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방사수
야간 축구 경기를 하고 밤 12시에 집에 도착했다.
너무 이상했다. 문을 열면 언제나 현관 앞까지 뛰어나와 나를 맞아주던 고양이 두 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모든 방과 베란다, 옷장 안까지 뒤져봐도 없었다. 조금 불안해졌다. 이제 어딜 찾지? 하며 복도 쪽을 바라보는 방에 다시 가 보았다. 이 집으로 이사 온 후로 한 번도 열지 않았던 창문이 열려있었다. 그 창문 밖은 아파트 복도다.
'아니 이게 어떻게 열려 있지?'
불안감을 넘어 공포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고양이의 힘으로는 절대 이 창문을 열 수 없다. 누군가가 집 밖에서 우리 집 창문을 열지 않고서는. 그리고 호기심 왕성한 고양이 두 녀석이 가만히 있었을 리 없다.
아니나 다를까. 오랫동안 열지 않은 창문 아래의 먼지 위로 고양이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두 시간 동안 뛰고 들어온 나는 전속력으로 다시 집 밖으로 뛰어나갔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고양이를 잃어버리면 답이 없다. 어디선가 발견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개는 사람과 친화적인 데 반해 고양이는 경계심이 워낙 심해 겁에 질리면 주인이 불러도 오지 않는다. 게다가 내가 사는 곳은 지평선을 향해 한참을 걸어야 끝날 것만 같이 길게 설계된 15층짜리 복도식 아파트다. 어디서부터 찾아야 한단 말인가.
먼저 15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ㄹ자로 15개 층 복도를 차례로 훑으며 내려오기로 마음먹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라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레 고양이들의 이름을 불렀다. 1층에 다다랐지만 고양이 털 하나 발견하지 못했다. 이번엔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돌았다. 가로등이 켜져 있었지만 눈앞이 깜깜했다. 이름은 쉬지 않고 불렀다.
“거미야~ 노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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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말랐다.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4시를 지나고 있었다. 땀이 비 오듯이 흘렀지만 경황이 없어 힘들다는 생각을 못 했는데 그제야 몸에서 진이 다 빠져버린 것을 알았다. 다리가 후들거려 계단에 주저앉았다. 어차피 못 찾을 게 뻔하다는 생각이 스무 번째 스쳤다. 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나. 눈물이 복받쳐 터져 나왔다. 이 녀석들이 얼마나 겁에 질려 있을까, 둘이 같이 있긴 할까, 만약 못 찾고 오늘이 지나버린다면 고양이들은 어떻게 되고 나는 어떻게 살아가지?
한참을 울다가 결정한 단어는 ‘포기’였다. 나는 냉철한 편이다. 아니다 싶으면 포기가 빠르다. 이건 포기하는 게 맞다.
집 나간 고양이는 절대 찾을 수 없는 동물이다.
그렇다고 집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문득 세월호가 떠올랐다. 감히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에 어찌 비교할 수 있겠냐마는 내가 지금 그 정도로 간절하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살아오면서 이렇게 간절한 마음을 가진 적이 있었나? 이렇게 막막했던 적이 있었나? 간절함이 막막함보다 강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내 말을 안 듣고 멋대로 휘청거리던 다리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찾자. 찾아버리자.
다시 15층부터 복도를 훑어 내려오는 것과 건물 바깥을 돌아보는 것을 반복했다. 머릿속에서는 좌절감과 간절함이 아주 파티를 벌였다. 나는 그날 밤 6시간을 헤맸다.
돌이켜보면 나는 내가 정말 자랑스럽다. 수백 번 포기하려 했음에도 간절함으로 이 악물고 움직인 끝에 두 마리를 모두 찾았기 때문이다. 거미는 3층 계단에서, 노리는 주차장에서.
이 사건은 내 인생에서 가장 간절하고 절박했던 이야기다. 그리고 이는 간절함은 무한한 용기를, 무한한 도전정신을, 무한한 체력을 끌어내 준다는 것을 깨닫게 한 값진 경험이다.
단단히 닫아 놓은 병뚜껑을 돌려 여는데 열 번을 시도해 열 번 실패했다면 이건 안 열리는구나 하고 포기해야 할까? 정답은 없다. 한 번 더 시도해서 병뚜껑이 열린다면 성공한 것이고 열리지 않는다면 헛수고를 한 것이다. 다만 열한 번째의 결과는 시도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모른다.
수천수만 가지의 도전과제들이 우리의 삶과 함께한다. 우리가 거듭된 실패에 지쳐 포기한 바로 그다음에 똑같이 실패가 기다리고 있을지 아니면 드디어 성공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한 번 더 도전해봐야만 알 수 있다. 나는 간절히 도전하는 모든 것에 이 생각으로 임한다.
<위대한 개츠비>의 저자 스콧 피츠제럴드의 명언으로 글을 마친다.
“한 번의 실패와 영원한 실패를 혼동하지 마라.”
(Never confuse a single defeat with a final defe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