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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사삭 Mar 29. 2021

전기 자동차가 가져온 시간의 비즈니스

Beyond Mobility - Vol. 3


시공간의 일상, 자동차와 주유소


만땅이요!


주유원에게 연료를 가득 채워달라는 외침. 한자어 ‘만(滿)‘과 영어 ’탱크(tank)’가 합쳐진 이 국적 불문의 단어는 주유소에서 자주 듣는 말입니다. 


그 외침 이후에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돌이켜보면 연료를 가득 채우고 있는 중에 많은 유혹이 있었습니다. 앞 유리를 닦아주겠다는 서비스도 있었고 막간을 이용해 주유소에 있는 편의점과 화장실을 이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연료통이 채워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참 많은 경험이 가능합니다. 오랜 시간을 머물지 않지만 주유소는 무거워진 자동차만큼 다양한 경험의 시간이자 공간입니다.


Source: KCC 오토그룹

물론 요즘은 셀프 주유소가 늘어나면서 만땅이요, 얼마요 하는 대화는 줄었습니다. 대신 셀프 주유기의 기계 목소리가 안내를 대신합니다. 모니터에 나타나는 안내에 따라 작업을 수행하고 노즐 꽂기에 집중하면 예전처럼 동시에 많은 일을 진행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주유소는 자동차 용품 판매와 세차 등 다양한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동차를 이용하는 이상, 이처럼 주유소는 우리에게 특정 시공간을 기반으로 우리의 일상에 자리합니다.





거쳐 가는 주유소 vs. 머무르는 충전소


Fueling station, gas station, gasbar, gasoline stand, petrol bunk, fuel station, filling station. 


국가마다 주유소를 칭하는 단어가 매우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기름을 넣는 장소라는 주유소(注油所)처럼 공통적으로 기름을 의미하는 단어나 기름을 ‘채우는 행태와 장소'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주유소를 더 이상 주유소로 부를 수 없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Charging station. 자동차의 연료가 기름이 아닌 전기가 되는 세상. 


배터리를 충전하여 이동하는 전기 자동차는 더 이상 기름을 넣는 장소가 필요 없습니다. 통과하는 위치로 좋은 대로변이나 사거리 모퉁이가 주유소의 최적 입지였습니다. 


하지만 전기자동차 충전소의 시대에는 이러한 입지 조건 또한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연료의 충전이 주유를 위해 잠시 거쳐 가는 공간이 아닌 머무를 수 있는 장소에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급속충전기가 계속해서 개발되고 있지만 현재 전기차 충전소는 머무를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모두 충족해야만 합니다. 


스마트폰처럼 자동차를 충전하는 시대에는 충전의 시공간을 둘러싼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합니다.


Solar Panel Charging Car - Black Mirror, Black Museum

먼 미래를 상상하는 <블랙 미러> 시리즈에서는 태양에너지로 차량을 충전하는 모습까지 묘사됩니다.  에너지원의 변화와 함께 자동차 주유 또는 충전의 장소는 어떻게 변화할까요?

https://vimeo.com/315187631  (Source: Netflix)





전기차 인프라 시장의 새로운 플레이어들


이런 움직임을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기존 자동차 업계를 포함하여 다양한 산업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모빌리티의 허브가 자동차가 들어서는 공간과 자동차가 머무르는 시간이 만나는 지점에서 탄생합니다. 


공간과 시간을 점유한 플레이어가 시장을 잡을 수 있는 상황에서 정유, 유통, 자동차 제조사가 모두 전기자동차 플랫폼 시장으로 진출하고 있습니다.


먼저 주유소가 변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GS칼텍스는 미래형 주유소로 ‘에너지플러스 허브’를 발표했습니다. 주유, 세차, 정비 공간에서 전기차 충전, 수소차 충전, 카셰어링 등 모빌리티 플랫폼으로서 거듭나기 위한 구성을 갖추었습니다. 물류 거점, 드론 배송, 편의점과 F&B 등 충전이나 환승을 위해 멈추는 그 순간을 위해 모빌리티와 라이프 서비스 콘텐츠가 어우러진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할 계획입니다. 


단순히 자동차를 충전하는 고객의 시공간을 확보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모빌리티 서비스의 결절점으로 작용합니다.


Source: GS칼텍스 미디어허브


자동차를 직접적인 대상으로 하지 않았던 산업군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자동차의 운전자, 사람의 시공간을 점유하는 우리 일상의 공간인 쇼핑시설의 이야기입니다. 백화점, 마트 등 유통기업들이 전기차 충전사업을 중심으로 모빌리티 플랫폼 사업을 추진 중입니다. 


홈플러스의 경우, 2023년까지 전 점포 내 2000여 기의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할 예정입니다. 고객은 장 보는 시간을 확보하고 기업은 넓은 주차공간을 활용하여 전기차 충전 공간을 마련합니다. 차량 충전뿐만 아니라 신규, 중고 차량을 실제 구매하거나 정비, 세차, 주차, 보험 등 관련 구독형 상품까지 만나볼 수 있는 모빌리티 서비스 플랫폼으로 진화할 예정입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초고속 충전 브랜드 'E-pit' (Source: HMG Journal)


과거 자동차 제조사의 역할은 자동차를 잘 만들어 많이 판매하는 데에 있었습니다. 정유의 영역은 자동차와는 다른 산업으로 벽이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제조사가 고민하지 않았던 인프라의 영역이 자동차 밸류 체인에 적극적으로 포함되었습니다. 


현대차그룹은 초고속 충전 브랜드 'E-핏(E-pit)'을 통해 초고속 충전 인프라 구축을 추진하고, 포르쉐도 이마트를 중심으로 'HPC 충전소'를 설치할 계획입니다. 결국 자동차 제조사도 전기차 이용 고객의 시간과 공간을 점유하는 시설에 관심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기 자동차 시대, ‘시간’의 가능성


주유소에 들리는 평균 시간은?


이 질문을 생각해 본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주유하는 장소에서의 시간이 면밀히 고려된 사례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전기 자동차의 시대는 더욱 흥미롭습니다. 내연기관의 시대에는 없던 시간이라는 개념이 자동차 산업과 아주 밀접하게 연계됩니다. 


우리의 일상을 점유하는 시간적 경험들. 집과 회사에 머물고 장을 보는 아주 평범한 일상의 시간들이 자동차 충전과 맞물려 새로운 고객 경험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유영이


이 칼럼은 이노션 월드와이드 모빌리티사업팀에서 매 분기 발행하는 <Beyond Mobility>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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