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일한 지 이제 7년 차가 되었다. 풍요롭진 않지만 예능을 준비하는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할 만큼은 벌었다. 그러나 위기는 언제나 예고없이 찾아온다. 갑자기 잔금을 못받기도 하고, 느닷없는 클라이어언트의 냉정한 문자를 받아들고 이미 받은 돈을 돌려줘야 하는 상황을 맞기도 한다. 아무리 조심 조심 디딤돌을 밟아도 한 순간 첨벙 하고 불안이라는 물 속 깊은 곳에 빠질 때면 대책 없이 허우적댈 수 밖에 없다. 그 두려움과 외로움은 아무리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럴 때면 마음 속 빈 곳을 채우기 위해 무언가를 사곤 한다. 당장의 필요가 아닌 이유 모를 결핍을 채우기 위해.
한 번은 에어소프트 건이라는 장난감 총에 빠진 적이 있었다. 워낙에 역사와 밀리터리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지라 유튜브를 통해 꾸준히 다양한 전쟁과 무기 스토리를 섭렵하던 중이었다. 우연히 실제 총을 그대로 복기해서 만든 듯한 에어소프트 건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말이 장난감이지 이 총들의 외관은 실제 총과 100%에 가까울 정도로 비슷하다. 다만 내부 구조는 화약이 아닌 가스로 동작하는 만큼 실제와는 조금 다르다. 에어소프트 건은 탄창에 가스를 채우고 그 압력으로 조그만 플라스틱 볼을 발사한다. 우리나라는 그 위력을 엄격히 제안하지만 많은 경우 수입할 때의 위력을 복원해 쏘곤 한다. 그렇게 발사된 총알은 골파지 정도는 가볍게 뚫는다.
문제는 이 총들이 대부분 수입산인데다 가격도 비싸다는게 문제다. 권총류는 2,30만 원, 소총은 100만 원을가볍게 넘어선다. 그런데 모든 취미의 세계가 그렇듯 한 번 빠져들면 겉잡을 수가 없게 된다. 몇날 며칠을 검색을 하면서 이런 총류를 판매하는 매장과 사격장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멈출 수가 없었다. 하나를 사면 또 다른 모델을 사고 싶어졌다.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에 쓰인 무기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작은 권총에서 시작한 총 모으기는 벽 하나를 가득 채우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쓴 돈이 얼추 700만 원에 이르렀다. 그런데 갑자기 현금이 마르는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반값에 가까운 헐값으로 애써 모은 총들을 당근에 되팔기 시작했다.
좋은 습관에도 스몰 스텝의 원리가 작동하지만 나쁜 습관도 마찬가지다. 물론 에어소프트건 수집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진지하게 자신의 취미로 만들어가면, 적당하게만 누릴 수 있다면 유니크하고 흥미로운 마니아로 살아가는걸 누가 말리겠는가. 하지만 나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이 취미는 건강하지 않았다. 생산적이지도 않았다. 엄밀하게 말하면 에어소프트 건을 좋아한게 아니었다. 그랬다면 이렇게 쉽게 그 열심과 열정이 식을리 만무했으리라. 홈쇼핑에 중독된 사람처럼 나는 필요도, 그렇다고 그것의 진짜 가치를 모르는 소비를 했다. 그 결과는 반값도 받지 못한 채 되파는 수고로 이어졌다.
그런데 나의 이런 헛헛함으로 인한 소비가 어디 에어소프트건 뿐이겠는가. 내 방과 거실. 집안 곳곳에는 이렇듯 잘못된 스몰 스텝으로 인해 낭비로 이어진 물건들이 적지 않다. 꼭 필요치도 않은 아이패드를 종류별로 사고 되팔기를 반복했다. 워낙 IT 기기를 좋아하다보니 노트북도 서너 대, 모니터도 서너 대, 키보드는 10대 이상, 그 밖의 자잘한 액세서리들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래서 요즘은 이 쓸모없는 것들을 치우고 정리하는데 공을 들이고 있다. 그 돈으로 대출금의 아주 일부라도 되갚은 소소한 기쁨을 누리고 있다. 이렇듯 스몰 스텝은 무언가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않을 인내와 용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