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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루가 좋아서 Nov 17. 2024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6년 만에 다시 돌아온 볼리비아

볼리비아에 오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국 생활이 너무 안온했던 탓인 것 같다. 탄자니아에서의 근무 이후 한국에 돌아와서 1년 8개월 동안 일했다. 그 기간동안 안정적인 삶이 가져다 주는 행복감을 너무나도 크게 느꼈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일상의 작은 소중함을 찾는 방법을 배웠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TV 시리즈를 밤마다 챙겨보고, 좋아하는 사람과 매일 같은 카페에 가서 일상을 나누고, 회사에서 반복되는 유형의 업무들을 처리해나갔다. 왜 사람들이 안정을 추구하는지 마음으로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커리어의 성장을 생각하면 해외로 나가야 했다. 국제개발로 커리어를 전환했기 때문에 전문가가 되려면 개발도상국에서 일해야 했다. 대학원에서 국제개발을 공부하고 해외 근무는 6개월뿐. 한국에서 1년 8개월 동안 국제기구에서 근무했지만 현장에서 멀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30대 초입에 접어든 지금 개발도상국 근무 경험을 이 시기에 쌓지 않으면, 미래의 나는 국제 경험이 6개월뿐인 국제개발 전문가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위기감이 들 때쯤 너무나도 원하던 나라의 직무 포스트가 떴고 합격했다. 25살 때에 배낭여행을 갔다가 사랑에 빠진 나라 두 곳. 페루와 볼리비아. 그중 하나인 볼리비아였고, 직무 또한 내가 한국에서 맡은 업무의 연장선이었다.


그런데 웬걸, 막상 떠나는 날짜가 다가오니 무척이나 불행해졌다. 나의 도전적인 성향이 다시금 드러날수록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주게 되었다. 그들이 내게 바라는, '하지 않았으면 하는 리스트'는 늘어만 갔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나는 그 리스트를 자꾸만 지키지 못했다. 그것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면 그것은 논박으로 이어졌다. 고요한 사람들에게는 아마 이것이 일상의 안정을 깨뜨리는 억센 소음에 불과했던 것 같다. 이 과정 속에서 나를 떠나간 사람이 있었고, 그렇게 삶의 일상이 무너졌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도전이 맞을까? 나도 사실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 매일 반복되는 삶의 행복감을 느끼고 싶은 것이 아닐까? 라는 의문이 머릿 속에 맴돌았다.


다행히도 지난 10년 동안 여러 삶의 모퉁이에서 나의 모습을 기억해주던 사람들이 용기를 북돋아줬다. 20살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는 자신의 남편을 소개해주었다. 나와 비슷하게 이것저것 논박하기를 좋아하는 성격이었는데, 그분은 그러한 과정을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나의 이런 모습이 호전적이라 생각해서 움츠러 들었는데 그것을 긍정적으로 봐주는 사람이 있어 감사했다. 졸업 시기에 자주 술을 마셨던 친구도 만났다. 그 친구는 우리가 대학교 운동장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꿈에 대해 이야기했던 기억을 끄집어냈다. 그때 나는 개발도상국의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는데 어느덧 그런 목표를 추구하는 모습이 신기하다고 했다. 대학원 진학 당시 깊은 이야기를 나눴던 분에게도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볼리비아에 가는 것을 축하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짧은 응원임에도 그의 진심이 느껴졌다.


간만에 페루와 볼리비아에 갔을 때 운영하던 소셜미디어 계정을 들여다보았다. 결혼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페루의 이카 사막에 다시 오고 싶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티티카카 호수에 가서 선주민의 투표권에 대해 이야기하려다 실패하고 관광업의 자본화에 대해 한탄했던 내용도 있었다. 여행 과정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기록하고 책에서 읽은 내용과 연결시켰더란다. 이런 것들에 가슴이 뛰었을 때가 있었다. 요즘 내가 바라던 일상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렇게 용기가 생길 때쯤 어느새 볼리비아에 다시 왔다. 정신없이 26시간 동안 비행기를 탔다. 미국과 페루를 경유하는 루트였는데 시작부터 미국 비자를 받지 않아 출국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두 시간 만에 겨우 비자를 받아 출국했다. 그런데 이번엔 또 미국행 비행기가 40분이 연착됐다. 페루로 넘어가는 환승 시간이 1시간 30분밖에 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입국 수속 줄은 길어도 너무 길었다. 연착의 책임을 지라는 의미에서 승무원을 붙잡고 조율해나갔고 공항 직원에게 예외를 인정받아 앞줄에서 심사를 받을 수 있었다. 같은 연결 비행기를 타는 여행사를 끼고 온 한국인들 틈에 섞여 지름길을 좇아가기도 했다. 도합 40키로그램의 짐을 끌고 공항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이렇게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모습. 너무 익숙한, 결국 나다. 괜히 웃음이 났다. 안정적인 일상과는 거리가 너무나도 멀었다.


라파즈 공항에서 볼리비아에 머무는 친구의 집으로 향하는 길. 도로 너머로 어두컴컴한 촌락에 정체 모를 수많은 불빛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수놓아져 있었다. (가로등일까?)

해발 3650미터 높이의 도시 라파즈. 숙소에서는 창밖 너머로 도시 속에 섞여들어간 웅장한 적빛 산맥을 마주했다.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황홀감이 느껴졌다.

사람은 역시나 환경을 바꿔야 하나보다! 이곳에서 만날 사람과 업무, 이야기들. 갑자기 모두다 너무 기대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다시금 가슴 뛰는 일들에 눈빛을 반짝이는 나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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