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민한 사람일까. 소음 없는 곳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다행히 이사 말고 다른 해결책을 찾았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사각형 모양으로 네 개 동이 빙 둘러 서있다. 건물이 에워싼 가운데에는 차가 다니지 않고 태극무늬 형태의 구조물과 넓은 공터가 있다. 그 안에서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거나 잡기 놀이를 한다. 한쪽에 놀이터가 있고 나무 그늘이 시원한 정자도 있다. 그곳에는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로 늘 북적인 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이 아니면 거의 하루 종일 아이들이 있다. 코로나 때문에 학교나 학원 어디서나 친구들과 거리두기를 해야 하니 이곳만큼은 마음껏 친구들과 놀 수 있는 공간일 것이다. 그런데 정작 자신들은 잘 못 느끼겠지만 아이들 소리는 아파트 단지 전체로 울려 퍼진다. 아이들의 우렁찬 소리는 공명을 일으키며 위로 올라와 우리 집 안방까지 파고든다. 최근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집에서 다양한 소리들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놀이터에서 나는 소리뿐 아니라, 옆집 도어락의 날카로운 개폐음, 덤벨을 던지는 듯 육중하고 둔탁한 윗집의 소음과 충격, 믹서기의 모터 소리, 그리고 반복되는 드럼 소리 같은 것도 들렸다. 소리의 진원지를 알 수 없지만 누군가 음악을 크게 틀어 놓은 모양이었다. 아무튼 내 집에서 나지 않는 다양한 소리들을 들으며 하루를 보낸다. 흔히들 층간소음 때문에 이웃 간 갈등이 생긴다고 하지만 공동 주택에서 들려오는 소음은 비단 위아래뿐 아니라 동서남북 어디라도 가능하다. 배달원이 올 때마다 울리는 1층 공동현관문의 벨소리도 꽤나 선명하게 잘 들린다. 혼자 집에 있을 때 소리에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어쩔 수 없이 듣게 된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생각했는데, 최근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을 읽으면서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꽤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박상영 작가가 쓴 책에 대한 리뷰를 읽으면서 위로를 얻기도 했다. 작가는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집에 있다 보니 ‘옆집과 윗집에서 사용하는 가전이 내는 소음의 종류조차 알아맞힐 지경’이라고 친구들에게 하소연하자, 너는 개미의 청력을 가졌구나
라며 놀랐다고 한다. 나는 작가의 마음이 너무나 이해되었다. 개미의 청력 없이도 주변 소음은 참 잘 들린다. 내 공간이 조용할수록, 조용히 독서나 글을 쓰고 싶을 때면 더욱 잘 들리는 것 같다. 뜬금없이 개미는 얼마나 괴로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작은 몸집에 세상의 모든 소음을 감내하고 있다니. 최근 에어팟 프로를 구매했다.
외출해서 이동할 때, 혹은 카페에서 이런저런 작업할 때 유용하겠다는 싶었다. 그런데 최근 외출을 많이 안 하면서 에어팟이 거의 무용지물이 되는 듯했다. 그러다 어김없이 우렁차게 아이들의 함성이 들리던 어느 날, 나는 존재 감 없이 서랍장에 넣어둔 에어팟을 다시 꺼냈다. 귀에 꽂은 후 노이즈 캔슬링 버튼을 눌렀다. 띵! 우우웅(실제 그런 소리는 나지 않지만). 그 순간 나는 미지의 어딘가로 이동한 것처럼 소음이 말끔히 사라진 공간으로 들어와 있었다. 머리가 조금 어지러운 느낌도 들었다. 잠시 어리둥절했는데, 금세 적응이 되었고 이후 읽던 책으로 다시 빨려 들어갈 수 있었다. 신세계를 경험한 느낌이었다. 그 뒤로부터 나는 집에 있을 때면 에어팟을 낀다. 몰랐었는데 에어팟 프로의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가장 필요한 공간은 집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