족의 분자식은 W2C4쯤 되려나. 여자 둘 고양이 넷. 지금의 문자 구조는 매우 안정적이다. (분자 가족의 탄생)
다른 사람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같이 생활하는 일은 여로모로 가르침을 준다. 세상에는 나와 아주 다른 성향과 선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의식하지 못한 채 지내던 나의 성격과 특질의 도드라진 부분을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가장 큰 배움은 이렇게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도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며 지낼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두 종류의 사람)
미니멀리스트와 같이 살게 된 맥시멀리스트의 인간 개조 과정은 길고 지난하다.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
나는 10개월 전에 어째서 이걸 예상치 못했던 걸까? 증거가 도처에 널려 있었는데! 옥상에 가득했던 쓰레기봉투! 두 걸음만 걸으면 무언가가 발에 차이던 그 집! 나는 어쩌자고 그 모든 물건을 내 삶에 끌어들이기로 한 거지? 내가 콩깍지가 씌었었나?! (둥지 같던 너의 집)
나는 그 순간에야 내적 눈물을 흘리며 정현종 시인의 시를 온몸으로 이해했다.
사람이 온다는 건 /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 그는 / 그의 과거와 / 현재와 / 그리고 /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 정현종, 「방문객」에서
(...)
우리의 동거는 유라시아판과 북아메리카판이 충돌하는 것 같은 일이었다. 처음에 우리는 서로의 비슷함을 발견하고 놀라워했지만 이후로 서로의 다름을 깨달으며 더 크게 놀라게 되었다. 우리는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이었다. 그것도 매일매일 끝없이 들고 나는 파도처럼 이어질 ‘생활습관’이라는 거대한 영역에서. (두 일생이 합쳐지다)
잘 산다는 건 곧 잘 싸우는 것이다. 타인과의 입장 차이와 갈등이 삶에서 빠질 수 없는 구성 요소인 이상 그렇다. (싸움의 기술)
결혼한 친구가 시댁에 명절을 지내러 가서는 "어른이 되어 남의 집에 입양된 기분이야"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너무 오랜만에 회사를 옮겼더니 딱 그런 기분이 들었다. (500원짜리 컨설팅)
오늘도 내 동거인은 아주 우습고 또 존경스러운, 딱 그만큼의 거리에 있다. (상당히 가까운 거리)
타인이라는 존재는 서로를 필연적으로 귀찮게 하게 마련이며 가끔은 타이어 파손으로 인한 항공편 지연 같은 예측 불가능한 사고를 만들기도 한다. (...) 하지만 아주 중요한 상실은, 웃을 일이 사라졌다는 거다. (...) 다시 하루의 끝에 바보 같은 농담을, 시답지 않은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돌아왔다. (혼자 보낸 일주일)
평생을 약속하며 결혼이라는 단단한 구속으로 서로를 묶는 결정을 내리는 건 물론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더라도 한 사람의 생애 주기에서 어떤 시절에 서로를 보살피며 의지가 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충분히 따뜻한 일 아닌가. 개인이 서로에게 기꺼이 그런 복지가 되려 한다면, 법과 제도가 거들어주어야 마땅하다. 이전과는 다른 모습의 다채로운 가족들이 더 튼튼하고 건강해질 때, 그 집합체인 사회에도 행복의 총합이 늘어날 것이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내 가족입니다)

부산 출신 서울 거주 여성 두 사람이 함께 적은 동거에 대한 기록이다. 함께 살기로 결심하기까지의 과정, 함께 살면서 겪게 된 일들,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를 각자의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다.


결혼이 더 이상 필수가 아닌 시대, 1인 가구의 비중이 늘어나며 혼자 사는 삶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고 만족도도 높아졌다. 그러나 한편으론 혼자 살면서 느끼게 되는 불편함과 불안함 역시 상존한다. 혼자인 삶을 마음껏 즐기다 보니 이제는 안정적인 소속감을 느껴지고 싶어진 두 여성은 서로의 경제력을 결합하여 조금 더 안락한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인생의 한 시기를 함께할 만한 마음 맞는 파트너를 동거인으로 삼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아무리 잘 맞는 친구였어도 ‘동거’라는 형태의 관계로 들어선 순간 마치 배우자간의 결합과 다를 바 없는 갈등이 시작된다. 미니멀리스트이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월등히 긴 프리랜서 김하나와 맥시멀리스트이면서 오랫동안 출퇴근하는 직장인의 삶을 살아 온 황선우는 첫날부터 서로의 생활습관 문제로 부딪히며 눈물 펑펑 쏟아내는 혹독한 적응기를 거친다. 그러나 청소를 잘하는 집요정 김하나와 끝내주는 요리로 마음을 순식간에 녹이는 황선우는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며 함께 사는 법을 서서히 익혀간다.


결혼이라는 제도 바깥에서 탄생한 이 가족은 동거가 줄 수 있는 안정감은 취하면서 양가 가족의 결합에서 오는 갑갑한 의무감은 벗을 수 있는 새로운 분자 가족의 형태를 제시한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범위에서 서로를 돌보아 줄 수 있는 동네 주민과 고양이들까지, 기꺼이 느슨하지만 따뜻한 결합 속으로 포용한다. 가족을 구성함으로 우리가 진짜 원하는 가치가 뭘까.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가족인지 결혼인지, 혹은 결혼과 가족 모두인지, 결혼과 가족 둘 다 아닌 것인지, 한번쯤은 진지하게 질문해 볼 만 하다. (19.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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