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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나다움’에 열광하는가?

사람들이 ‘나다움’이라는 말에 끌리는 이유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시대의 불안과 정체성의 결핍에서 비롯된다. 끊임없이 비교하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게 된다. 회사의 목표, 사회의 기준, 가족의 기대, SNS의 시선이 뒤엉킨 채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감각이 희미해진다. 그래서 “나다움”이라는 말은 마치 잃어버린 중심을 되찾게 해주는 나침반처럼 들린다. 그것은 “세상이 정한 답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기준으로 살겠다”는 선언이자, 자기 존재를 회복하려는 심리적 저항의 언어다.


예전에는 집단의 일원으로 사는 것이 안정이었다면, 이제는 개별성이 생존의 조건이 되었다. 자기만의 개성, 자기만의 생각, 자기만의 일상을 보여주는 사람일수록 주목받는 시대다. 그러나 그 ‘나다움’을 보여주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남의 잣대로 나를 측정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다움”은 단순한 성격의 표현이 아니라, 자기 이해의 과정이 된다. “나는 왜 이걸 좋아할까?”, “무엇을 선택할 때 가장 행복했을까?” 같은 질문들이 그 여정을 이끈다.


또한, 디지털 시대의 ‘나다움’은 일종의 퍼스널 브랜딩의 형태로 진화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과 가치관을 콘텐츠로 보여주며 세상과 소통한다. ‘진짜 나’를 찾고 보여주려는 욕망은 곧 ‘표현의 자유’이자 ‘자기 통제권의 회복’으로 이어진다. 알고리즘이 선택을 대신해주는 세상에서, 나답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일은 일종의 자율성의 선언이다.


결국 “나다움”은 불안한 시대의 해독제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도 괜찮다는 확신, 성과나 스펙으로 환산되지 않는 존재의 가치, 그리고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단단한 믿음. 사람들은 그 말을 통해 ‘진짜 나’를 찾고 싶어 한다. ‘나다움’이란 결국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계속해서 자기 자신을 탐색해가는 과정의 이름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에 열광한다. 그 말은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이기 때문이다.

“남처럼 살지 않아도 괜찮다. 너는 이미 충분히 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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