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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j May 16. 2018

City is Blue

맨시티의 팬인, 한국인 남정네의 시선에서 바라본 우승 퍼레이드

여차저차 독일에서 일하게 된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한국에서 독일로 넘어오기 전, 마음속에 설렘이 있었던 다양한 이유 중 하나는 축구 직관이었다. '유럽권으로 가니 빅클럽들의 경기를 여러 번 직관하지 않겠냐'는 막연한 생각. 역시 누구에게나 계획은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막상 독일에 눌러앉으니 축구를 보러 이 나라 저 나라 가는 것이 겁나 귀찮다는 걸 깨달았다. 친구들한테 축덕 소리를 몇 번 들었던 내가 이러고 있으니 직관을 밥 먹듯 가시는 분들은 대체 축구에 얼마나 환장한 분들인가 싶을 정도였다. 함부르크에서 일하기 11개월 차인 지금까지의 직관은 한 손으로도 셀 수 있다. 고등학교 친구가 작년 가을에 함부르크에 방문했을 때 같이 HSV(Hamburger SV) 경기를 보러 간 것이 처음이고,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도르트문트 경기를 보러 갔던 것이 두 번째, 그리고 회사에서 다 같이 레알 마드리드 경기를 보러 간 것이 세 번째. 그게 전부였다. 한국에서의 상상대로라면 약 10개월 동안 최~소한 10번은 직관을 갔어야 했다. 



4번째 직관도 말장난에서 시작됐다.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 대표형은 '콥'이다. 추첨에서 맨시티와 리버풀이 만날 거란 생각은 저어언혀 없이, 정말 진지함이라고는 1도 없는 상태로 저렇게 보냈었다. 그 결과는 다들 아는 것처럼 귀신 같이 리버풀 - 맨시티였다. 말을 뱉었으니 어쩌겠나 바로 예매를 알아봤다. 일반 리그 경기와 다르게 챔스 경기였고 거기다 리그 라이벌인 이유인지 가격은 아주.. 비쌌고 회사에서 축구에 그 정도 돈을 쓸 수 있는 분들과 함께 1박 2일 일정으로 맨체스터로 날아갔다. 

이 땐 분위기 좋았었는데.... ㅅㅂ..  

결과는 1-2패. 합산 점수 1-5로 리버풀한테 참패했다. 경기는 졌지만 이티하드 스타디움 첫 직관 뽕, 챔스 직관 뽕과 더불어 평소에 이상하게 영국을 빠는 이상한 습관 덕분에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영국에서, 맨시티 홈에서, 챔스 직관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기분이 좋았다. 다만, 다음 날 바로 독일로 돌아가면서 너무 짧은 방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조만간 경기 보러 또 와야겠다 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역시나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결국은 맨시티가 리그 우승을 확정할 때까지 딱히 행동으로 움직인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홈 최종전 티켓을 알아봤지만 공식 홈페이지에선 매진, 재구매 사이트에서는 터무니없는 가격이 책정되어 있어 포기했다. 

그러던 중에 맨시티 공홈에 트로피 퍼레이드와 관련된 글이 올라왔다. 트로피 퍼레이드는 리그(혹은 챔피언스리그)에 우승한 구단이 연고를 둔 도시에서 트로피와 함께 퍼레이드를 하며 지역 주민들과 함께 즐기는 시간이다. 아무튼, 이 글을 보고 나서 바로 맨체스터로 가는 비행기표를 구매한 건 아니었다. 경기 직관도 아니고 그냥 이벤트인데 저거 보러 영국 가는 게 맞나.. 하는 생각에 계속해서 고민했다. 그러다가 그냥 샀다. 별생각 없이 아 몰라하고 그냥 샀다. 함부르크에서 맨체스터까지 가는 비행 편은 왕복 50유로 정도로 아주 합리적인데 그것 때문에 고민을 끝낸 거 같기도 하다. 아무튼 일정이라곤 우승 퍼레이드 하나뿐인 2박 3일짜리 휴가를 떠나왔다. 



행사의 내용은 선수들이 버스를 타고 출발해서, 메인 스테이지에 내려 팬들과 간단한 소통을 하는 것이었다. 이전에 이런 이벤트에 참석해본 적이 없는 나는 메인 스테이지의 게이트가 열리는 시간(16:00)보다 40분 정도 먼저 가서 줄을 서기 시작했는데 햇살이 너무 좋아서 너무 힘들었다. 선수들이 버스에 탑승해서 출발하는 시간이 6시 15분이었고 메인 스테이지에 도착하는 시간은 7시였다. (젊은 신체를 믿고 까불었던 나는 선수들이 도착하는 시간까지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끼여 3시간 반을 서있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체감할 수 있었다.) 구단은 선수들이 오기 전까지 기다리는 팬들을 위해 다양한 컨텐츠를 준비했다. 이번 시즌의 득점 장면(리그에서만 106 득점이라 영상을 4개로 잘라서 보여줬다.) + DJ의 공연 + 가수의 공연으로 나름 팬들이 기다리기 지루하지 않게 신경을 썼다.

KDB, 과르디올라 응원가

DJ(..?)가 준비한 음악에 맞춰서 팬들이 선수 응원가를 부를 때가 가장 좋았는데 마치 경기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사실 선수 응원가는 문서화된 경우가 사실상 없기 때문에 직관을 가지 않는 이상 알기가 어렵다. 물론 유튜브에 팬들이 직접 올린 응원 영상들이 있기는 하지만 뭔가 아쉬운 경우가 많다. 영알못인데다가 발음이 영국식이어서 그런지 사실상 알아듣는 건 선수 이름밖에 없었지만 같이 흥얼거리고 소리 지르는 재미가 쏠쏠했다. 

알렉산더 진첸코, 베르나도 실바, 르로이 사네

예정된 7시보다 조금 뒤부터 코치진과 선수들이 메인 스테이지에 올라와서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1군 선수단 자체도 숫자가 꽤 되기 때문에 2~3명으로 나누어 순서가 진행됐다. 선수마다 조금씩 질문이 달랐고 센스 있는 대답이 나올 때면 팬들이 환호했다.

다른 선수들보다 팬들이 더 열정적으로 반응해준 선수는 야야 투레다. 야야 투레는 이번 시즌을 끝으로 맨시티와 계약 만료가 된다. 그래서 그런지 팬들은 더욱더 목소리를 내어 응원가를 불렀고 이에 살짝 감정이 벅차오르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선수들과의 인터뷰가 모두 끝나고 콤파니의 Trophy Lift Celebration을 끝으로 행사는 끝이 났다. 선수와 팬들 모두가 오아시스의 Wonderwall을 함께 부르면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자축했다. 


우승 퍼레이드는 한국인인 나한테 아주 이질적인 문화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축구 구단이라고 하면 전북 현대, FC 서울, 수원 삼성 정도로 추릴 수 있는데 이 팀들이 우승 퍼레이드 하는 모습은 머리 속으로도 잘 그려지지 않는다. 아마 강행해도.. 정말 눈물 없이는 못 볼 짠한 그림이 연출될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뭐야 쟤네' 하는 그런 모습들. 다른 스포츠까지 범위를 넓혀도 마찬가지다. 국내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야구 구단들이 우승했을 때 퍼레이드를 한다고 해도 좋은 그림이 나올 지에 대해 전혀 확신이 없다. 연고 의식이 엄청 강해 팬들의 지지가 두텁고 스포츠가 그 도시의 문화로서 자리잡지 않은 이상, 이런 문화는 존재하기 힘들다. 


나는 평소에 해외 유명 구단들은 '빨아제끼면서' 국내 축구에 대해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사람들을 혐오해왔다. 그 나라에서 축구라는 컨텐츠가 어떻게 자리 잡아왔는가에 대한 컨텍스트 이해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종류의 문화를 기대하는 건 사실 무리다. 월드컵 3회 연속을 해도 이 문화가 수년 동안 유지될 정도로 정착하진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축구는 그렇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러웠다. 동시에 즐거웠다. 이들에겐 '이방인'이지만 그들과 함께 잠시나마 연고지 의식을 가진 팬이 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람들의 표정에서 그들이 축구를 어떻게 대하고, 그들의 응원에서 그들이 축구를 어떻게 즐기는지 조금이나마 읽을 수 있었다. 


83일 동안 무슨 일들이 있을지 아주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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