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펜하이머 연쇄 리뷰 #1
엄청난 화제작으로 국내에 마침내 개봉한 <오펜하이머> 이 영화에 대한 반응은 참 많이 갈리고 있다. 10명 이상의 노벨상 수상 과학자들이 연쇄적으로 나오는 바람에, 어떤 이에게는 정신없는 인물들의 나열로, 또 누군가에게는 그 과학자들을 하나하나 보는 재미로 다가온다. 시대적 상황과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비밀스러운 프로젝트의 한 사람의 이야기를 전기처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 어떤 감성, 혹은 드라마적인 요소들의 부재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부재를 스트로스라는 강력하게 대비되는 인물과 오펜하이머라는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불안과 모순으로 채워나간다.
영화의 대부분은 두 주인공으로 대비되는 오펜하이머와 스트로스의 청문회로 이뤄진다. 한쪽의 서사는 컬러로, 어느 한쪽의 서사는 흑백으로 묘사되는데, 이것은 정말 놀란 특유의 구조적인 서사방법으로 쓰인 점이라 흥미롭다.
짧게 말하자면 오펜하이머는 핵분열로, 스트로스는 핵융합으로 묘사된다. 이건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갑자기 등장하는 짧은 자막과 색의 대비로 알아챌 수 있다. 그런데 이 인물의 이야기를 서로 분열과 융합으로 묘사하는 것은 물론, 그 둘의 다름에 등장하는 인물과 어쩌면 그들 삶의 방식까지를 모두 그 구조안에 포함시켜서 영화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는 대부분 그러했다. 어떤 구조적인 특징을 만들어내고, 모든 인물을 그 안에 배치하고 그 특징을 서사적 구조뿐만이 아닌 인물을 표현해 내는 많은 부분에 녹여낸다. <다크나이트>의 대비되는 두 인물 배트맨과 조커의 대비적 구조도 그렇지만, 내내 그것을 끌고 가는 선택과 혼란의 캐릭터를 영화의 이야기 자체에 녹인 점. <인터스텔라>에서 블랙홀에 대한 과학적인 이야기에 실제로 그 안에 들어갔다 나오는 캐릭터와 사랑이라는 대전제로 나타낸 점. <덩케르크>에서 세 가지 시간과 사건이 점점 모여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그 구조. <인셉션>은 애초에 그런 구조를 화면으로 나타낸 신묘한 묘사와 림보라는 꿈의 구조. 그 팽이는 끝까지 돌고 있으리란 끈임없는 의심의 단계로 나타낸다. 이렇듯 놀란은 항상 영화를 만들어 낼 때 그런 구조적 특징을 관객에게 이해시키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이번 <오펜하이머>에서의 특징은 바로 그 핵분열과 핵융합이다. 오늘의 글에선 핵분열에 대한 서사를 짧게 다뤄보려 한다. 핵분열을 잠시 생각해 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 우라늄 235라는 동위원소와 중성자다. 그런 핵분열 반응은 우라늄 235에 중성자를 보내면, 우라늄이 분열하면서 엄청난 양의 에너지와 또 중성자가 나오고, 그것을 또 다른 우라늄 235에 연쇄반응 시키면 결국 원자폭탄이 되는 원리이다. 구조적으로 굉장히 잘 짜여 있어야 하며, 중요한 것은 우라늄 235와 중성자다.
놀란은 여기서 우라늄 235를 오펜하이머가 만난 여러 엄청난 과학자들로, 그리고 오펜하이머 자체를 중성자로 생각한 듯하다. 그래서 컬러 장면이 나오며, 청문회를 제외한 (심지어 청문회 도중에도) 오펜하이머는 쉼 없이 누군가를 만난다. 그건 바로 우라늄 235로 얘기할 수 있는 뛰어난 물리학자들이다. 특히 우라늄 235는 우라늄 중에서도 정말 희귀한 우라늄으로, 자연 상태의 것에서 농축해 나가는 과정을 거친다. 그 농축된 우라늄 235들은 로스앨로모스에 모이는 그 과학자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비범한 사람들을 한데 모으고, 그들 사이에 역학관계를 잘 계산하여, 만들어 내는 것이 핵분열의 끝인 원자폭탄이며, 결국 그걸 일으키 오펜하이머의 삶 자체를 "핵분열의 서사"로 표현해내고 있다. 애초에 중성자의 역할은 양성자와 중성자의 중간에서 무마하며, 접착제 역할을 한다. 로스앨로모스의 오펜하이머가 해낸 바로 그 일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 과학자들을 한 곳에 머물게 하면서, 목표하는 바를 이루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그가 중성자로 표현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가 처음 우라늄을 때리는 중성자로 생각되기에도 물론 충분하다.
그렇지만 오펜하이머 역시 중성자라기보다 우라늄 235이기도 하다. 그는 평범한 것들에 대한 멸시나 일종의 오만을 가진 캐릭터로 묘사된다. 이것은 우라늄을 농축하는 과정으로 비유할 수 있다. 우라늄 238과 235의 차이는 결국 무게이고, 대부분인 99.2%의 우라늄 238과 특별한 0.8%의 우라늄 235는 결국 평범함과 비범함으로 대비될 수 있다. 여기서 오펜하이머는 235를 찾아내는 역할을 겸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도 우라늄 235로 동료들을 알아보는 비범한 천재과학자니까 말이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멸시와 오만이 기본적으로 깔려있으며, 이는 나중에 스트로스와 대립하게 되는 중요한 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래서 오펜하이머가 하는 일. 그의 성격들 또한 "핵분열"이라는 것으로 대비될 수 있다. 그리고 어렸을 때 교수를 독살하려 했던 점. 공산당 지인들 사이에 결국 당원이 되지 않는 행적들. 사랑하는 두 여인에 대한 행동. 그리고 자신이 개발할 때 주장했던 살상의 효과를 그 이후엔 오히려 핵을 억제해야 한다는 어쩌면 모순된 행동. 그리고 핵융합이 무기가 되는 수소폭탄을 반대했던 지점들도 어쩌면 전부 "핵분열의 서사"라는 말로 설명이 가능하다.
그가 아인슈타인과의 대담에서 앞으로 펼쳐질 핵분열의 끝이 결국 인류의 크나큰 재앙이 될 것을 생각하며 영화가 끝나는 장면은, 자신과 전 세계의 미래를 내다본 장면임과 동시에 자신이 처음 우라늄을 때리는 그 중성자처럼 그 일을 시작하였을 때 일어날 "핵분열"을 암시한다. 그것을 "핵융합의 서사"로 나타난 스트로스와 그리고 어쩌면 자신과 생각이 다른 아인슈타인과의 만남에서 이끌어 냈다는 점 또한 흥미로운 지점이다.
아직 영화를 한 번 밖에 보지 않았고, 원작처럼 여겨지는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도 읽지 못한 상태이지만, 분명 이런 모순된 삶 자체를 핵분열과 우라늄, 중성자 등의 과학적이면서 서사적으로도 구조를 가진 지점으로 나타낸 것이 이 영화에서 가장 놀라운 지점들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앞으로 영화를 좀 더 여러 번 보고, 관련한 이야기들을 더 찾아보며 영화를 더 풍부하게 즐기며 정리해 보고자, <오펜하이머>의 연쇄 리뷰를 써보며 정리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