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단군이래 최대 호황기를 보낸 미술시장의 열기는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했다.(열기가 사라짐과 동시에 관련 기사도 부쩍 줄어들었다) 2007년 말 시작된 삼성의 비자금 수사로 인한 일명 큰손들의 관망과 미술품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들로 인해 미술시장은 다소 위축된 상태로 한 해를 시작한다. 더불어 연말 아트레이더에서 제시한 당대 최고가 낙찰작이었던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 위작시비로 인해 2005년부터 국내 미술시장을 흔들었던 위작시비가 다시금 수면 위로 올라와 긴장감을 더하기도 했다. 이렇게 다사다난했던 2008년을 되돌아보도록 하자.
글을 시작하기 앞서 필자가 뽑은 2008년 미술시장 최대 이슈 Top10은 다음과 같다.
<2008 미술시장 핫 키워드>
1. 격변하는 국내 미술시장
2. 호황기를 유지하는 듯했던 글로벌 미술시장
3. 아트테크&미술강좌 붐
4. 경매사 신설
5. 작품가격 책 출간
6. 서울옥션 상장 및 홍콩진출
7. 삼성 비자금 사태, 행복한 눈물
8. 미술품 위작과 감정
9. 해외미술품 선호현상 증가
10. 양도세
그럼 2008년을 시작해 보자.
1. 격변하는 국내 미술시장
2007년 좋은 기세를 이어오던 미술시장은 2007년 3분기를 기점으로 다소 조정을 받는 모습을 보여줬다. 2008년 시작과 함께 삼성의 비자금 사태로 인해 큰손들의 고가 작품 매입이 멈췄고, 반면 20~30대 신진작가들과 함께 홍콩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시장에서 거래가 되기 시작한 몇몇 작가들의 작품들의 거래는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2007년 기세 좋게 올라가던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들은 고가로 인해 거래량이 감소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작가들의 작품들이 거래되며 시장에는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3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화랑미술제는 선전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시간이 흘러가며 미술시장은 점차 관망세가 지속되며 점차 침체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고가의 작품들이 아닌 중저가 미술품에 대한 수요가 계속 있을 것으로 판단한 커머셜 플랫폼의 경우 미술품 판매를 시작하기도 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1/0000216881?sid=103
2021년 국내 미술시장의 전례 없는 호황 이후 2022년 국내 미술시장은 하반기에 들어서며 본격적인 침체에 들어섰다. 이런 상황들을 빗대어 본다면, 경기침체 등의 외부이슈와 내부이슈가 함께 터진 미술시장에서는 고가의 작품을 시작으로 점차 거래량이 줄어들고 거래가 부담이 없는 호황기의 인기 작가의 작품들만 거래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외부 침체로 인해 즉각적인 이슈가 생기진 않지만 전문가들의 예상 범위를 넘어 침체는 생각보다 길어지는 경향을 띤다.(전문가의 예측은 참고만 하자) 고로 대외적인 거시경제의 흐름과 시장에 대한 예측은 불가능하니 시장을 보고 빠른 대응을 하는 것이 필요하리라.
https://www.fnnews.com/news/200806301703148979?t=y
https://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8090883081
2. 호황기를 유지하는 듯했던 글로벌 미술시장
연초, 다사다난한 이슈로 위축된 국내시장과 반대로 글로벌 미술시장은 연이은 낙찰가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특히, 2007년의 경우 글로벌 양대옥션들은 2006년에 비해 62%라는 높은 매출성장을 기록했다. 기세를 이어 글로벌 미술시장은 금융시장 위기, 국제 유가상승, 중국 대지진 등 다양한 악재에도 역대급 결과를 만들어냈다. 2008년 6월 30일 크리스티 런던은 1억 7180만 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1800억 원) 유럽 단일경매 사상 최고액을 기록했으며, 출품작의 50% 이상이 100만 달러 이상의 고가 작품으로 미술시장의 흥행을 이어갔다. 이런 미술시장의 흥행은 2007년 러시아, 중동, 중국, 인도 등의 신흥 부유층 중심의 흥행이 아니라 미국, 유럽 등의 전통적인 대형 컬렉터들 중심으로 이뤄진 흥행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런 상승기는 하반기가 시작되며 점차 분위기가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https://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8050537111
https://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8070139241
먼저 소더비의 경우 10월 4일 홍콩 경매가 낙찰률 59.6%를 기록하며 평균 이하의 낙찰률을 기록했으며, 상반기 유럽 단일경매 사상 최고치를 달성했던 크리스티 런던의 낙찰률이 직전 7월 경매 낙찰률 82%보다 대폭 떨어진 55%를 기록했다. 이렇게 대외경제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 글로벌 미술시장의 침체는 11월 11일 소더비 뉴욕 경매를 통해 위축된 결과를 보여준다. 해당 경매는 낙찰률 67%, 낙찰총액 1억 2513만 1500달러 (당시 환율, 약 1681억 원)를 기록했는데 이는 2008년 5월 소더비 뉴욕 경매 낙찰총액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https://www.mk.co.kr/news/culture/4509914
상반기만 해도 ‘미술시장은 경제여건에 비탄력적인 특수한 시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하반기에 들어서 시작된 본격적인 침체는 시장을 호황기의 절반으로 떨어뜨리며 많은 이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이렇듯 미술시장의 개별 작품의 하락 이전에 미술시장이 침체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거래량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이후 거래가 줄어들며 단기적인 관점으로 시장에 들어온 사람들이 빠져나가며 본격적인 개별 작품의 하락으로 이어지는데, 이런 흐름으로 인해 미술시장을 억측하고 폄훼하는 사람들이 다수 생성된다. 이는 미술시장의 특성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이 참여했기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이는데, 주식과 같이 빠른 거래가 가능한 시장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호흡이 긴 시장에는 단기적인 투자보다는 긴 호흡을 가져갈 수 있는 심적, 자금적 여유가 필요하다.
3. 아트테크&미술강좌 붐
대내외적으로 한 해는 좋지 못한 방향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연초만 해도 미술품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이전보다 무척 커진 상황이었다. 위작시비와 비자금 연루로 인해 미술품을 바라보는 관점이 크게 변했다. 먼저 미술품을 아트테크 측면에서 바라보던 사람들은 작품을 매입하는데 다소 고심하기 시작했고, 이 기간 동안 매입보다는 아트테크를 위한 지식을 쌓기 위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또한, 연일 매스컴을 통해 보도되는 부정적인 기사들은 자연스럽게 노이즈마케팅이 되어 대중들의 미술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07년 시작된 양대 옥션사와 동국대의 아트테크 강의 외에도 백화점과 은행의 PB센터들이 자신들의 고객들을 위해 아트테크 및 미술과 관련된 교양강좌를 열기 시작했다. 또한, 서울시립미술관 등에서는 일반인들을 위해 미술이론과 회화 실기과정을 신설해 미술품에 대한 높아진 관심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https://www.mk.co.kr/news/culture/4354566
https://www.fnnews.com/news/200802151853570083?t=y
https://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8011894321
이러한 점은 단순한 미술품 투기를 벗어나 미술시장과 미술품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로 굉장히 의의가 있다고 본다. 또한, 이런 이들의 노력으로 인해 시장은 계속해서 성숙하고 발전하게 되는 것이리라. 당시에는 대형 법인과 단체 등에서 여는 강좌를 통해 사람들이 미술 관련 지식을 쌓았다면, 시간이 흐른 지금은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미술과 관련된 지식이 소비되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강좌와 더불어 미술비평, 전시평 등 다양한 콘텐츠들이 온라인에서 발생하고 있으며(미술과 비평, Nant, ACK 등), 유튜버와 컬렉터 모임 등을 중심으로 소규모 강좌들이 펼쳐지고 있다.
4. 경매사 신설
2008년 전년 대비 다소 위축된 시장이 시작된 이후에도 국내 미술시장에는 다양한 옥션사들이 신설되었다. 당시에는 엄청난 이슈를 몰고 왔지만 사라진 곳도 있고, 지금까지 계속해서 활발하게 영업을 하고 있는 곳들도 있는 와중에 돌이켜 볼만한 옥션사들이 있다. 당시 로또 운영사였던 KLS에서 설립한 인터알리아와 쌈지깃을 만든 쌈지, 국내 대형 컬렉터인 세아제강, 벽산엔지니어링이 합작한 옥션별, 국내 인터넷 비즈니스의 굵직한 자취를 남긴 이금룡 회장을 CEO로 삼은 오픈옥션, 고미술 전문 옥션사 아이옥션까지 다양한 옥션이 2008년에 설립되었다. 그중에서도 인터알리아는 글로벌 옥션과 유사한 낙찰보증제도를 도입해 위탁자에게 약정된 보증금액을 경매사가 지급하는 방식을 도입했으며, 오픈옥션은 2년 내 작품을 재위탁하는 경우 작품값의 80%를 보장해 주는 전략을 도입했다.
https://www.munhwa.com/news/view.html?no=2008021301033030048006
https://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8033056151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1/0001953943?sid=103
2005년부터 시작된 미술시장의 호황은 많은 이들을 미술시장에 들어오게 만들었으나, 이런 호황을 보고 만들어진 신규 진입자들은 결국 길고 긴 미술시장의 한파를 견디지 못하고 대부분이 사라졌다. 이러한 모습들은 호황마다 반복되어 일어나게 되는데, 2021년 호황 이후 생겨난 다수의 신규 진입자들 역시 시장의 한파를 못 이기고 사라지거나 영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신규 진입을 고려하는 경우에는 호황보다는 위축된 시기를 어떻게 버텨낼 수 있는지를 고민하며 BM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5. 작품가격 책 출간
미술시장 활황으로 인해 생긴 미술품 가격에 대한 관심이 모여 본격적으로 미술품 가격과 관련된 작품가격 책이 발간되었다. 해당 책은 그간 데이터 없이 거래만 이뤄졌던 국내 시장의 상황을 돌이켜 보면 미술품 거래가를 데이터화했다는 큰 의의가 있는 책이다. 이 책의 발간 후로 한국시가감정협회가 출범했으며, 지금까지 국내 시가감정을 하는 주요 업체 중 한 곳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책은 2021년 미술 활황시 미술품 가격으로 BM을 만들어보고자 했던 이들과 개인 소장자들의 가격과 관련된 관심으로 중고가가 엄청나게 치솟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러한 열기가 사라짐에 따라 큰 반향은 없는 상황이고, 한국시가감정협회는 가격책 발간을 2018년 버전 이후 중단하고 뉴시스와 합작한 ‘K-ARTPRICE ‘와 협업을 진행해 온라인에서 개별 작가의 작품거래 이력 검색서비스를 도입했다. 하지만, 2022년 이후 해당 사이트 업데이트가 멈춰 있어 협업이 종료된 것으로 보이고 관련 유사서비스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고 있는지는 확인이 어렵다.
2021년 이후 미술품의 거래이력을 확인하는 다수의 서비스가 나왔으나, 시장의 열기가 사라진 만큼 관심 역시 줄어들어 현재는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곳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미술품 거래가 더욱 활발하고 대중화되려면 이들과 같은 데이터 기반의 미술품 가격산정 서비스가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https://www.fnnews.com/news/200801071124020822?t=y
6. 서울옥션 상장 및 홍콩진출
2008년 5월, 서울옥션은 전년도의 활황에 힘을 입어 코스닥에 상장한다. 이는 미술 관련 업체 최초의 상장으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전년도에 비해 침체되기 시작한 미술시장으로 인해 공모 당일 다소 부진한 성과를 기록했고, 상장과 동시에 서울옥션은 홍콩법인을 설립해 해외시장 공략을 함께 진행해 투자자들의 관심을 이끌었다.
https://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8050834487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2248020?sid=103
https://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8100714471
여기서 짚어볼 점은 두 가지로 보인다. 먼저, 서울옥션의 홍콩법인이 가져온 효과이다. 서울옥션은 당시 홍콩에 직접 법인을 설립하며, 시장 확장을 도모했다. 반면, 당시 케이옥션은 신와옥션과의 협업 등을 통해 일시적인 이벤트성 경매를 진행했다. 이러한 차이는 해외옥션 진행에 따른 점진적인 격차를 만들어 냈으며, 서울옥션의 경우 글로벌 미술시장에서 보다 수월한 작품수급을 만들어 냈다.
두 번째는, 서울옥션의 상장은 2022년 케이옥션의 상장을 떠올리게 한다. 케이옥션 역시 미술시장 2번째 주자로 코스닥 상장에 성공했는데, 케이옥션의 상장 역시 2021년의 활황에 힘입은 상장이라는 점과 상장 이후 다소 부진한 성과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호황 뒤에 찾아온 설립과 성과, 상장은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미술시장 돌아보기를 시작한 지 어느덧 반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물론 그 기간 계획했던 만큼 시리즈를 마무리하지 못했으나, 2008년 하반기를 마지막으로 해당 시리즈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루하지만, 함께 과거 기사를 보며 미술시장 돌아보기를 해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마지막까지 함께해 주시길 바란다. 그럼 다음 이 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