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닐 거야.
나는 투명 인간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친척들은 내가 수학 강사라는 것을 몰랐다. 강연하는 사람인 것은 더더욱 모른다. 어머니가 그것을 감춰왔기 때문이다. 그분들께 나는 만년 취업준비생이었다.
두 번의 실패.
보험설계사 3개월, 제약회사 영업사원 3개월.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직후의 내 경력이다.
어린 나는 생각 없이 살았다. 하고 싶은 일도 없었고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딱히 부단한 노력을 해 본 적도 없다. 막연히 선생님이라는 꿈을 품은 적이 있었지만 선생님이 되려면 공부를 어떻게 얼마나 해야 하는지, 대학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몰랐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우여곡절 끝에 세 군데의 대학교를 돌고 돌아 29세에 대학을 졸업했다.
취업 준비 시기가 다가오면서 내 머릿속에는 전에 없던 생각이 가득 차올랐다. 아무 일이나 하며 평생을 살 수는 없는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지루하지 않게 살고 싶다... 토목공학을 전공했지만 토목은 쳐다도 보기 싫었다. 비교적 너무 늦은 것 같았지만 그제야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오래 걸리진 않았다. 단순히 말을 하는 직업이면 될 것 같았다. 그런 이유로 보험 영업과 제약 영업에 뛰어들었다가 포기했다. 나는 포기라기보다는 빨리 발을 빼고 다른 원하는 일을 찾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한 것이었지만 주변 사람들은 달랐다. 그런 끈기로는 아무것도 못한다, 싫어도 버텨야 하는 거다, 누구나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 모두가 입을 모아 본인들의 삶에 빗대어 이야기했다. 행복해 보이지도 않는 본인들의 삶에.
수학 강사로 벌써 10년을 살았다. 누군가가 나에게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글쎄, 행복한지는 잘 모르겠다. 자꾸 이루고 싶은 것은 늘어가는데 이루지는 못해서일까. 하지만 이것은 분명하다. 즐겁다. 하루하루가 즐겁다. 단순한 나는 이거면 충분하다.
수학 강사라는 직업을 포함해 지금까지의 내 모든 선택은 하고 싶은 일을 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이루어졌고 이해하기 힘든 수많은 반대가 있었으며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런데도 나에게 힘을 실어준 친구가 두 명 있다. 방황하던 내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그 두 명은 똑같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게 부럽다.”
내가 하고 싶은 일로 가고 싶어 차를 샀다면 이 친구들은 나에게 기름을 넣어줬다. 현재도 기름이 떨어질 만하면 가끔 채워주곤 하는 주유소 같은 존재다. 훗날 내가 어디까지 달려봤는지 자랑을 늘어놓으러 다시 갈 수 있는 곳이다.
오스트리아에서 말기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 브로드웨어가 쓴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다섯 가지(The top five regrets of the dying)라는 책에서는 사람이 죽기 전 하는 가장 큰 후회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한 것’을 꼽았다.
어느 기관의 한 설문조사에서는 65세 이상의 노인분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으로 ‘걱정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쓴 것’이라고 하였다. 죽음을 앞둔 말기 환자도, 65년 이상의 긴 인생을 살아온 노인도 다 지나고 보니 자신이 했던 대부분의 걱정은 쓸데없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결국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대부분 그것을 시작하는 것에 앞서 걱정부터 하기 때문이다.
걱정과 의심은 꿈으로 가는 속도를 늦출 뿐이다. 어쩌면 하고 싶은 일이라면서 의심을 한다는 것이 웃긴 일이다. 의심이 들면 당장 내려놓는 것이 맞다. 그러나 확신이 있다면 앞으로 성큼성큼 나아가는 거다. 분명한 믿음은 스스로를 저절로 나아가게 만들어준다. 이제 하고 싶은 일을 이룬 다음에 기다리고 있는 엄청난, 그리고 보장된 희열을 느낄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