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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즁 필름 Aug 31. 2023

<오펜하이머> 죄의 청문회

오펜하이머 연쇄리뷰 #2

<오펜하이머>의 국내 개봉이 보름이 지나가고 있다. 그 사이 나는 영화를 한 번 더 관람했다. 3시간이라는 긴 상영시간 동안 굉장히 많은 이야기들의 구조가 있어서 참 흥미로운데, 지난번에는 “핵분열”이라는 이야기로 리뷰를 했었다. 그것도 매우 간단하게만 훑었지만 말이다.


이번 리뷰에서는 <오펜하이머>의 주된 사건의 서사방법 중 하나인 ‘청문회’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 청문회가 오펜하이머뿐만 아닌 그 반대의 격으로 등장하는 스트로스도 청문회로 서사가 진행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둘 다 그 청문회로 결국에 자신의 삶 전반의 가치가 부정당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청문회를 통해 과거를 회상하며, 자기 자신의 기억을 되짚어 올라가는 방식이며, 전 리뷰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오펜하이머의 청문회는 컬러와 핵분열로, 스트로스의 청문회는 흑백과 핵융합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된다.


청문회의 뜻은 무엇일까? 들을 청에 들을 문의 뜻으로, 듣는 자리다. 영문으로도 ‘Hearing’으로 똑같은 뜻이 된다. 물론 영화 안에서는 board로 위원회의 성격이 더 강하긴 하다. 그 둘은 정말로 다른 사람이지만 둘 다 청문회를 통해서 철저하게 무너진다는 설정을 공유한다. 양 극단은 통한다고 했던가. 이 영화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데엔 각자의 청문회에서 스스로 떠올린 과거. 즉 플래시백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영화를 이해하면 크게 도움이 된다.

영화의 시작은 청문회장에서 오펜하이머가 눈을 뜨며 시작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오펜하이머가 눈을 꽉 감으며 끝이 난다) 그리고 나름의 시간 순서처럼 불안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자신의 학창생활이 매우 불행했음을 말하며 불안에 떠는 그를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양자역학에서 빛은 입자이자 파동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 두 가지 모두를 가진 그래픽으로 그의 불안을 나타낸다. 그의 불안했던 과거의 일화 중 사과에 독극물을 넣어 지도교수를 독살하려는 시도가 그려진다. 그 수많았던 그의 과거 일 중에 왜 그 독이 든 사과의 일화를 영화는 중심적으로 설명하고 있을까?


그것은 오펜하이머가 저지른 중대한 죄의 상징으로 사과가 쓰였기 때문이다. 후술 할 것이지만, 영화는 그가 가진 죄를 사과, 진 테트록, 그리고 원자폭탄의 세 가지로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그 일화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다. 사과를 굳이 클로즈업해서 보여주는 것. 그리고 독극물을 주사한 뒤 흐르는 물. 참고로 이 영화에서는 물도 하나의 큰 재앙처럼 묘사되고 있다. 그 사과는 결국 어떻게 될까? 자신이 잘못했음을 알게 된 오펜하이머는 찾으러 강의실에 가지만, 결국 그 사과는 엉뚱하게도 닐스 보어의 손에 들어간다. 한입 베어 물려던 닐스보어에게서 사과를 빼앗아 벌레 먹었다면서 버리는 것은, 그것이 자신이 정말로 죄를 짓기 직전에 그것을 철회하는 것을 보여줘서 그 마지막 선택을 번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반대로 원자폭탄은 독일에게 쓰려던 것이 독일의 항복으로 무산되자, 과학자들이 의의를 제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처음 폭탄개발의 필요성을 말했던 실라르드를 필두로, 로스 앨러모스에 모여있는 과학자들에게도 의구심이 생긴다. 하지만 오펜하이머의 선택은 결국 그것이 일본에 쓰이고, 일본의 어느 지역에 어떻게 쓰일지에 대해서도 의견을 말한다. 자신이 독극물을 만들었던 때. 그리고 그것이 엉뚱한 곳에 쓰이려 할 때의 그의 선택과는 반대된다. 다른 선택을 하게 되는 모습을 영화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사과가 등장하는 셈이다.

사랑하는 여인이자 자신의 죄를 상징하는 진

그런 선택의 기로는 언제 결정된 것일까? 의외로 그것은 진 테트록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 여기서도 흥미롭게 닐스 보어가 등장하는데, 진을 만나 오늘이 마지막 만남임을 말하며, 밤을 보내고 왔을 때. 그리고 그가 하는 어떤 일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고 그녀를 떠나고, 닐스 보어가 로스 앨로모스에 찾아와서 이 원자폭탄은 생겨나면 절대로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경고한다. 그것은 마치 닐스 보어가 지금 독이든 사과를 들고 입으로 가져가고 있는 장면과 흡사한 연출이다.


그런데 그때 결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전화가 왔고, 그것은 진이 유서를 남겨놓고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렇게 닐스 보어의 경고는 사라지고, 결국 진이라는 또 하나의 양가적인 존재. 사랑하지만 공산당원이자, 꽃을 사다 주지만 내내 함께할 수 없는 운명을 가져 오히려 꽃을 싫어하는 꽃과 같은 존재인 진이 죽자. 오펜하이머는 크게 상심함과 동시에 자신에게 남겨져 있던 죄가 더 이상 죄가 아니게 된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가 정말 많은 이들을 죽게 할 원자폭탄을 개발하게 되고, 결국 그것이 사람에게 쓰이게 되리란 암시가 처음 등장하는 것도, 진과의 정사신에서 등장한다. 그녀는 책장에 꽂혀있던 산스크리트어로 된 경전을 가져와 그와 정사를 나누며 어떤 구절을 읽도록 시킨다. 그 구절은 어떤 구절이었을까?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이 말은 실제로 오펜하이머가 한 말이기도 하고, 실제 경전에 적혀있기도 하며, 또한 애리조나에 전시되어 있는 먼지 앉은 미사일에 오펜하이머가 직접 저 말을 영어로 써놓기도 해서 굉장히 유명해진 구절이다. 실제로 진과의 정사 도중 저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저 상징적이기까지 한 구절을 그녀와의 정사에서 말했다는 것은, 진이 바로 그 죄의 상징적인 의미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그녀가 죽고 난 뒤에는 오펜하이머는 자신의 선택을 계속해서 밀어붙인다. 물론 당연히 윤리적인 갈등이 있었고, 반대 의견도 전달하기는 하나. 그 위력을 보여주고, 그 위력 때문에 모든 전쟁이 끝날지 아니면, 자신 자체의 욕심인지 모를 그 선택을 막힘없이 하고 있다.

애리조나에 전시된 문제의 경전 구절

그래서 무리하게 진과의 정사정면을 보여준 것. 그리고 청문회장 안에서도 발가벗은 둘의 정사를 보여준 다는 것은, 그 선택이 잘못되었을 수 있는 것을 암시하면서도, 그것을 결국 선택한 오펜하이머의 모순된 점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다시 청문회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굉장히 불공평한 청문회이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그 죄의 모순을 스스로 알아가고, 그토록 천재적인 과학자이자 엄청난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사람이 자신을 멍청하다고 이야기하고, 횡설수설하는 장면들이 많다. 그리고 청문회에서 말하면서 기억해 내는 과거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것의 비중이 유독 자신에게 기억되고픈 장면들이 많았고, 특히나 영화에서 오히려 히로시마나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때에 오펜하이머는 철저하게 주변인으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게 전락했지만 결국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유명해지는 그의 기억 속에 가장 그 프로젝트의 빛나는 순간인 ‘트리니티 실험’을 끝으로, 그 영광스러운 때는 지나가고, 매카시즘과 신냉전. 수소폭탄. 그리고 트루먼의 냉담한 반응들을 주를 이룬다.

많은 이들이 환호에도, 사실 오펜하이머는 혼란스럽다

청문회는 결국 자신을 되돌아보는 자리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오히려 자신을 발견해 내고, 그 자신의 선택이 정말 옳았던 것인지, 혹은 틀렸던 것인지. 정말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를 끊임없이 되묻고, 대답하는 자리다. 그래서 오펜하이머와 스트로스의 두 버전의 청문회르 통해서, 자신을 자신의 방식으로 되돌아보며, 결국에는 둘 다 무너지는 이야기를 통해, 그 모순적인 선택에 대헌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고 있는 것이다.


<오펜하이머>의 리뷰는 이것 외에도 정말 할 이야기가 많다. 거의 다루지 못한 스트로스의 이야기. 영화에서 등장하는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의 이야기. 그리고 그것을 추상화해서 본 비범함과 평범함의 몰락과 차이점 등. 앞으로 할 얘기는 생각나는 데로 또 올려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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