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직항만 이용했기에, 더더욱 긴장했던 날이다. 모든 공항이 복잡하지만 '카타르 도하 공항'은 거대한 규모와 경유 고객이 워낙 많아 새벽에도 복잡하다.
늦은 저녁을 먹고 M&M 초콜릿 사달라는 정우를 달래며, 비행기 환승 게이트를 확인하러 브라운관 앞으로 이동했다. 브라운관 근처는 게이트를 확인하려는 사람들도 인산인해다. 도저히 트롤리까지 끌며 아이와 비집고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다. 남편 혼자 인파 틈 속으로 들어갔지만 돌아오질 않는다. 아무래도 항공편을 못 찾는 듯하다. 답답한 마음에 공항 중앙 노란 곰돌이 앞에서 "정우야, 움직이지 말고, 여기서 잠깐만 있어!! 엄마가 게이트만 확인하고 금방 올게!"라고 신신당부한 뒤 10m쯤 떨어진 브라운관 화면을 확인하고 돌아왔다. 그 시간이 10초나 되었을까?
아이가 사라졌다!!!!!!
정우는 우리 셋의 배낭을 실어둔 트롤리까지 밀고 있었는데??? 대체 어디로 간 거지???
주변을 뒤지고, 정우야! 정우야!!! 크게 이름을 외치며 돌아다녀도 아이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도하공항은 거대한 규모에 환승 인원과 직원들로 워낙 붐비며 복잡해서, 키 125cm 작은 아이를 도통 찾을 수가 없다. 남편과 나는 사색이 되어 뛰어다녔다. 주변을 찾아봐도 아이가 없자, 나는 온몸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만약 정우를 이대로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지? 세계여행을 왜 왔을까? 정우는 어디에 있을까? 지금 겁먹고 울고 있진 않을까? 공항 환승게이트에 있으면 외부로 나갈 수 없으니, 반드시 찾게 될 텐데 그 순간만큼은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눈물 콧물을 흘리며 사시나무처럼 흔들리는 손으로 공항 중앙의 인포메이션 직원에게 방금 전 찍은 아이 사진을 보여주며 상황을 설명했다. 해당 직원은 공항 직원들 단체 채팅방에 정우 사진을 공유했고, 모든 직원이 당신을 도울 테니 아이를 찾을 수 있을 거라며, 나를 안심시켜주려 했다. 당시 직원에게 어떻게 상황을 설명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도하공항 중앙 인포메이션 센터 앞 대형 노랑 곰돌이
공항 직원들 단체 채팅방에 공유된 아이 사진
그렇게 정우를 잃어버린 지 20여 분이 지났다.
골든타임이 흘러가는 기분이다.
비행기 탑승시간이 다가오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큰소리로 "정우야!!!"를 외치며 뛰어다니니,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봤다. 정우와 함께 걸었던 길을 다시 확인하고, 주변의 면세점과 상점을 돌아다니며 아이 이름을 목놓아 불러본다.
남편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엄청나게 큰 소리로 "정우야!!!!!"를 외치는 순간마다, 넓은 도하공항에 짧은 정적이 흐른다.공항에 있던 사람들도 아시안 부부가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걸 알아채고, 다들 안타까운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혹시나 싶어 아까 헤어졌던 노랑 곰돌이 근처로 다시 돌아왔는데, 트롤리를 밀며 오는 정우의 모습이 보인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서로를 발견하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껴안았다.
"어디에 갔었어? 엄마가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으라고 했잖아.."
"흐어엉... 엄마! 엄마 엄마!!!"
한참 동안 아이를 꼭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아이가 진정된 후에야 물었다.
"아니, 나는 M&M 초콜릿 구경하러 갔었지."
그렇다. 이 앙큼한 녀석은 의식의 흐름대로 초콜릿 코너로 갔다. 당연히 엄마가 올 줄 알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엄마가 보이질 않으니 슬슬 불안해졌단다. 멀리서 정우야~~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단다.
'아유 참, 엄마랑 아빠는 왜 저렇게 크게 내 이름을 부르는 거야..'라고 생각했단다.
초콜릿 코너에서 기다려봐도 엄마가 오지 않자, 조금씩 불안해졌단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울지 말자고 다짐했단다. 아무래도 노란색 곰돌이 쪽으로 가야 엄마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다시 돌아왔단다. 길을 몰라서 조금 헤맸던 모양이다.
늘 정우에게 혹시나 엄마 아빠와 떨어지더라도 움직이지 않고 헤어진 자리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으면, 반드시 엄마 아빠가 올 거라고 여러 번 이야기해 주었다. 분리불안이 있던 아이에게 그림책 <우리는 반드시 다시 만나>를 자주 읽어줬었다. 어디서 헤어지더라도 우리는 반드시 만날거라고, 그러니까 여행 중에 혹시나 엄마아빠와 떨어지더라도 반드시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이야기해줬던 덕분에 아이를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아이가 없어진 해프닝은 20여 분 만에 끝이 났다. 아이와 내가 껴안는 모습을 지켜보며 미소 짓던 공항 안내센터 여직원의 모습이 아직까지도 눈에 선하다.
아이에게 초콜릿을 사주지 않았던 걸 후회했다. 수명이 10년쯤 줄어든 느낌... 윽.
이날 이후론 다시 시작된 강박증처럼 손을 꼭 잡고 다니며, 첫째도 둘째도 아 잃어버리지 마라!!라고 하시던 양가 부모님의 말씀을 다시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