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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유 Oct 20. 2021

구직 기회를 잃고 나는 쓰네

MBC 공채 지원하고 1차 면접 탈락한 썰

망할 놈의 MBC 덕에 올해 드라마 수작 '미치지 않고서야'는 잘 봤다. 참 365도...

MBC 신입사원 공채 1차 면접에서 탈락했다. 지인 중에 이 글을 읽으면 엥 너 로스쿨 가려던 거 아니었니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 됐건 일을 벌였고 떨어졌고 큰 기대도 안 했는데 기분이 생각보다 더럽다. 차라리 한 대 크게 얻어맞은 기분이면 좋겠는데, 중간고사 때문에 술로 못 풀어서 그런지 잔잔하게 오래간다. 그래서 공부 시간을 할애해(?? 뭐... 유튜브 들락날락 거리는 것보다야 생각 정리를 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올린다.


어쩌다 시작된 허튼짓


때는 지난 8월... 한 14일쯤으로 돌아간다. 리트를 본 나는 고삐가 (덜) 풀린 망아지였다. 오히려 리트 준비할 때가 편안하게 느껴질 정도로, 지난 4년을 엄청난 긴장 속에서 살아왔다. 그 긴장에 정점을 찍는 게 리트였다고 생각한다. 표준점수 이런 거 다 떠나서 원점수만 봤을 때는 왠지 느낌이 좋았다. 몸과 마음이 확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본가에 가서 하루 종일 휴대폰을 봤다. 본가 가면 해야지, 싶었던 건 거의 안 했다. 위에 고삐가 (덜) 풀렸다고 쓴 이유는, 그래도 리트를 스카이에 갈 정도로 아주 잘 본 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토익을 했는데, 토익마저도 대단히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약 삼 주가 흘렀다.

시간이 지나니까 메가스터디에서 표준점수를 대략적으로 계산해 줬다. 모의지원도 열렸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문제는 나에게 있지 않았다. 문제는 나보다 시험을 너무 잘 본 사람들에게 있었다. 난 사실 로스쿨 입시를 시작할 때, A 라인 정도의 학교까지는 흐뭇하게 가고, B라인 학교까지 갈 수 있으면 재시는 안 해야지 주의였다. 그런데 뚜껑 열어보니까 A라인 학교 중 그나마 내 성적이 되는 학교에 '소신'지원할 수 있었고, B라인 학교에 안정적으로 갈 수 있는 성적이었다. 화장실 들어갈 때랑 나올 때 마음 다르다고, 그렇게 되니까 허탈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좋은 일을 하고 싶어서 법조인을 지망했는데, 왜 학교 라인 달라졌다고 이렇게까지 흔들리지? 나 진짜 법조인 되고 싶은 거 맞나? 그러고 있는데 머릿속으로 아이디어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왜 하필 그 생각이 지나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언론사 공채 지원이었다.

로스쿨 준비를 시작하면서 했던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한창 프리랜서로 방송국에서 일하던 20년 11월(그때도 난.. 엠비씨에 있었구나^^), 어느 주말에 리트를 처음 풀었는데 표준점수가 100점도 안 나왔다. 와 난 법조인은 될 수 없는 건가 생각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리트는 노력에 비례하지 않는 시험이라 그랬다. 그래서 난 리트를 말아먹었을 경우를 대비한 확실한 플랜이 필요했다. 그게 언론사 입사 준비였다. (보통은 반대로도 많이 하더라)

그런데 리트를 말아먹진 않았고, 심지어 정확히 목표한 만큼 봤는데도 여하튼 욕심이 많았던 나는 리트를 시작할 때 떠올렸던 생각을 따라가 아랑(언론인 지망생 카페)에 접속했다. 사실 리트 며칠 전에 싱숭생숭해서 봐 놓은 공고가 있었다. 한겨레와 MBC의 신입사원 모집 공고였다. 한겨레는 KBS 한국어 능력시험이 필수라 응시할 수 없었다. 남은 건 MBC였다. 원래 내 진로대로라면 취재기자직에 지원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리트 보느라 신문을 흘깃흘깃 보기만 했던 내가 논술을 쓰기는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드라마 PD 공고가 눈에 띄었다. 드라마 PD는 자주 뽑지도 않는데, 그래 PD를 쓰자. 이렇게 생각했다.


웬걸; 서류 통과와 작문 공부


서류를 냈는데 텔레파시라도 닿았는지 친구 하나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번에 MBC나 SBS 안 썼냐는 연락이었다. 나는 S는 안 썼고(S의 드라마 자회사 스튜디오 S는 세 달간의 인턴이 전형에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19학점을 듣는 막학기러고 내일 중간고사다.) M은 썼다고 답했다. 친구는 기자 준비를 하고 있었고, PD 준비를 하는 다른 친구와 셋이 논술이랑 작문 공부를 하자고 했다. 안 그래도 스터디 하나 구해야 하나 싶었기에 정말 반가웠다. 붙을지 안 붙을지 모르는 서류전형 결과를 기다리며 매주 두 편의 작문을 썼다.

난 작문 공부가 사실 재미있었다. 언론사 작문에는 온갖 기상천외한 주제가 다 나왔다. 이따금 내가 너무 늘 비슷한 방식으로 글을 써내는 것 같아 답답하기도 했고, 언론사가 원하는 작문이 어떤 것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아서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렇지만 대체적으로는 혼자 긴 글을 쓸 때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문체, 미사여구, 디테일 같은 것보다는 아이디어 자체를 좀 더 고민하게 된다는 점에서 특히 그랬다. 친구들 글 보는 재미도 있었다.

서류 발표는 예정일보다 하루 앞선 날짜에 났다. (정확한 날짜가 기억이 안 난다.) 필기시험이 대략 2주 정도 남은 시점이었다. 적성시험 준비도 시작했다. 올해 MBC는 기존의 상식 시험을 폐지하고 적성시험을 보겠다고 밝혔는데, 어떤 게 나올지 몰라 NCS와 GSAT을 둘 다 조금씩 풀었다. 친구들이랑 하는 스터디 외에도 아랑에서 스터디를 하나 더 구했다. 그 스터디에서 한 번은 일반 작문을, 한 번은 기획안 쓰기를 연습했다.  NCS 풀면서 당황스러웠던 건, 리트 칠 때 3분 정도 주어졌던 문제를 1분 30초 안에 풀게 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시험장에 갔는데 일반 작문이 아닌, 기획안 쓰기가 나왔다. 아랑에서 만난, 한 번도 뵌 적 없는 스터디원 분들께 감사한 순간이었다. 그때 써 보지 않았다면 손도 못 댔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주제는 그간 방영된 MBC 드라마 중 한 편을 골라 리메이크한다면 어떨지 기획안을 쓰라는 것이었고, 차별점(? 정확한 말이 이게 맞았는지 모르겠다)과 기존 작품과의 차이도 쓰라고 했다. 요즘 리메이크가 대세고 기획안 쓰기 많이 시키는 추세다 보니까 분명히 이 문제 써 본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떨어지는 게 안 이상할 것 같다는 생각에 갑자기 마음이 편해졌고 그래 뭐 좋은 경험 한다고 생각하지 뭐, 하면서 구상을 했다. 우선 기억나는 MBC 드라마를 리스트업 했다. 그중에 사람들이 많이 할 것 같은 작품(예컨대 대장금)을 뺐다. 그리고 인물 이름이 기억이 나는 것들을 추리니까 '동이'와 '파스타'가 남았다. '동이'를 보자마자 내가 너무 좋아해서 두 번이나 본 중국 드라마 '후궁 견환전'이 생각났다. 지금 '동이'를 떠올리면 한효주의 연기력이 아까울 지경인데, 후궁 견환전처럼 동이의 내면이나 궁중 생태계를 더 깊이 있게 다루는 궁중 암투극으로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생각하다 보니까 '파스타'에 대해서는 생각할 시간도 없어서 바로 글로 옮겼다. 끝나고 나서 언니랑 동생이랑 낮술을 했다.

또 한 2주 있으니까 결과가 났다. 사실 이번에야 말로 정말 기대 안 했는데 결과는 합격이었다. 부랴부랴 면접 스터디를 꾸렸다.


첫 정규직 면접...


로스쿨 지원을 위한 면접스터디를 하고 있고, 꽤나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기에 역량면접도 스터디를 꾸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드라마는 지원자 자체가 적어서 그런가 사람들이 잘 모이지를 않았다. 그래서 예능 피디 준비하시는 분들이랑 함께 스터디를 꾸렸다. 아무래도 예능이 드라마보다 면접이 1주일 앞이었고, 다들 바쁘신 분들이었기 때문에 자주 만나진 못했다. 하지만 다들 합격하셨기 때문에... 괜찮다 나는...

난 내가 왜 떨어졌는지 사실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것은 붙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는 우리 조 여덟 명의 지원자 중 첫 번째 면접자였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대충 열심히 말하려 했지만 어버버 하던 모습이나 아쉽게 답변했던 부분들 정도만 기억이 난다. 그렇다고 막 나오자마자 '와 백퍼 떨어졌다' 이런 느낌은 아니었는데 이런 걸 보니까 정말 면까몰(면접은 까 보기 전엔 모른다)이라는 말이 와닿는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다 보니까 확실히 기분은 좀 나아진 것 같다. 사실 나는 좀 안 아쉬워도 된다. 난 전업으로 취준을 한 사람도 아니고, 준비기간이 길었던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떨어지는 게 더 당연하다. 그러면서도 아쉬울 수밖에 없는 건, 예상치 못했던 기회를 너무 많이 얻어서인 듯하다. (예컨대 CJ 원서도 썼는데 거기는 서류부터 탈락했다. 서합률이 낮은 회사라고 듣기도 했고 서류에 기대가 크지 않았어서 상심도 적었다. 반면 M은...ㅠ 날 면접까지 불러놓고...) 원래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더 아픈 법이다.

비록 법전원이 아닌 다른 길로 갈 수 있는 기회는 날아갔지만, 방송국 지원 과정에서 법조인이 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PD로써 앞날이나 역량에 대해 바람 앞에 촛불처럼 흔들리는 내 모습이, 얼마 전까지 내가 쓸 수 있는 학교 라인업을 보면서 내가 법조인이 되는 게 맞는지 고민하던 모습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내일은 스페인어 시험이고 범위는 5단원까지인데 지금 2단원 보고 있는 게 제일 큰 문제인 것 같긴 하다만. 얼른 가서 예문 정리나 마저 해야겠다. 그럼... 똑바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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