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so Jun 04. 2024

나를 제대로 아는 것이 나를 더 자유롭게한다

대기업을 포기하고 상담심리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와 나에 대한 통찰

 상담심리학을 공부하게 된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내 마음을 내가 더 잘 알고 싶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였다. 내가 심리학을 공부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시기는 대기업에서 한창 일을 하고 번아웃이 왔을때였다. 일은 하고 있지만 내가 왜 이렇게 힘든지, 왜 이렇게 나 자신을 몰아쳐서 열심히 해야만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물론 회사 체제 자체가 경쟁적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분명한 이유는 내 안에 있었을 것이다. 너무 힘들어서 문득 내 마음속에 나있는 길을 살펴보고 싶었는데, 슬프게도 그동안 내 마음을 살펴본적이 없어서 너무 깜깜했고 답답했다. 머리에는 그냥 사람들이 쉽게 말하는 피상적인 답들이 둥둥 떠다녔다. '원래 일 하는건 힘들어.', '업무 강도가 높기로 유명한 곳이니까 당연히 그럴수밖에', '원래 일은 일이고 취미로 기분을 전환해야지'와 같은 말들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답은 한개도 없었다. 매일매일 마음이 꽉 돌덩이에 눌린것처럼 너무 답답했다. '그래, 원래 그렇다는데 나는 왜이렇게 힘들지?'하는 생각에 정말 반년에서 일년정도는 진로 고민, 인생 고민만 했던 것 같다.


 이렇게 나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가는 중에 교회를 다니면서 리더를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관심이 많아졌다. 사람들은 각자 생각하는 방식도, 느끼는 방법도, 처한 상황도 너무나 달랐다. '사람의 마음이란 도대체 무엇일까?'하는 궁금증이 생겼고 내가 나 스스로를 위로하고, 타인을 위로해줄 수 있으려면 사람 마음 공부를 더 하면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매출! 성과! 경쟁!'에 지친 나는 더 인간적이고 가치있는 일을 업으로 삼고 싶었다. 그래서 심리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일반대학원에 입학하여 심리학 석사과정을 밟으면서 사람에 대한 다양한 이론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심리상담사 일도 조금씩 시작하게되었다. 이론들을 배우면서 나에게 적용해보는 일은 매우 흥미로웠다. 그 과정에서 저절로 나에대해 조금 더 이해하고 알게 되는 부분들이 생겼다. 석사 재학 1년차에 성격심리학 과목을 수강했는데 과제 중 하나가 내 성격 검사를 여러가지 해보고 결과를 해석해 보는것이었다. 그 학기에는 감사하게도 교수님이 학생들의 결과를 가지고 해석상담을 해주셨다. 교수님께서 내 MMPI 검사 결과를 보시고는 "아이고 답답해. 가슴이 꽉 막힌것 같네. 늘 괜찮아야만 하는 그래프다."라고 하시며, "직장에서 검사한것도 아닌데 왜 직장에서 잘 보여야 하는것처럼 대답을 한것 같지?"하셨다. 그때 처음으로 '어, 내가 괜찮은척 하면서 살고있는건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교수님이 "여기에도 일할때 힘들었다고 썼는데 정말 힘들었어? 이야기하는데 왜 힘든게 안느껴지지"하시는데 갑자기 머리를 망치로 꽝 맞는 느낌이 났다. 이어서 나온 나의 대답은 "교수님, 저 정말 너무 힘들었어요. 흑흑흑."이었다. 아주 눈물 콧물이 쏙 빠지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나는 가족들중에서 무슨 일이던 알아서 척척 잘해내고, 친구도 많고, 늘 바쁘고 재미있게 사는 딸 역할을 맡았었다. 그러나 이때부터 어렴풋이 '완전히 괜찮은거 아니네'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러자 내가 눌러왔던 많은 감정들이 조금씩 나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특히 나는 불안이 높은 사람이었는데 특히 가족에 대한 걱정, 내 스펙과 성과에 대한 걱정이 큰 사람이었다. 이 부분이 늘 스스로 힘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고 "그렇게 걱정해도 알아서 잘 할거면서 뭐."라고 했지만 사실은 바쁘게 사는 삶이 결코 편안하거나 좋지 않았다. 여전히 나 스스로에 대해서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채 대학원을 졸업했고, 졸업한 해에 결혼 준비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득 결혼전에 개인분석을 받으면 나에게도 남편에게도 도움이 될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지도교수님께 상담 선생님을 추천받았고 정식으로 상담을 받게 되었다.


 일년, 그리고 상담을 그만 받고 쉬다가 이후에 다시 일년간 총 두분의 선생님께 상담을 받았고 지금은 이전에 비해 마음이 한결 가벼운 삶을 살고있다. 비유하자면 이전에는 내 삶의 무게가 100kg중 한 70~80kg으로 너무 무겁고 버겁다는 느낌이 많았는데 지금은 30~40kg로 훨씬 가볍게 느껴진다. 이렇게 된 이유는 바로 내가 나를 더 잘 알게되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기도와 친구들과의 고민상담으로 해결해보려고 했던 시간이 길었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전문적인 상담을 받으면서 내 어렸을때부터의 기억과 내면을 천천히 상담선생님과 함께 살펴볼 수 있었고 나와 내 가족, 환경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내 생각과 마음의 소화력을 기르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대기업에서 일하면서 그렇게 힘들었던 이유는 타인의 인정을 받고 성과를 내는 것으로 내 자존감을 채우려고 했고 그것이 내 삶이 잘 굴러가고 있다는 지표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럴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어렸을때부터 가족에게 정서적으로 의지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외적인 지표로 나를 채웠고, 내가 성적을 잘 받아오면 엄마의 허기진 정서를 약간은 채우는 느낌이 났기 때문에 스펙과 성과에 더욱 매달리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집에서는 내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대상이 없었으므로 나는 스스로 뭐든지 알아서 해야했고 그게 알게모르게 엄청 외롭고 힘들었던 것 같다. 정서적으로 편하게 쉬고, 의존하는 법을 모른채로 성장했기 때문에 탈이 난 것이다. 학교에서 공부했던 것 처럼 회사에서도 똑같이 열심히 일을했는데 문제는 회사가 학교와는 차원이 다른 곳이었던 것이다. 회사 성과는 성적처럼 명확하고 짧은 기간안에 나타나지 않았고, 내가 잘 할 수록 더욱 많은 성과를 내는 것을 요구하는 곳이 회사였다. 그동안에는 친한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놀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왔다. 그러나 회사를 다니면서 밤낮없이 일을하다보니 친구도 잘 만나지 못했고 몇몇 동료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나를 경쟁자로 여기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안그래도 의지할 곳이 없던 마음이 더욱 메말라갔다. 나는 마음 속 텅 빈 자리를 일로 채우려고 했지만 일은 하면할수록 더 많아졌고, 내 마음은 더 허기졌다. 기도를 해도 나아지지 않았고 일과 가족에 대한 불안이 더 커져만 갔다. 불안은 사실 화와도 관련이 있는데, 내 불안은 어떻게 보면 '일을 이렇게 많이 하는데 왜 계속 더 많아지는거야!',  '내가 이렇게 일을 열심히 하는데 나 좀 인정해주세요!', '나도 누군가에게 폭 기대서 내 마음도 편하게 쉬고싶다고!', '우리가족도 문제가 없이 화목했으면 좋겠는데 원망스러워!'하는 화였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나에 대해 알게된 아주 일부의 내용이지만 내가 왜 그렇게 일에 중독적으로 매달렸는지 더 제대로 알 수 있었고, 사람에게 일어나는 문제는 어느 한 부분에서 유독 도드라져보이지만 사실은 그 패턴이 삶 전체에 녹아져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스스로 편하게 있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었고, 누군가에게 엄청 의지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 마음을 억누르기 위해 더 바쁘게 살면서 더 괜찮은척 하는 어른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2년간의 개인분석 과정을 통해 나는 나에 대해 많은 통찰이 생겼다. 나는 쉽게 우울하고, 불안해지는 사람이다. 이것을 이전에는 억압하며 살았다면 이제는 온전히 알기 때문에 오히려 우울과 불안을 다루기가 쉬워졌다. 내가 나를 속이지 않기 때문에 감정들은 즉시 그대로 느껴지고, 그렇기 때문에 왜 우울하고 불안한지 그 이유도 바로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필요한 도움이나 조치를 할 수 있고 그래서 감정을 조절하면서 지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상담을 받으면 우울과 불안이 완전히 사라져야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 우울과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고 그것이 나를 흔드는 진폭의 정도를 줄여가는 일이다. 마음을 온전히 느끼고 자각하는 일은 오히려 마음의 균형을 쉽게 맞출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내가 나를 잘 알게되자 하나님과의 관계와 기도도 더욱 솔직하고 명확해졌다. 무조건 조건과 환경을 바꾸어 달라는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정확하게 토로하고 말씀과 기도로 위로받을 수 있게 되었다.


 만약 내가 나를 잘 모르겠다면, 내 삶이 무언가 너무 힘든데 도저히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가야할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면 공인된 자격증을 소지한 유능한 상담심리사에게 상담을 받아보기를 적극 추천한다. 처음에는 비용이 너무 비싸게 느껴질 수 있지만 꾸준히 받아보면 투자한 돈보다 더 큰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과거의 일들, 가족과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이 힘들 수 있지만 보고나면 오히려 묶인 문제에서 더욱 자유로워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을 잘 알아갈수록 삶이 가벼워지는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아기 수면교육을 그만 두게 된 이유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