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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KJ 유가장 Mar 24. 2020

문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회사를 10년 다녀보니

6년 전, 대리 시절의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회사 상사와 점심을 먹고 쭈쭈바를 먹으며 회사 근처를 소화시키기 위해 맴돌았다.
길에서는 최근에 오픈한 피트니스 센터에서 열심히 회원 모집 ‘전단지’를 돌리는 중이었다.


“이런 전단지만 봐도 이 헬스장 주인의 성격을 알 수가 있어.”
“네? 어떻게요?”
“분명히 나이는 젊고 굉장히 트렌디한 헬스장을 표방하며 세련되게 인테리어도 했을 거야. 왜 회사 문서 있잖아? 그 사람을 직접 만나지 않아도 보고서만 봐도 어느 정도 그 사람 성격이 파악이 된다니깐.”
(‘이건 또 무슨 잘난 체야’라는 약간의 생각과 함께)
“그게 정말 가능한가요? 차장님이 그냥 눈치가 빠르고 센스가 좋으신 거 아니에요?”
“보고서를 읽자마자 결론을 쓴 친구들이 있어. 물론 회사 문서는 두괄식이 좋다지만 심지어 무슨 문서인지 말하기 전에 말이야. 그런 친구들은 실제로 만나봐도 성격이 급해.”
“네,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네요.”
“보고서에서 결론을 빙빙 돌려 말하는 친구들이 있어. 그런 친구들 만나서 이야기를 만나보면 실제로도 그래. 마지막에 그래서 꼭 그래서 결론이 무엇인지를 물어보게 만들어.”
“이 얘기를 들어보니 생각나는 분도 한 명 있는데요 ㅎ”
“분명 보고서인데 결론이 없는 보고서도 있다. 계속 팩트만 이야기하고 자기주장을 말하지 않아. 그런 사람들이랑 점심 먹으러 가지? 메뉴 고르는데 한 시간이다.”


그때는 이 이야기를 그냥 웃고 넘겼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나도 어느덧, 팀장이 되었다.
제휴업체와 미팅을 하고 본부장님에게 재계약 추진을 위한 보고서를 가져왔다.


“유팀장, 물론 보고서는 두괄식으로 써야지. 그런데 결론이 너무 성급해. 이런 근거로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겠어? 결론만 보고 기대를 했는데 근거가 너무 약하다.”
“알겠습니다. 내용 보충해서 다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업체와 미팅은 다시 언제 잡도록 할까요?”
“이것 봐. 급하잖아. 투머치(too much)야. 왜 이렇게 급해. 일단 보고서부터 다시 수정하고 미팅을 생각하자고.”


자리에 돌아와서 다시 보고서를 쓸 생각에 투덜대고 있는데 회사 에어컨이 너무 약해서 땀이 났다.
6년 전에 땀을 흘리며 쭈쭈바를 먹으며 들은 상사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문서만 봐도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


사람의 성격은 감추려 해도 속이려 해도 드러나는 모양이다.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회사에서도 문서에서도 대화에서도 드러나는 모양이다.

혹시 문서 작성에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면 내 성격을 한번 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글은 거짓말을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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