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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빡이 셰프와 김점숙 여사 이야기

어느 식당 홀 매니저의 고군분투 운영 이야기 #03.

1.


식당 운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을 다루는 일이다. 두 달 내내 애쓴 결과 물병을 바꾸고 일회용 앞치마를 세탁이 가능한 앞치마로 바꾸는데 성공했다. 이런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사람은 셰프인 빡빡이와 김점숙 여사(물론 가명이다)였다. 창업공신인 빡빡이는 식당에 관한 거의 모든 변화에 대해 반대였다. 이만하면 됐지, 내가 해봤는데, 이런 생각으로 가득하니 무슨 말이든 튕겨나왔다.


2.


반면 김점숙 역사는 일하는 방식에 대한 차이가 컸다. 지방 출신의 억센 사투리를 구사하는 점숙 여사는 독특한 습관이 있었는데 일회용 케이스 같은 각종  용품을 굳이 박스에서 꺼내 비닐로 둘둘 말아 주방 곳곳에 박아두곤 했다. 그런데 와이프가 오자마자 식당 곳곳을 깔끔하게 정리해두니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주 작은 일에도 다툼이 생겼다. 와이프의 고민이 커졌다.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


3.


와이프는 점숙 여사를 이해하기로 했다. 다람쥐처럼 물품을 정리하는 습관이 매출에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원하는대로 하도록 마음을 내려놓으니 자연스럽게 말을 트게 됐다. 그러다가 파출로 10개월 동안 일하다가 식당에서 쫓겨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됐다. 싸인펜으로 새치를 염색하는 남편 흉을 보는 데까지 이르자 점숙 여사는 와이프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기, 오래도록 일해."


4.


식당일 그거 뭐 그렇게 힘들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업에 대한 자부심 없이 언제도 앞치마를 팽개친채 식당을 나설 수 있는 사람들과 일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물병 하나 바꾸는 일, 앞치마 하나 교체하는 일도 때로는 수개월, 수년이 걸리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식당의 변화를 도모하는 일은 여느 직장의 리더십 만큼이나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니 매일 점심 들르는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을 가끔은 다른 눈으로 바라보자. 그곳에서도 빡빡이 셰프와 점숙 여사가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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