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도폴리>, 위노나 하우터
미국생활 8년 중, 차 없이 살던 첫 5년 여의 기간 동안 우리가 가장 많이 이용할 수밖에 없었던 식료품점은 월마트(Walmart)와 페이리스(Payless) 같은 대형 마트였다. 특히 월마트는 식료품뿐 아니라 가전, 가구, 의류, 레저 등 거의 모든 섹션을 두고 있는 만큼 면적이 어마어마하게 큰, ‘초대형’ 마트였는데, 주 1회 장을 보러 갈 때마다 그 규모로 인해 금새 지치곤 했다. 통로마다, 선반마다 하나의 식료품 아이템 당 열 개가 훌쩍 넘는 가짓수의 상품들이 가득 차 있는 광경은 늘 현기증을 불러일으켰다. 그렇게 큰 매장을 좋아하지 않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30분마다 한 대씩 다니는 시내버스로 한 번에 가닿을 수 있는 곳이 바로 그런 대형 마트들이었기 때문이다. 작은 캐리어를 끌고 1주일치 식량을 겨우 사서 버스에 오르곤 했던 나는, 월마트 계산대에 선 ‘보통의 미국인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들의 카트를 가득 채운 건 각종 통조림과 반조리 식품, 감자칩 류의 과자들, 육류, 그리고 카트 둘레를 포위하듯 끼워 담은 탄산음료들이었다. 분명 양적으로는 풍요롭다 못해 넘치는데, 질적으로는 갸우뚱하게 되는 구성이었다.
월마트 같은 곳에 가면, 그렇게 포장된, 비교적 저렴한 먹거리들이 넘쳐났다. 하지만 동네 곳곳에는 그 넘쳐나는 먹거리에 접근할 수 없어 일주일에 한두 차례씩 ‘푸드 뱅크’와 연계되어 있는 동네 교회나 기관에서 나눠주는 무료 식료품을 구하려는 사람들 또한 넘쳐났다. 이주 초기, 방학 중에는 임금이 나오지 않는 시스템 때문에 학교 기숙사 건물 청소 알바를 해야 했던 남편을 둔 임산부 외국인 여성이었던 나 역시, 식료품 값을 아끼기 위해 시내 교회 앞에서 줄을 선 적이 서너 번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나눠주는 식료품은 대개, 유통기한이 긴 통조림이나 파스타 면, 또는 유통기한이 임박했거나 이제 막 지나버린 빵과 우유, 그리고 무르고 터지고 상해버린 토마토들이었다. 이상했다. 마트엔 언제나 그렇게 많은 것들이 풍족하게 쌓여 있는데, 왜 어떤 이들에겐 상해가는 것들이 주어지는 것인지. 국가적으로 ‘복지의 여왕(welfare queen)’이라는 비아냥을 듣곤 하는 저소득/빈민층이 정말로 이런 음식들을 ‘그저 공짜라면 좋아서’ 받으러 다닌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그런 의문들이 일었다. 그러다가 곧 알게 되었다. 이 ‘공짜 식료품’을 나눠주는 걸로 선심쓰고 이미지메이킹 하고 싶어하는 것 역시 그런 대기업들이라는 것을. ‘보통의 미국인들’이 식품대기업들이 대량생산하는 열량 높고 영양가 없는 ‘공칼로리(empty-calorie)’ 식품을 카트 가득 담을 때, ‘가난한 미국인들’은 이 기업들의 ‘자선’ 제스처 속에서 실은 음식물쓰레기 처리 비용을 줄여주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도.
아이를 낳고 아이 앞으로 들어오는 복지카드 같은 걸로 아이가 먹을 우유와 빵을 살 수 있게 되고, 남편이 여름에도 강의를 하며 고정 수입을 벌 수 있게 되면서 중고차나마 차가 생기자 우리에게도 선택지가 조금은 더 늘어났다. 그때서부터야 겨우 ‘의식적 소비’라는 게 가능해졌다. 버스가 가닿지 않아 자주 가기 어려웠던 소형 마트 알디(Aldi)를 주로 이용하고, 가끔은 지역 내 생산자들이 자신의 상품을 내놓으러 모이는 파머스 마켓(Farmers’ market)도 이용했다. 하지만 한계는 명백했다. 어쨌거나 우리 세 식구가 매주 먹는 일정량의 식품 대다수는 단 몇 개의 식품대기업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었고, 이 커다란 ‘푸도폴리(food+monopoly, 식품업계의 독점적 구조)’에서 개인적으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 따위는 없었다. 제아무리 의식적으로 타이슨(Tyson)의 쇠고기를 사지 않고, GMO일 것이 뻔한 옥수수와 콩을 사지 않는대도, 아이가 먹던 거버 분유와 거버 이유식은 네슬레(Nestle)에서, 싼 맛에 사 먹던 쿠키 과자와 바닐라맛 과자는 크래프트(Kraft)에서, 아침마다 밥으로 먹던 식빵과 시리얼은 제너럴 밀스(General Mills)에서 생산한 것들이었다. 네슬레, 크래프트, 제너럴 밀스 이 세 기업은 미국 상위 10대 식품 회사에 속한다. 제아무리 콜라를 안 먹는 사람이래도, 공립학교 유치원 급식에서 ‘워킹 타코(walking taco)’라는 이름으로 제공되는 점심식사가 무려 펩시콜라가 갖고 있는 과자 브랜드인 ‘도리토스(Doritos)’라는 과자를 봉지째 주고 그 위에 샐러드 채소(아마도 돌Dole의 포장 샐러드채소일) 한 숟갈, 치즈(아마도 크래프트의 치즈일) 한 숟갈, 사워크림(역시 크래프트의 사워크림일) 한 숟갈을 얹어주는 것인 마당에, 이런 식품대기업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길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400쪽이 넘는 이 책을 읽다 보면, 바로 그렇게 체념하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어 보인다. 꼼꼼히 읽기보다는 앞뒤로 뒤적뒤적 넘겨다보며 조금씩만 들여다보기를 택한 것도 실은 그래서다. 이걸 꼼꼼히 읽다간 결국 아무것도 먹을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압도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 책의 끝부분에는 귀한 해제가 실려 있다. 해제를 쓴 채효정 선생의 지적처럼, 이 책은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 묻는 대신, 그들이 무엇을 왜 어떻게 했는가를 먼저 폭로한다.”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단 하나의 일을 명확하게 제시한다. ‘푸도폴리’에 반대하고 이를 해체하는 것. “정치적으로 먹고, 정치적으로 행동하는 것”. 결국은 정치고, 결국은 행동이다. 그것만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