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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Aug 03. 2016

달관 세대론에 침 뱉기

MARCH 2, 2015

한국형 ‘달관 세대론’에 관하여

‘달관 세대론’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요즘 젊은 애들 머릿 속엔 대체 뭐가 있나’ 궁금한, 세상의 진단이다. ‘달관 세대론’은 불행한 현실에서도 안분지족하는 청년을 이야기한다.  적은 봉급에 만족하고, 정규직에 집착하지 않으며, 점심은 편의점에서 저녁은 맥도날드에서 먹어도 ‘좋다’고 말하는 세대. 현실에 달관했다는 뜻. 어차피 경기 침체로 취직, 높은 봉급, 내 집 마련도 요원하니 그냥 에라 모르겠다, ‘현재’를 살자. 이런 태도라는 것이다.  원조는 일본이다. 한국형 ‘달관 세대론’은 일본의 말을 빌려와 만든 것이다. 일본에서는 이를 ‘사토리(득도)’ 세대라 부른다.                

이런 달관 세대론을 접한 후 누군가  ‘오, 요즘 젊은이들이 이렇대’하는 식의 단순한 이해를 할까 두려워 이 글을 쓴다. 현실의 문이 좁아 ‘달관’의 마인드로 살 수 밖에 없지만, 여전히 차마 달관 할 수 없는 현실을 짚으려 한다. 젊은이들을 ‘사토리’세대로 진단한원조, 일본. 그 곳에서 청년들을 만났다.

일본에서 만난 ‘사토리’ 청년, 다이키

24일 저녁, 시부야에서 다이키를 만났다. 다이키는 본인을 프리터라고 소개했다. 그는 비정규직으로 여러 일을 겸하고 있었다. 주 3일은 영양 음료 회사의 영업 사원으로 일했고,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워드프레스 강좌 기획자로, 또 일주일에 두 세번은 독서실 겸 카페 공간의 관리자로 일했다. 처음부터 프리터로 일하려던 계획은 아니었다.  첫 시작이 꼬인 게 문제였다.

왼쪽이 다이키.

2013년, 다이키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었는데, 정규직으로 채용은 이미 결정된 상태였다. 채용이 내정된 곳은 투자회사였다. 그런데 웬 날벼락인지 회사의 업무가 법에 어긋난다며 정부로부터 무려 6개월간의 업무 정지를 먹었다. 채용 시즌도 끝나버렸는데 입사 전 날벼락으로 ‘정규직’ 일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 그는 지인을 통해 스타트업에 취직했다. 사무실에 도시락을 배달하는 사업이었는데, 대표도 그도 월급 한 번 못 받고 1년 만에 웹서비스가 종료됐다. 그 후 기업 프레젠테이션 영상 촬영을 돕는 알바도 잠깐 하고, 요즘도 하고 있는 카페 겸 독서실 임시 점장으로도 일했다.

그렇게 이런 저런 일을 하다가 파견회사 B-style을 통해 지금 일하고 있는 영양음료회사 영업직으로 취업했다. 정규직이 아니고 주 3회만 일을 다니니 정식 취업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는 만족한다고 했다. 그가 파견회사를 통해 취업했다고 하니 (한국에서 쌓은 편견의 눈…) ‘뭔가 안 좋은 노동조건이 있다거나, 주 3회만 일해서 월급을 후려치려고 했다거나 한 건 아닌가’하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 건 아니라더라. 오히려 다이키는 ‘자발적으로’ 주 3일만 일하고 15만엔만 벌고 살자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이라 말했다.

주 3일만 일하는  ‘느슨한 취업’

그가 참여한 프로젝트 이름은 우리말로 번역하면 ‘느슨한 취업’. 졸업생 또는 25세 정도의 청년을 대상으로 한다.

다이키는 이 프로젝트의 소개 사이트를 보여주었다.

주 4일 쉬고 15만엔을 벌자는 ‘느슨한 취업’ 프로젝트

‘ 한 사람 한 사람이 일이나 인생에 구하는 것은 점점 다양해지고 있는데,  졸업자 채용의 구조나 취업의 모습은 너무 획일적이고 비좁은 지금의 일본 사회. 거기에서 한 번 빠져 버리면, 「자신은 사회적 가치가 낮은 것이 아닌가? “라고 죄책감을 느끼고 비굴한 마음이 되어 버리는 젊은이들도 많습니다. 사회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복잡한 시대, 그런 바보짓 같은 “당연함” 따위 무시하고 더 유연하게 “일”을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 http://yurushu.jp/

파견회사 비스타일은 다행히 나의 편견과 달리 건전한 회사인 모양. 재밌는 발상이었다. 채용 시장이 너무 빡쎄다고 좌절할 게 아니라 재밌는 일로 좀 유연하게 일해보자는 프로젝트였다. 다이키는 이 프로젝트로 얻은 일에 만족하고, 다른 재밌는 일에 쏟을 시간도 확보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좀 불안정하지만 현재에 충실한 삶으로 족하다 했다. 확실히 다이키는 태평한 얼굴이었다.

 반면, 나는 머릿 속이 복잡해졌다. 일본의 거리에서 본 수많은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편의점에서 서서 밥을 먹던 청년들, 보행보조기를 끌던 노인들, 티비에 비추던 아베 총리와 원전의 이미지.

“너 진짜 이렇게 하나도 안 불안하고 그냥 막 지금 만족하고 막 엄청 좋고… 100살까지 사는데 막 걱정 안 되고 그러냐?!”

괜히 내가 더 멘붕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의 나 vs 그걸 지켜보는 다이키

 나는 물었다.

– 너 100살까지 살 텐데 진짜 안 불안하냐.

” 실제 불안하기도 해. 그치만 지금 재밌으면 되지 않냐. 지금 저금도 안 해. (진짜 하나도 안 해?) 음. 조금씩은 해. 난 그렇게 살고 있어.”

– 불안할 땐 언제인데?

” 일본에 살고 있으면 연금이나 세금이나 그런 걸 떼는데 그게 매년 늘어나니까, 그걸 내가 다 낼 수 있을까 그런 게 불안해. 대학도 사실 한 달에 13만엔(한화 약 119만원)씩 빌려서 다녔어. 지금 형제가 넷이라서 대학 등록금을 부모님에게 못 받고 빌릴 수 밖에 없었어. 잘 사는 집안이 아니라서. 보통 다들 부모님에게 받지만 나는 내가 빌려서 했어. 그게 600만엔(한화 약 5530만원)정도…. 그걸 갚지 않으면 안된다. 그게 좀.. 불안하지…”

왜 이해가 되지…왜 눈물이 나지…

-지금 갚고 있어?

” 올해 말부터 갚을 생각인데 매년 이제 얼마씩 갚으라고 정해져 있어. 그걸 갚아나가면 아마 40살 넘어갈 때쯤 갚을 수 있어. 그게 불안하지. 월 2만엔씩 갚아야 돼.”

– (심각) 야 너 갑자기 다리라도 부러지면 어떻게 해? 그래서 일을 2주,3주라도 못하면…?

” 나 졸라 건강해. (튼튼맨 포즈를 취한다) 아직 괜찮은데 그런 일 있다고 생각하면… 무서워. ”

-ㅠㅠ 보험은?

” 작년까지는 학생이어서 부모님 명의의 보험 계약이 있었고 부모님이 냈었는데, 이제 내가 사회인 신분이라 명의를 바꿔서 올해부터 돈을 내기 시작해야 돼. 작년까지 벌고 있던 돈은 (아르바이트라서) 돈 얼마 번다고 명세서가 안 남으니까 공식적으로 국가가 모르는데 연수입 108만엔 이상을 벌면 이제 내가 연금이나 사회 보험비를 내야 돼. 근데 그게 (공식적으로 돈 번다는 증명) 없어서 안 걸렸는데 이제 걸리면 안 좋은 상황이 일어날 수 있지.”

– ㅜㅜ? 늙으면 어쩌게. 늙어도 할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아니면 늙으면 정부가 케어해 줄 거다?

” 정부에서 물론 지원금 받기도 하지만, 그것 플러스 굶어 죽지 않을 거란 확신은 있어. 도쿄에 노숙자들에게 밥을 주는 시설이 있으니까. 요요기 공원 가면 엄청 많아.”

– ? 아니, 그럼 요요기 공원에서 노숙자로 밥을 얻어먹는 노후를 보낼 생각이란 소리야? 너 어떡할 거냐고 묻는 거야.

“아아. 지금부터 계속 벌어서 저축을 할 생각이야. 늙어서는 돈을 벌기 힘들지 않을까. (흠) 로또를 살 수도 있어.”

그 때 그 자리에 있던 한 일 청년 모두가 공감의 웃음을 터뜨렸다. 파하하..파하하하하핫…

“복권 산다는 건 반 농담 반 진담이야. 당첨금이 6억엔….후후…”

달관하지도 득도하지도 못한 90%

파트타임으로 여러 일을 하며 다이키가 지금 벌고 있는 돈은 한 달에 약 25만엔 정도. 남 부럽지 않은 봉급이다. 우리가 상상한 ‘프리터’의 모습과는 달랐다.

빠듯한 봉급에 어려운 생활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진짜 ‘프리’한 프리터로 살고 있었다. 사실 90년대에 처음 프리터라는 말이 등장했을 때는 다이키처럼 진짜 자유롭게 일하는 청년들을 가리킨 말이었다. 그러다 점점 ‘알바생 탈출’을 꿈꿔도 다른 방도가 없는 프리터들이 생겨났다. 일자리는 없고 정규직 채용문은 너무 너무 좁으니까. 다이키는 요즘 일본에서는 ‘프리터’가 꿈을 이루기 전까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란 의미로 쓰인다고 했다. 진짜 알바만 하고 사는 친구들도 있지만, 도쿄에 와서 알바를 하고 있는 친구들은 꿈을 이루기까지의 유예 기간을 채우고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의 친구 여럿도 그렇게 꿈을 좇는 프리터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일본에서 보편적인 케이스는 아니다.

다이키에게 모두들 너처럼 살 수 있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보편적이지 않아. 특수해. 지방은 거의 없어.”

다이키는 대학을 나왔고, 고용되지 않고도 스스로 뭔가를 기획해서 돈을 벌기도 하며, 인터넷으로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고 도쿄에 인적 네트워크도 있다. 일에 대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컨셉의 쉐어하우스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겐 자원이 있고, 꿈도 있고, 현재로서는 충분한 봉급도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낙관할 만하다. 그는 고용 시장에서 쫓겨났다기보다 스스로 고삐를 쥐기를 택한 사람이다. 이렇게 살아가는 달관 세대는 얼마나 될까.

“아마 5%~10% 정도?”

다이키는 그 비율이 더 늘어날 거라고 이야기했다. 프리랜서에 가까운 프리터가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는 아마추어 레벨에서 벗어나 좀 더 전문적인 ‘프로’ 레벨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서, 그런 프리랜서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다이키는 ‘사토리 세대’의 인간형에 가까운 편이지만, 그가 모든 것에 달관한 것은 아니다. 자유롭지 않다. 연금도 내야하고 등록금도 갚아야 하니 이미 ‘부자유’한 몸이다. 하지만 그는 능동적으로 이 시대의 불안을 헤쳐나가고 있는 편이다.

모두가 불안한 시대. 하지만 우린 각자 ‘불안’에 다르게 대처하고 있다.

모두가 불안할 만한 시대다. 시장이 변하고 일하는 방식도 변하고 있다. 예전처럼 한 직장에서 30년을 다닐 것도 아니고, 전문성이 없으면 마흔에도 회사에서 ‘팽’당한다. 다이키는 ‘달관’했기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고삐 잡히지 않고 스스로의 인생을 컨트롤 하고 있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었다. ‘덜 벌어도 덜 일하니까’ 행복한 게 아니라, 진짜 원하는 일을 찾는 유예기간이라고 생각하고 다양한 일을 하고 있어서 ‘덜 벌고 덜 일하는’ 것이고,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은 자기 삶이 없을 정도로 너~무 많은 시간을 일하고 있기 때문에 ‘덜 일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다이키는 ‘언제 불안하냐’는 물음에 학자금 대출을 생각하면 불안해진다고 대답했다. 빚을 지고 시작하는 사회생활에서 마냥 낙관적일 수는 없는 게 현실. 나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기본적으로 집들에 빚이 많다. 우리나라 가계 빚이 1,090조. 올해 추계 인구 5,062만명을 기준으로 머릿 수당 빚을 나누면 국민 1인당 2,151만원 빚이 잇는 셈이다. 빚 없는 사람도 있을 테니 실제 빚 있는 사람의 1인당 부담은 더 크다. 꾸준히 일해야 빚 갚는 건 예전이랑 똑같은데 고용은 불안해졌다.

윗 세대야 30년짜리 주택론을 빌렸어도 꼬박꼬박 월급 받아 부치면 됐는데, 이제는 토막토막 일하고 계약 갱신을 기다리니 삶의 안정도가 같을 리가 있겠나. 다리라도 한 번 부러지면 당장 다음 달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다이키는 지금은 ‘졸라 건강’해서 걱정은 안 되지만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무서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한 달만 제대로 일하지 못해도 신용불량자가 된다거나, 월세를 못 내서 집에서 쫓겨나고, 다른 일을 구할 수도 없다면?  과연 그런 상황에서도 ‘달관’ 할 수 있을까? 달관 못 한다. 월 100만원 벌고 아껴 쓰고 재밌게 놀고 있다고 해도, 달관한 게 아니다. 지금 ‘노동’하지 않으면 바로 삶이 추락하는데 어떻게 달관 할 수 있겠는가. 달관 세대론은 부유하며 낙관하는 청년만 보여주지 거기서 추락하는 청년은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는 분명 추락하고 있다.

집에서 쫓겨나는 판에 ‘달관’하겠냐

사사키 다이시로 씨는 NPO 모야이에서 일한다. 모야이는 집세를 못 내서 쫓겨났거나, 노숙자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돕는 곳이다. 정부의 주거비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상담도 해주고 여러 주거문제 이슈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는 집을 잃고 이 곳에 상담을 받으러 왔다가 여기서 일하게 되었다.

모야이의 사사키 다이시로 씨.

“3개월마다 계속 갱신계약을 하는 일을 했습니다. 패밀리레스토랑에 바로바로 식재료를 넣어야 하니까 그걸 나눠 넣는 일을 했는데, 처음에는 10명이었는데 점점 일이 익숙해져 효율이 높아졌고 결국 3명이서 8시간 동안 일을 하도록 (회사에서) 시켰습니다. 힘든 데다가, 시급은 900엔이었습니다. 매일매일 일을 하는 게 아니어서 월급은 10만엔에서 12만엔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노동 강도는 높았고, 월급은 적었다. 더 일하면 더 벌 수 있었지만 더 일하기엔 너무 힘든 일이었고 매일 일을 할 수도 없었다. 월급 10만엔-12만엔으로 도쿄에서 산다는 건 무리였다. 그가 살고 있던 집의 월세가 6만엔이었다.

“역시 10-12만엔으로는 절대 도쿄에서 혼자서 살 수 없습니다. 친구와 룸쉐어를 하게 됐고, 6만엔의 집을 3만엔 씩 나눠 내고 생활했는데 친구가 시골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어서 집이 있어도 돈을 못 내니까 집을 나오게 됐습니다. 그래서 모야이에 찾아와 상담을 했었습니다.”

가족이라든가 부모의 재산이라든가, 그런 비빌 언덕이 없었다. 사사키 다이시로 씨는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살았지만 어느새 도쿄에서 ‘집 잃은 사람’이 되어있었다.

모야이를 찾아오는 20대-30대가 늘어나고 있다. 알바로 먹고 사는 친구들도 많이 오고, 파견직, 그리고 블랙기업에서 나가떨어진 대졸자도 여럿이다. 모야이의 이나바 츠요시 씨는 “연간 모야이에 700-900명 정도가 상담을 하러 오는데 그 중 30% 정도가 20-30대”라고 말했다. 이나바 츠요시 씨는 2014년 2030 미혼남녀 저소득자 1700여명을 대상으로 주택 상황을 조사했는데, 그 결과가 놀라웠다고 말했다. 수입이 적은 젊은이들 78%가 부모와 동거 중이었고, 넷카페나 사우나를 전전하거나 노숙해본 경험을 묻자 6.6%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부모와 따로 사는 저소득 청년들의 노숙 경험은 2배나 더 많다. 13.5% 정도인데, 따지면 7-8명에 한 명 꼴이다. 츠요시 씨는 “청년들이 집을 빌리기에는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넷카페, 사우나 같은 곳을) 전전하게 되는 것 같다. 노숙자 경험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학을 졸업한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프리터만 하우징푸어가 되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회사에 등골 뽑힌 청년들이 찾아온다. 블랙 기업의 문제다.

이나바 츠요시 씨는 “전체적으로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청년들이 빈번하게 상담을 온다. 대학을 졸업한 청년이 상담을 오는 경우 중 가장 많은 패턴은 블랙 기업의 경우다. 현재 일본에서 블랙 기업이 큰 사회 문제다. 취업을 했는데 잠을 안 재우고 일을 시키고, 그래서 병에 걸려서 퇴직해야 하는 상황이 와서, 그러면 돈을 못 버니까 하우징 푸어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사사키 다이시로 씨는 “계속 야근을 시키고, 이런 경우 월급은 12만엔-15만엔이 가장 많다”고 덧붙였다.

집에서 쫓겨나면 제대로 된 일을 구하기가 어렵고, 그러면 또 간단히 파트타임으로 할 수 있는 일만 구하게 되고, 다시 불안정한 삶이 반복 된다. 블랙기업에서 스트레스 받고 등골 뽑히기 싫으면 ‘자유’롭게 일하는 삶을 택해야 하는데 그럼 생존이 위협 받는다. 생존을 택하면 어딘가에 목줄 잡혀 불안정한 장시간 노동을 감내해야 한다. 원해서 자유로운 삶을 택한, 조선일보 그린 긍정적인 ‘달관형 청년’은 소수다. 후생노동성의 보고서에 따르면 ‘원치 않은 비정규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의 비율이 25~34세에서 가장 높다. 선택으로, 원해서 불안한 고용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게 아닌 경우가 ‘청년층’에서 가장 많은 것이다.            

                

인원 수

비율(%)

전체

341

19.2

15~24세

39

17.8

25~34세

84

30.3

35~44세

72

19.6

45~54세

63

18.5

55~64세

64

16.6

65세 이상

19

10.2


*출처: 후생노동성, 2013년, ‘비정규채용의 현상’. 2013년 총무성의 노동력 조사를 참고로 작성. 여기서 비정규 채용 노동자란, 근무처에서의 명칭이 ‘파트’, ‘아르바이트’, ‘노동자파견사업소의 파견사원’, ‘위탁’, ‘그 외’인 사람을 가리킨다. ‘부본의 비정규’는 현직의 채용 형태(비정규 채용)에 대해 주요 이유가 ‘정규직원, 종업원의 일이 없기 때문’이라는 답을 한 사람. 비율은 비정규 채용 노동자들 가운데 현직의 채용 형태에 관한 주요 이유를 묻는 질문에 답한 사람의 숫자를 분모로 산출한 것이다. 

달관한다는 건 어떤 것을 ‘포기한다’는 것과도 맞닿아 있는데, 이 포기는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기보다 사회적 상황이 강제한 경우가 더 많다.  ‘햄버거 먹으며 데이트’는 좋아도 ‘햄버거를 먹이며 애를 기르는 건’ 마냥 좋아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 상황은 아무리 득도한 사람이라도 낙관할 수 없다.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것과 현재에만 충실할 수 있고, 미래를 생각할 수 없는 상태인 건 다른 거다. 일본보다 한국이 더 절망적이다. 삼포 세대를 지나 오포 세대로 간다고들 한다. 이건 달관이 아니라 분명히 ‘포기’다. 그런 상황을 방관하는 사회에서 그저 ‘오, 요즘 청년들이 달관 했다네?’하고 관찰하는 모습이 참 꼴 보기 싫다.  ‘달관’과 ‘빈곤’이 멀지 않다. 한국 청년은 그냥  ‘달관’하기도 녹록치 않다.


MARCH 2, 2015 미스핏츠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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