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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인생이 '너무 빡세다'고 말했다

지난 해 겨울,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이었다. 교회 동생이자 친구의 와이프인 K로부터 전화가 왔다. 암 투병 중인 친구의 간병을 하루만 부탁할 수 있겠냐는 내용이었다. 음식도 장만해야 하고 집안 일도 해야 하는데 하룻밤 병원에서 지내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친구의 대소변도 도와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흔쾌히 그러마고 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막상 친구와 있어보니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일단 나는 코를 심하게 골기 때문에 친구 옆 보호자용 베드에서 잠을 잘 수 없었다. 두세 시간 간격으로 친구의 상태를 체크해야 했기 때문에 복도 옆 환한 의자에서 쪽잠을 잤다. 하지만 아픈 친구 옆에선 조금도 힘든 기색을 할 수 없었다. 친구는 그후로도 10여 차례 이상 항암 치료를 받았다.


문제는 약값이었다. 치료비만 한 달에 천 오백만원이 넘는다고 했다. 다행히 회사에서 인정받은 친구는 몇 달 동안 월급의 절반을 받는다고 했다. 하지만 아파트를 팔고도 부담되는 병원비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결국 친구는 회사에 복귀를 요청했고 바로 며칠 전 첫 출근을 앞두고 있었다. 궁금해진 나는 그날도 평소처럼 카페에서 커피 사진을 보내며 안부를 물었다. 하지만 친구는 그날 회사에 출근하지 못했다. 갑작스런 뇌경색이 찾아와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다. 이틀 후 곧 퇴원한다는 말을 전하며 친구는 카톡에 이렇게 쓰고 있었다. "인생이 너무 빡세다" 남들에겐 평범한 말일지 모르겠으나 불평 불만을 거의 얘기하지 않는 친구의 '절망'이 뼛속 깊이 전해져 왔다. 왜 아니겠는가. 나도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에게만 인생에 왜 이렇게 빡세냐"


친한 교회 친구들이 모두 술을 즐김에도 이 친구는 술도, 담배도 하지 않는다. 누구보다 교회도 열심히 다닌다. 그 성실함으로 매출이 5천 억을 넘는 회사에선 상무이사, 즉 2인자의 자리에 올랐다. 그가 함께 일하는 동료는 부자 간인 회장님과 사장님이다. 그럼에도 불공평하기 그지 없는 인생의 설계자는 유독 이 친구에게 더 많은 고난을 주는 것 같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 내 친구도, 그리고 그 누구도 정확한 그 이유는 알지 못할 것이다. 누군가 암은 교통사고와 같이 찾아온다고 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매일 술 마시고, 불면증에 시달리며, 운동 중독으로 몸을 혹사하는 또 다른 친구의 건강 검진 결과는 언제나 양호하다. 하지만 원래 불공평하다고 말하기엔 인생은 너무나도 갑작스럽다. 그저 안전 운전을 기원하면 최선을 다할 뿐이다. 나이 오십, 그렇게 찾아온 중년의 삶은 환절기 날씨처럼 을씨년스럽다. 적어도 내 친구에겐 더욱 그렇다.


나는 식당, 병원, 카페를 비롯한 조그만 회사들을 돕는 브랜드 컨설팅 일을 한다. 벌써 개인사업자로 일한지 8년이 지났다. 그리고 1년 전부터는 그분들의 요청으로 출판 일도 하게 되었다. 주제는 대부분 스몰 브랜드, 그리고 세컨드 커리어에 관한 내용이다. 지금까지 7권의 책을 냈고 올해 안으로 5권 정도를 더 출간할 계획이다. 하지만 출판 일은 내 사심에 더욱 가깝다. 나이 오십은 백세 인생의 전환점이기도 하지만 원하든 원하지 않든 기존의 이력을 내려놓고 새로운 출발선 상에 서야 할 나이다. 대기업의 평균 은퇴 연령은 49세다. 지금부터 70년 대생 2차 베이비 부머 세대 900만 명이 이 '홀로서기'의 시장에 쏟아져 나온다. 걔중엔 노후를 착실히 준비한 사람들도 있겠으나 이런 저런 이유로 친구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돕는, 아니 나 자신을 돕는 그런 책을 만들고 싶었다. 세컨드 커리어가 바로 그런 주제다. 우리는 앞으로 최소한 2,30년은 더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컨드 커리어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일단 말 그대로 새로운 일자리, 혹은 비즈니스를 준비해야 한다. 아무리 대기업에서 임원을 했어도 이 나이엔 기존의 경력을 살리는 일이 매우 어렵다. 2,3억 정도의 퇴직금으로 프랜차이즈나 식당을 할 수 있는 쪽은 행운아에 가깝다. 그 정도의 준비도 안된 사람들은 택배나 대리 운전 같은 몸 쓰는 일을 해야 한다. 아무리 옛날과 같은 중년은 아니라 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기존의 수십 년 경력을 살릴 수 없는 사람은 더욱 그렇다. 나처럼 하던 일을 혼자서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은, 70까지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의외로 소수다. 그 중에서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로 만들어낸 사람은 극소수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러한 준비를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사에선 '생존'도 어렵다. 언젠가 다가올 미래를 미리 준비하는 일은 정말 어렵다.


커리어 외에도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면 건강과 재정이다. 중년부터는 노화가 자연스럽고 그로 인한 질병도 적지 않다. 노안과 비만은 기본이고 고지혈증, 고혈압, 당뇨병 같은 성인병도 슬슬 찾아올 시기다. 게다가 아이들은 대학 입시를 준비하며 수백 만원은 기본으로 하는 사교육비도 감당해야 한다. 수입은 절정에서 꺾이는데 돈 들어갈 일은 태산이다. 내 친구 역시 이런 상황에서 온갖 스트레스와 무리를 감당하느라 몸에 병이 찾아온 것이리라. 그래서 나는 그 답을 찾고 싶은 마음으로 커리어와 건강, 재정에서 준비에 성공한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있다. 그들의 글쓰기와 출간을 도우며 사실상의 1인 교습에 가까운 인터뷰를 거의 매일이다시피 한다. 그러면서 한 가지 그들의 공통점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그들이 그들 나름의 '인생의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최근에 만난 어떤 부부는 재정 관리에 관한 책을 쓰고 싶다고 했다. 남편은 대기업 전략기획실 출신, 아내는 공무원이다. 그들은 수년 전 재혼을 한 후 100세 까지의 촘촘한 '생애 재정표'를 만들어 노후 준비에 성공했다. 자산은 둘째 치고 55세에 은퇴하는 이들 부부는 연금만으로도 400만 원 이상을 받는 튼튼한 재정 구조를 만들었다. S&P 500에 투자해 몇 배로 불어난 자산은 별도다. 이들 부부가 재혼할 당시 2억 5천 정도의 전세 아파트가 전부였던 것을 기억하면 상상도 못하는 자산을 일구는데 성공했다. 건강에 관한 주제는 대구의 한의사를 만나면서 함께 책을 쓰고 있다. 다양한 성인병을 연구하는 이 원장님은 취미가 외국 논문 읽기다. 그의 도움을 받아 고지혈증과 혈압약을 끊었다. 체중은 줄고 몸은 더 좋아졌다. 이 분이 얘기하는 것도 극적인 치료법 따위가 아니다. 건강할 수밖에 없는, 적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준비와 노력은 하자는 얘기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하자 암 투병 중인 친구가 말했다. "나도 다 해봤던 것들이야" 그렇다. 인생은 준비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하지만 감히 생각컨대 내 친구가 아니었다면 다른 사람은 이미 오래 전에 세상을 떴을지도 모른다. 친구가 암을 진단받는 지는 벌써 10년을 훌쩍 넘기고 있다. 재발만 하지 않았다면 완치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친구는 그만큼 착실했고 인생을 준비하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친구의 취미는 부동산을 보러 다니는 임장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인생은 예측불가다. 하지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더더욱 나만의 인생 구조를 만드는 일은 중요하다고 말이다. 나 혼자가 아닌, 가족을 위해서라도 이런 인생의 구조 만들기는 미리 미리 준비되어야만 한다. 교통 사고는 예측할 수 없다 해도 안전운전과 안전벨트는 필수인 것처럼 말이다.


나는 앞으로도 친구의 안부를 매일 물을 것이다. 매일 아침 카페에서 일하는 사진을 올리며 친구의 답을 기다릴 것이다. 나는 그런 일상이 조금 더 오래 가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싶다. 어차피 행복이란 도달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그 과정이 아니겠는가. 커리어의 정점에 도달해도 건강하지 못하면 그 일상은 누릴 수 없다. 아무리 튼튼한 재정 구조를 만들어도 이를 채울 좋은 관계들이 없다면 행복보다는 불행에 가까울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더 일해야 한다. 100세 인생이 예찬의 대상만은 아닌 것은 그 때문이다. 나는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마다 다시는 깨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그 다음 날의 하루를 더 충실히 살 수 있을 것 같아서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기는 것, 어쩌면 그것이 세컨드 커리어를 준비하는 우리들의 자세가 아닐까. 그 하늘이 누구이든, 친구에게 좀 더 많은 시간을 허락해주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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