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펜하이머 연쇄리뷰 #3
<오펜하이머>의 연쇄리뷰 그 세 번째. 첫 번째와 두 번째 리뷰를 보고 오시면 영화를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됩니다.
흔히 이면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나면 다른 면이라는 것이다. 이 영화는 구조적으로 그 이면을 내재하면서 시작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인물이 자기 자신이 행동함으로 보이는 면은 컬러로, 그것의 그림자로서 존재하는 이면은 흑백으로 연출되었다. 그리고 거기에 친절하게 “핵분열”과 “핵융합”이라는 자막도 달아주었다. 첫 번째 리뷰에서 언급했지만, 핵분열의 서사는 오펜하이머 스스로를 대변하며, 비범함의 몰락을 나타낸다. 그리고 주로 만들어낸 원자폭탄의 주된 원소로 쓰이는 우라늄 235와 중성자의 연쇄적인 반응의 이야기다.
우라늄 235는 비범함을 상징한다. 자연 우라늄에 단 0.7%만 존재하는 그 원소를 농축하는 과정을 거쳐, 그것을 원자폭탄으로 만들어낸다. 재밌는 것은 분명 트리니티 실험을 통해 폭발시킨 것은 플루토늄으로 만든 원자폭탄인데, 사실 비중이 적다. 물론 내파형이라는 새로운 폭파방식을 실험해 보는 의미도 있었지만, 우라늄에 편중된 서사방식에서도 볼 수 있듯, 이 이야기는 확실히 비범함을 다루고 있다.
그 폭탄의 사용과 함께 비범함은 몰락한다. 실제로 실험까지는 오펜하이머와 그 비범한 과학자들의 몫이었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트루먼의 결정이었으며, 어디에 떨어트리는 것도 전쟁부 장관의 허니문이었던 지역을 피하는 것도 겸할 만큼 그들의 역할은 제한되어 있었다. 마침내 비범함의 극 그 폭탄이 터졌을 때 그걸 만들어낸 오펜하이머도 평범하게 전락한다. 그것은 트루먼과의 대담 이후 그가 백악관을 빠져나올 때 그를 비추는 화면이 흑백으로 연출하면서 나타난다.
그렇다면 ‘핵융합의 서사’란 무엇일까? 그것은 스트로스를 뜻하며, 비범함의 몰락으로 시작된 평범함의 비상과 몰락, 그리고 ‘슈퍼’라는 이름으로 불린 수소 폭탄과 우주에서 가장 흔한 원소라는 수소라는 원소를 뜻한다. 그리고 그 평범함의 상징처럼 묘사된 스트로스가 비범함의 상징으로 묘사된 오펜하이머를 보는 이면을 서사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평범함이라는 것은 흔하다는 것이다. 스트로스가 처음 오펜하이머를 만났을 때도 ‘구두 판매원’이라 했을 뿐, 그 앞에 ‘미천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았다. 하지만 오펜하이머는 오만하게 그를 낮춰 말했으며, 그로 인해 프린스턴의 아인슈타인을 소개하는 자리도 함께하지 못한다. 그렇게 흔함을 배제해 버리는 오펜하이머의 성격 탓에 스트로스는 오펜하이머에게 감정을 품게 되며, 아인슈타인이 그와 대화 직후 자신에게 보인 심드렁한 태도 또한 자신을 험담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지게 된다.
여기서 알 수 있지만, 그는 분명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건대 자연적으로 평범한 것은 비범하고 특별한 것에 대해 동경과 열등감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게 동경이었다가 자신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 오펜하이머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것은 사뭇 평범한 우리가 특별한 누군가를 보고 먹는 생각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 나중엔 공개적으로 스트로스를 망신주는 오펜하이머는 극 중 두 번 등장하게 된다. 컬러의 모습으로 오펜하이머가 발언하는 앞을 비춰주며, 애써 웃어넘기는 스트로스를 보여주는 방식과 흑백으로 뒤에서 오펜하이머를 바라보며 그것에 증오를 갖게 되는 스트로스로 말이다.
이렇듯 한 사건에는 두 가지 면이 존재한다. 둘 다 오펜하이머의 오만함을 표현해내고 있지만, 사뭇 다른 것은 그것 앞에서 컬러로 보는 것과 뒤에서 흑백으로 보는 것의 차이다. 마치 내 앞의 산이 나를 비웃고 있는 듯한 그림자의 모습으로의 증오는 그래서 더 맹렬했고, 결국 그건 오펜하이머를 무너트리는 단초가 된다.
스트로스는 오펜하이머와 대립하며 그에 대한 맹비난을 서슴지 않는다. 그가 나가사키나 히로시마로 기억되지 않고, 트리니티로 기억되는 것. 결국 그는 자신의 유명세와 위신을 위해 원자폭탄을 만들어 내었다고 생각하는 것. 그래서 그가 수소폭탄을 지지하지 않는 것 등은 어떻게 생각해 보면 오펜하이머를 오해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것 또한 한 사람을 보는 이면의 평가로 세간에 전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실제로 모순적인 발언과 선택을 했고, 공산당과 긴밀함을 유지한 전력과 자신의 아이를 봐준 슈발리에를 위해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기도 했었으니까 말이다.
특히나 오펜하이머의 ‘평범’에 대한 혐오는 여러 가지 장면에서 나온다. 스트로스와의 대화나 자신의 동생의 아내를 기억하지 못하며 투명인간 취급하기도 한다. 뜻은 달랐지만 MIT 출신의 공학도 출신인 그로브스를 존중하는 모습. 로스 앨로모스의 과학자들 중에서도 자신의 핵융합 폭탄에만 열을 올렸던 에드워드 텔러를 대하는 그를 보면, 비범한 자에겐 한 없이 너그러우나 평범한 사람들을 한 없이 무시하는 성정을 엿볼 수 있다.
이건 극 중 묘사되진 않지만, 결국 재미난 지점은 결국 핵융합으로 만들어진 그 평범한 원소의 수소폭탄은 오펜하이머의 원자폭탄보다 엄청난 위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평범함의 상징인 스트로스에게 오펜하이머는 더 이상 보안 인가를 받지 못하며, 공식적으로 그의 수상쩍은 행동이 남게 되는 결과가 된다. 말 그대로 이 영화는 평범함이 비범함을 전복시키는 영화인 것이다. 극 중 에드워드 텔러의 대사 중 핵융합을 어떻게 처음이 일으키냐는 동료 과학자들의 질문에 “소형 핵분열 폭탄”으로 그것을 일으킨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것은 한 줄의 대사이지만, 이 영화를 관통하는 이야기 이기도 하다. 결국 수소 폭탄은 내부에 핵분열을 일으킨 뒤, 그 에너지로 핵융합 반응을 일으킨다. 그래서 핵융합의 원인은 어찌 보면 핵분열이며, 평범함의 시작은 바로 비범함의 몰락에서부터 촉발된다는 점이다. 이건 과학적으로도 그 상관관계가 맞고, 굳이 이 대사를 수소폭탄의 개발자인 텔러가 말한다는 점. 그리고 핵분열로 상징되는 오펜하이머가 핵융합으로 상징되는 스트로스와 대립했다는 점에서도 영화 구조적인 부분에 과학의 인과를 녹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영화의 원작이라 여겨지는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책은 평전이고, 어린 시절부터 그의 끝까지를 시간의 순서대로 저술하고 있다. 하지만 놀런 감독은 이 이야기를 가지고, 자신만의 독특한 이야기 구조를 만들어내는데, 그 구조 자체가 복잡하긴 하지만, 결국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맞닿아있다. 자칫 이 영화가 오펜하이머의 전기처럼 보이기만 하기 싫었던 것이고, 그의 삶을 좀 더 다양한 방식과 시선으로 보고, 혹여 그를 힘들게 했던 일들도 다면적인 그의 하나로서 존재할 수 있게끔 영화는 녹여냈다.
그것에 있어 재밌는 지점이 바로 반대급부로 등장하는 흑백의 이야기. 즉, ‘핵융합의 서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다음의 리뷰로는 핵분열과 핵융합의 안쪽보다 바깥에서 그것을 관찰한,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한 ‘아인슈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