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게 되었다.
그게 언제쯤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차츰 아마 나는 글 쓰는 걸 놓고 있었다. 그 이유야 다양하게 있겠지만, 사는 게 바빠서라는 핑계는 아니고 다만 어느 순간 글을 연재하는 것에 대한 의미를 찾기가 힘들었다. 처음 브런치 베타 버전 때부터 시작했으니, 브런치 시작과 함께 했다고 과언이 아니다.
그땐 브런치를 이야기하면, 식사 같이 하며 얘기 하자는 줄 아는 경우가 더 많았으니... 지금은 그래도 간간히, 종종 브런치 한다고 하면 알아봐 주시는 분도 계시고 우연하게 제주도에서 브런치 하시는 분들을 뵙곤 한다.(다만, 그분들에게 내 존재를 숨기긴 한다.)
지금 제주도로 내려온 지 1년 하고 몇 개월을 보내고 있다. 이십 대 중반부터 꿈꾸던 제주도 생활이었다. 무엇을 꿈꿔왔는지 어떤 걸 바라 왔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무작정 살아봐야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다행스럽게도 내 일이 장소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일이다 보니, 다른 사람들보다는 그나마 수월했다고 해야 하나? 무튼 그렇게 내려온 제주도는 좋았다.
어느덧 나는 제주도 생활을 하나씩 정리하고 있다. 정들었던 식당, 카페, 그리고 풍경들을 조심스럽게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아참, 사설로 잠깐 빠진다면, 요즘 제주는 습하다. 너무나 습하고 습하다.
밤에 걷다 보면, 얼굴에 미스트를 뿌리는 듯 수많은 물방울들이 공간마다 꽉 채우고 있다. 그래서 집에는 24시간 제습기가 돌아가고 있고, 에어컨이 없는 내 방은 열기로 후끈거린다. 그래서 나는 매일 집 앞 카페에 와서 일을 업무를 보는 게 일상이 되었다.
다시 제주도를 정리하는 얘기로 돌아오자면, 작년 올해 개인적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스스로가 감당하기도 벅찰 정도로 매 순간을 살아가는 게 아니 숨 쉬고 있고 눈을 뜨고 있는 모든 일 년의 행위들이 힘들었던 시기다. 최근까지도 그 상황은 이어졌고,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고 했는데 나는 결과부터 맞이했고 원인을 찾으려 부단히 노력, 결국 원인을 알아냈다. 그리고, 나는 모든 상황에 크게 흥미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했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기로 했다. 제주도 싫거나 지겨운 게 아니라 내 마음을 둘 곳이 어디에도 없기에 그냥 이 조용하고 차분한 동네 마음을 온전히 두기가 힘들어졌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정신없고 바쁜 곳에 던져두어 반대로 마음의 고요를 찾으려 한다.
이 아름다운 섬 제주도는 어딜 가도 눈에 담기도 부족할 만큼 간직한 게 많고 그걸 느끼기에도 1년의 언저리 시간은 모자라다. 한 동네에서 1년을 살았지만, 매번 걷다 보면 가본 장소보다 가보지 않은 곳이 더 많은 이 좁지만 넓은 땅덩어리 여행이라는 목적으로 왔을 때에 제주도는 넓다고 느껴지지 않았지만, 막상 살다 보니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 넓다.
뭐, 내가 천천히 움직이고 크게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만약 내 삶의 방식과 속도로 제주도를 다 보려면 최소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고작 1년 남짓 살아놓고 이런 말 하는 것도 웃기지만, 그래도 짧은 시간 이곳의 모든 계절을 느껴봤으니 어느 정도 참견을 할 수 있지 않겠나? 해서 이렇게 이야기해본다.
요즘은 사진을 잘 찍지 않는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카메라를 새로 사야 할 것 같다. 나처럼 너무 오래된, 내 분신 같던 카메라가 이제 하나둘 고장 이나기 시작했고, 렌즈는 단종되어 수리조차도 안된다는 말을 몇 개월 전에 들었다. 그래도 가끔 있는 촬영 일 때문에 카메라를 써야 해서, 이제는 슬슬 이 친구를 고이 정리하여 잘 보이는 곳에 두고, 새로운 친구를 맞이 해야 할 거 같다.
새로운 카메라를 구매하면 한동안은 사진을 열심히 찍으려나? 여행, 사진 관련해서 주로 글을 써 내려갔던 내 브런치, 코로나로 인해 여행 글은 사라지고 짧은 에세이나 시의 종류만 간간히 썼다. 이제 코로나도 하나둘 풀렸으니 여행도 시작할 수 있을까?
지금 가고 싶다고 생각한 장소가 하나 있긴 하다. 바로 안나푸르나 트레킹이다. 몇 해전부터 가고 싶었지만, 코로나라는 핑계로 인해 미루고 미뤘던 일정이다. 올 해는 힘들 것 같고 아마 내년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요즘 여행 유튜버들이 많지만, 나는 게을러서인지 아님 그냥 사진이 좋아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풍경을 사진으로 담고 싶다.
제주도에 사니 제주도를 눈으로 더 많이 담는 이 기 현상은 천상 내가 게으르다는 걸 깨닫게 해 준다. 그래도 온 계절을 눈을 담고 머릿속에 저장하여 가끔씩 꺼내어 추억할 수 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함을 느낀다. 어느 날 시간이 지난 뒤 비슷한 향기와 장소가 보이면 기억 속 깊숙이 저장해 두었던 제주도를 떠올릴 수 있을 테니까.
매일 같은 루틴으로 나는 동네를 걷는다. 비슷한 시간에 식사를 하고(1일 1식 중) 비슷한 시간에 동네 한 바퀴를 돈다. 물론 매번 같은 길을 따라 같은 장소로 걷는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못 보던 친구들을 보게 되었다. 바로 고양이 가족이다. 여느 날과 다른 것 없던 길에 손 바닥보다 자그마한 생명체가 웅크리고 있어 유심히 보니 갖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 고양이었다. 혹시 버려진 건가 생각했는데 몇 미터 거리에 엄마 고양이와 다른 형제 고양이들이 있는 걸 본 나는 길을 크게 돌아 마치 "네 가족을 불편하게 할 생각 없어, 그냥 내 갈길을 갈게"라는 마음으로 무심히 지나쳤다.
그리고, 지금 약 일주일째 그 친구 들을 매일 같은 길에서 마주치고 있다. 이젠 서로를 봐도 크게 관심 없이 옆 을 지나가던 아니던 그냥 지켜볼 뿐이다.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익숙해지고 서로에서 불편해하지 않으니, 그냥 서로를 이해하게 된 거 같다. 이렇게 관계는 서로에게 불편하지만 않으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내가 바라보는 지금의 브런치와 처음 시작했을 때의 브런치는 분명 그 규모와 상황이 많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중간에 떠나간 사람과 새로 유입된 사람, 그리고 꾸준하게 작가가 되기 위해 도전하는 사람,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앞으로 브런치는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브런치는 아마 한결같을지 모른다.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나만의 글을 갖고, 그냥 생각날 때, 그리고 쓰고 싶을 때 편하게 쓸 수 있는 일기장 같은 글, 쓰는 게 의무가 되어 결과물로 이어지길 바라는 조급한 마음보다는 내 생각을 글로 정리하고 나와 같이 공감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소소한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로써 그 역할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