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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o Dec 29. 2022

삶이 힘들고 지칠 때, 번아웃 증후군

내 삶에서 깨달은 것들에 대한 에세이

 오늘 대학원 동기와 함께 30분간 걸으며 대화를 할 시간이 있었다. 우리의 대화 주제는 '삶이 힘들고 지쳤을 때'에 대한 이야기였다. 번아웃 증후군은 DSM-5에 명시된 질병은 아니지만 바쁜 삶을 사는 현대인들 사이에서 자주 언급된다. 나는 아직 졸업 후 경력이 3년밖에 없는 초보 상담사이기에 전문성의 깊이를 논하기는 어렵지만, 굳이 생각해본다면 상담에서는 번아웃을 '소진', '무기력'이라는 말로 더 많이 설명하는 것 같다.


네이버 지식백과를 참고해보니 번아웃 증후군이라는 용어는 뉴욕의 정신분석가 프로이덴버거라는 학자가 명명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검색으로 쉽게 찾을 수 있는 증후군의 증상들은 아래와 같다(역시 또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번아웃 경고 증상에는…

1. 기력이 없고 쇠약해진 느낌이 든다.

2. 쉽게 짜증이 나고 노여움이 솟는다.

3. 하는 일이 부질없어 보이다가도 오히려 열성적으로 업무에 충실한 모순적인 상태가 지속되다가 갑자기 모든 것이 급속도로 무너져 내린다.

4. 만성적으로 감기, 요통, 두통과 같은 질환에 시달린다.

5. 감정의 소진이 심해 ‘우울하다’고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에너지 고갈 상태를 보인다.


 돌이켜 보면 나 또한 과거 5년간 회사 생활을 하면서 번아웃 증후군으로 설명될 수 있는 상태들을 경험했었다. 정말 열심히 업무에 매달렸지만 전반적으로 삶이 무기력했고, 쉽게 짜증과 화가 났으며, 일과 삶의 균형은 모두 무너졌, 감기, 장염, 위염을 달고 살았다. 심지어 술을 먹지 않았는데도(높은 업무 강도때문에 술 먹을 시간도 없음) 술먹은 다음날처럼 손발이 저리고 간이 안좋은 것 같은 컨디션이었던 날들이 꽤 자주 있었다. 


 물론 이렇게 일에 몰두했기 때문에 성과도 나름 괜찮게 났고(천재적인 수준은 아니지만 소소하게 팀과 브랜드에 도움이 되는 수준), 주변의 인정(성실함과 노력, 일 처리 속도)도 나름 받 그랬더랬다. 그런데 딱 경력 5년차로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내가 더 이상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더 크게 들기 시작했다. 사실 입사 1년차때부터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밝음과 여유가 너무 많이 사라졌다.", "너무 어두워졌다.", "힘들어 보인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기 시작했었다. 집에 오면 새벽 1시, 기상시간은 새벽 4시인 날들이 1년간 계속되었고, 살인적인 스케줄을 견디지 못하게 되면서 회사 10분 거리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수면 시간 6시간으로 늘어났지만 그러나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불행한 나만 남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일어나고 회사를 가는 것이 너무 싫어서 아침이 싫어졌고,  늘 아파서 약을 달고 살았고, 어느 순간부터는 업무가 끝나고 유사 공황 증상(그땐 몰랐지만 공부를 하고 나서 알았다)처럼 이인증, 숨이 가빠지고, 움직이지 못하고, 어지러움이 심해서 앞이 보이지 않아 걷기 어려운 증상들이 종종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람의 몸이 너무 극도로 피곤하면 오히려 잠이 오지 않는데 혼자 누워있던 자취방에서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글을 찾아보고 '식초를 물에 타먹는' 민간요법을 쓰기도 했다.


 사실 중간중간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운동도 꾸준히 다니려고 노력했고 (점심시간 중간, 혹은 야근후에라도 잠깐) 주중에 남자친구나 친구들, 동기들을 만나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다. 휴가때는 해외/국내여행도 다녀왔다. 그래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었나보다.


 그런데 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나라는 사람이 가진 문제나 이유도 영향을 주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왜 나는 그렇게 일에 목을 메었을까, 왜 못하겠다고 이야기를 하지 못했을까?'


 지금 돌아보면 나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1. 완벽주의와 조급함, 불안: 일을 빠르게 당장 꼼꼼하게 모두 처리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

2. 자존감/자기가치를 외부에서 찾는 것: 나의 성취, 외부의 인정(상사, 직급, 평가)으로부터 나의 가치를 찾는 것.

3. 일종의 이상화된 자기와 자기애:  나는 더 완벽한 존재여야만 해, 이러한 사람이어야해라는 생각. 그것에 부합하지 않는 나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는 것.

4. 부정적인 감정을 제대로 인정하거나 다루지 못한 것: 우울, 불안, 실패와 좌절감, 무기력함이 있어도 느끼려고 하지 않고 '무언가 미래의 나에게 도움이 되는(일이든 재미없는 회사 추천서들을 읽는 것이든)  일'을 하는 방식으로 억압 또는 회피하는 것.


 이러한 이유들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자기분석을 제대로 오랜기간 받은 것은 아니어서 지금은 의식 수준에서 내가 생각해볼수 있는 정도의 통찰이다.


 다행인 것은 이런 힘든 내 상태를 알아주고 걱정해준 가족, 남자친구, 목사님, 친구들이 있었고 단 한명도 이런 나를 비난하거나 몰아붙이거나 하지 않았다. 늘 내 손에 움켜쥐고 있는 것들을 놓아도 된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럼에도 내가 내 손을 펴지 못했기 때문에 5년이라는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분명 사내에서도 힘든 과정을 거쳐 빠르게 진급을 했는데도 기쁨은 느낄 수 없었고 입사 후에 체중은 8kg나 줄었다.



 어느날 분명 어디가 아픈건 아닌데 일어날수가 없던 날이 있었다. 회사에 병가를 내고 쉬었는데 처음으로 평일에 아무것도 안했다. 일부러 회사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분위기 좋은 카페에가서 읽고 싶은 책을 읽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이렇게 10년 살면 정말 행복할까?'


 하지만 높은 입사 경쟁률을 뚫고 어렵게 기도하며(나는 교회에 다니는 크리스천이다) 들어온 회사였다. 바로 포기할수는 없었고 기도하며 4개월정도는 정말 치열하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다른 진로를 찾아보기도 하고 현재 회사에서 남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위에서 이미 말한것과 같이 결국은 'No'라는 결론이 났고 나는 퇴사를 했다. 나이 30즈음에 퇴사를하고 진로를 바꾼다는건 정말 어려운 결정인데 감사한건 부모님도 남자친구도 응원과 지지를 해주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정말 감사하다.


 이런 치열한 과정을 겪고 나서, 그리고 심리전공 대학원을 2년 더 다니고 나서야  '더 잘하지 않아도, 모든걸 잘 해내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말이 비로소 마음에 진심으로 와닿기 시작했다. 내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그 말을 배울 수 있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진심으로 말해줄 수 있어서 참 감사한 깨달음이다.


'그거면 충분해, 더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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