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하게 시작하지 말자
이것만 준비되면
이 정도의 자금만 있으면
이것만 끝내면
이 시간만 지나면
왜 이리도 ~한다면, ~된다면 이런 조건들이 많이 붙을까
무언가를 시작하는 데에 왜 이렇게도 필요조건들이 많을까
*필요조건(Necessary Condition) :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
사람이 참 그런 것 같다
정답도 알고 정답을 향해 가겠노라 다짐도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기까지는 수십 개의 핑계를 댈 수 있는 영리한 존재
운동해야지
책 읽어야지
살 빼야지
결혼해야지
글 써야지
돈 벌어야지
일찍 일어나야지
(써 놓고 보니 다 내가 했던 다짐이다)
나는 얼마 전부터 네이버 블로그 운영을 시작했다.
첫 시작은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처음 보내고 난 후 내 시간이 생겨서였다.
마음먹고 '이제 블로그 열심히 해봐야지' 그런 다짐은 딱히 하지 않았다. 그냥 시간이 남아서, 그리고 글을 쓰고 싶어서, 나의 일상을 기록하고 싶어서 나의 앨범을 보고 생각나는 글들을 적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이 함께 했던 추억, 맛있게 먹었던 음식들을 기록하다 보니 어느새 나의 온라인 보금자리가 만들어져 있었을 뿐이다.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한 지 이제 막 두 달을 넘겼다. 그리고 1일 1 포스팅을 하루도 놓치지 않았다.
제대로 된 이웃하나 없이 시작한 블로그였지만 현재는 이웃수가 100명을 넘겼고 (개중엔 본인 블로그 홍보성 이웃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매번 일방문자수가 두 자릿수에 맴돌던 내 블로그가 한 달이 지나니 세 자릿수로 늘기 시작했다.
조회수가 늘고 방문자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나의 블로그 주제가 바뀐 것도 없다.
시사, 경제 등을 다루는 거창한 내용도 없다.
그저 내가 하루 잘 먹고 잘 자고, 가족들과 즐겁게 노는 일상. 그뿐이다.
그래서 글을 쓰는 데에 더욱 부담이 없다.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은 오로지 평범한 엄마가 살아가는 이야기이니.
그리고 이제는 습관처럼 블로그에 글을 쓰게 되었고, 나의 일과가 되었다.
주부로서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블로그 운영도 하는 게 아니냐고?
꼭 그렇지만도 않다.
블로그 운영 첫 시작은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가고 시간적 여유가 생겨서였지만, 불과 한 달 만에 아이들은 가정보육을 다시 하게 되었고, 나는 16개월, 28개월 연년생 남매를 한 달 동안 가정보육하였다.
육아맘이라면 알 것이다. 3살, 4살의 아이들이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 존재인지를.. 그리고 온종일 아이들과 집에서 지지고 볶는 게 체력적으로도 마음적으로도 쉽지 않은 일임을..
아이들은 어찌나 아침에 일찍 깨는지.. 항상 아이들이 나를 깨운다.. 그렇게 나는 비몽사몽 하루를 맞이했고, 거의 12시간을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내고 아이들이 잠을 자는 밤이 되어야 고작 1시간~2시간 나의 시간이 생긴다.
그때도 밀린 집안일하고, 밥 챙겨 먹고, 씻고 그러다 보면 시간이 훅 가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 포스팅을 놓치지 않았다.
이유는 "짬짬이" 했기 때문이다.
아이들 재우는 시간에 휴대폰 앨범에서 사진을 색출해서 블로그에 임시저장해 놓고, 아이들과 놀러 가는 차 안에서 아이들이 쪽잠이 들면 그때 글을 쓰고, 화장실에서 잠시 이미지 편집을 하고 그런 식이었다.
나도 완벽한 나 혼자만의 시간에 여유롭게 블로그 하는 것을 꿈꾸긴 했었다. 하지만 서두처럼 신의 경지가 아니고서는 완벽한 타이밍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그 타이밍만 노리다가는 이미 내 의지는 꺾여있고 나이만 먹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시작해 보았다. 아이들이 잠을 자길래 글 몇 줄 써보았고, 휴대폰 앨범을 보면서 예쁜 사진 몇 장을 블로그에 저장했다. 그렇게 작게 시작하니 하나의 글이 완성되었고, "등록"을 누르게 되었다.
그리고 독서도 하게 되었다.
독서해야지라는 마음을 먹은 적은 없다. 물론 지금도.
불현듯 밀리의 서재라는 어플이 생각이 났고 평소 궁금했던 책이 마침 있어서 침대에 누워 휴대폰으로 읽어보았다.
만 하루 만에 궁금했던 책을 완독 했고, 알고리즘에 따라 메인에 있는 책을 눌러보게 되었고 어느 순간 난 또다시 책을 읽고 있다.
그리고 책을 읽다 알게 된 사실. 이 책은 940p에 달하는 책이었다.
만약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 940p짜리 책인 걸 알았더라면 읽기 시작했을까? 부담스러워서 아마 다른 책을 읽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원해서 본 책도 아니고 그저 메인에 떠 있어서 클릭한 책이거늘.
조금 가볍게 살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아니 가볍게 움직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평범한 우리가 살면서 뭐 그렇게 거창하고 대단한 것들을 하려고 할까.
글을 쓰는 일도, 운동을 하는 일도, 사업을 하는 일도, 친구를 사귀는 일도, 자격증을 따는 일도 일단 마음 비우고 가볍게 시작해 보면 어떨까
그러다 정신 차려보면 이미 중간지점은 와있지 않을까?(중간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출발점은 아닐 테니 말이다)
그러면 내가 지금껏 해온 게 아까워서라도 관성에 의해 지속하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의외로 마음을 비우고 시작하면 가늘고 길게 오래갈 수 있다. 부담이 없기 때문에.
뭐든 해보자! 지금까지 미뤄온 그 어떤 것이라도!
완벽해지려 하지 말자
잊지말자 우린 모두 완벽한 존재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그저 어제보다 오늘 한 걸음 더 나아갈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