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종은 Sep 30. 2020

공주의 언어를 찾아서

말로는 글을 쓰고 싶다면서 예술가의 감수성과 실험정신은 전무한 채로, 중산층의 모럴과 예의 바른 행동만을 생활의 모범으로 삼는다.

이만교 작가의 ‘개구리를 위한 글쓰기 공작소(2012)’에 나오는 말이다.

작가는 독자를 ‘개구리‘라고 불렀다.

우리는 공주나 왕자를 꿈꾸며 글을 적고 있지만 실상 드러난 말들은 ‘개굴개굴 개굴개굴…..’뿐이라고. 책 초반부터 훅 치고 들어온다. 개구리로 머무는 한 우리의 글은 개구리 울음소리에 불과하다.


거친 개구리 언어를 버리고 공주 혹은 왕자의 언어를 얻고 싶다면? 우선 머릿속 체질 개선부터 하라고 말한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 개구리들의 ‘일상 언어‘를 공주 왕자의 ‘창작 언어’로 업그레이드하라고. 거기에 덧붙여 자신만의 개성적 언어까지 구사할 수 있다면 진짜 좋은 작가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그러려면 현실을 있는 대로 베끼지 말고 ‘보는 대로’ 가공하라고 조언한다. 최소한 지루한 일상을 그대로 나열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소설을 써보겠다고 고군분투하던 당시 소설 작법 관련 자료를 열심히 찾아다녔다. 정말이지 글쓰기 관련 자료들은 차고 넘쳤다. 이론서를 많이 읽는 게 득인지 해가 될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답답한 마음에 열심히 읽었다. 솔깃한 제목에 비해 건질 게 없는 책도 더러 있었지만, 일가를 이룬 작가의 보석 같은 조언들을 읽으며 정작 소설 쓰기는 미뤄두고 이론서 읽는 재미에 빠지기도 했다. 그들의 경험과 생각들이 부디 내 글에 스며들길 바라며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다.

특히 이만교 소설가의 첫 번째 글쓰기 책,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2009)‘는 소설이 뭔지 갈피를 못 잡을 때 도움을 많이 주었다. 요리 초보자가 유튜브 영상을 참고하듯이, 나는 그 책을 항상 옆에 두고 수시로 읽었다. 일부 페이지는 공책에 필사까지 하며 머리에 되새겼다.

첫 번째 책이 초보 작가들을 위해 실용적인 팁을 줬다면, 두 번째 ‘개구리를 위한 글쓰기 공작소‘는 글쓰기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부터 던졌다. 글을 쓰고 싶다면 우리가 평생 사용해온 ‘입말’을 떨쳐버리라고 말한다. 입말이란 일상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언어다. 하이데거의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명제까지 거론하면 하고 싶었던 말은 일상적인 거친 언어들이 아니라 작가의 언어를 가지려면 생각의 틀부터 바꾸어야 가능하다는 뜻으로 들렸다. 비단 소설가를 꿈꾸는 사람뿐 아니라 글을 쓰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조언 같았다. ‘중산층의 모럴, 예의 바른 행동’ 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말에 그래서 깊은 공감을 느꼈다. 사는 게 고스란히 내 글에 반영된다고 생각한다면 글을 잘 쓰기 위해서라도 잘, 아주 잘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산다는 게 뭔지 나이를 아무리 많이 먹어도 잘 모르겠으나 어쨌거나 늘 생각은 한다. 생각하고 그것을 지금처럼 글로 쓴다면 적어도 뭐라도 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아주 조금 위안이 된다.


그래도 어리석고 우둔한 나는 두 번째 책 속에서도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족집게 과외선생의 조언을 찾아 헤맸다. 그러니까 관습적 언어를 버리고 자신만의 언어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이 뭐냐고.

첫 번째 책처럼 무릎을 치며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그런 건 찾기 어려웠다. 다만 책을 끝까지 읽은 후에 가슴에 새긴 한 문장은 이것 한 가지였다.

‘습작 시간을 극대화하라’

‘글쓰기 솜씨는 재능의 문재가 아니라, 이러한 선택을 얼마나 고집스럽게 수행하느냐, 얼마나 기꺼이 즐겁게 이어 가느냐 하는 태도의 차이에서‘ 오기 때문이다. 좀 허무하지만 반박할 수 없는 작가의 조언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긴다.

매거진의 이전글 버려야 또 채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