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포스터, 한 장의 사진이 갖는 힘
1편.
때는 10년 전. 아파트 화장실에서 담배냄새가 올라왔다.
"아직도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있나 봐."
오래된 아파트라 아래층 화장실에서 피우는 담배냄새가 위층으로 올라오는 경우가 있었다. 아직 돌이 지나지 않은 아기가 있다 보니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나더러 포스터라도 하나 만들어서 엘리베이터에 붙여보라고 했다. 난 싫다고 했다.
"에이. 그런다고 담배를 안 피우겠냐?"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나는 업무시스템의 화면을 디자인하고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다. IT회사에서 가장 대장은 PM이고 그다음은 엔지니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객이 최우선이고 그 담에 프로젝트이고 그리고 데이터와 프로세스가 담긴 소프트웨어. 내가 전공한 시각디자인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도가 낮은 것처럼 보였다. 화면이 거지 같아도 사용자가 필요한 기능이 있다면 일단 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더 높은 가독성과 버튼이나 메뉴가 조금 더 잘 배치된 화면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렇다 나는 디자인의 힘을 믿지 않는 쪽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내가 일하는 패션디자인 업계는 달랐다. 디자인이 가장 중요했다. 디자이너가 최고 권력자이고 매출을 좌지우지했다.
내 친구가 일하고 있는 광고회사에서도 최종 납품하는 광고 영상이나 인쇄물을 좌지 우지 하는 것은 디자인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광고회사에 다니는 학과 동기는 열을 내어 디자인의 힘을 강조했다. 나더러 변했다고 했다.
그러던 하루는 퇴근길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보았다. 포스터라기보다는 호소의 손글씨로 채워진 A4용지라고 할까. 내용은 간단했다.
재미있는 것은 그다음 볼펜으로 적혀 있는 댓글이었다.
"2호 라인도 피우지 말아 주세요"
"맞는 말입니다! 담배는 나가서 피워주세요!"
"백해무익 금연해라"
"아파트가 오래되다 보니 냄새가 올라옵니다. 부탁드립니다."
온라인 게시판에서 볼법한 공감글이었다. 가지고 있던 펜으로 적었다 보니 색깔과 굵기도 달랐고 쓴 사람이 다르다 보니 글씨체도 달랐다. 반말도 있었고 부탁조도 있었다. 그 포스터는 한동안 붙어 있었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본인이 답답해서 써서 붙였다고 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정말 그 다음날 부터 냄새가 올라오지 않았다.
어쩌면 그 흡연자 주민은 상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A4용지를 이용한 비동기 시각 커뮤니케이션이 기능을 한 것이다. 새삼 시각디자인의 힘을 느낀 날이었다.
2편.
때는 바로 지난 설 연휴 때였다. 내 동생은 키가 매우 크고 잘 먹어서 몸집이 상당히 크다. 요즘엔 회사에 일도 많고 바빠서 예전보다 더 커졌다. 하지만 멘탈갑이라 누가 살 빼라고 해도 끄떡도 하지 않는다.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뚝심. 설날에도 자연스럽게 건강이야기가 나왔고 자연스럽게 동생과 나에게 살 좀 빼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동생 같은 멘털이 없어. 맞아 빼야 돼.라고 했지만 동생은 역시나 끄떡하지 않았다.
옛날이야기하다 보니 옛날 사진을 찾아보게 되었고 우연히 키 큰 동생이 제대하고 얼마 안 된 복학생 시절 사진을 찾게 되었다. 제수씨가 함께 있는 단체 카톡방에 공유했다. 제수씨가 깜짝 놀라며 너무 좋아했다.
"꺄악!!!!!! 이 오빠 누구예요?"
동생은 식사를 하고 나서 일어나며 나에게 말했다.
"살을 좀 빼볼까?"
그 어떤 잔소리도 하지 못한 일을 사진 한 장이 해낸 것이다.
10년 주기로 새삼 시각디자인의 힘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