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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니 Jul 24. 2020

결혼반지를 세 번 바꿨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을 땐 주저 말고 갈아 치우기

자고로 반지는 크고 두꺼워야지.
내 피부에는 실버가 더 돋보여.


한창 결혼 준비를 하던 때, 나는 결혼반지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나는 알이 크고 두꺼운 실버 반지를 할 거야.'

물론 결혼반지를 끼는 건 처음이었지만 인터넷으로 이미 수많은 반지들을 검색해보고 왔기 때문에 내 취향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앉은자리에서 바로 결정했다.

'이게 내 스타일이야.'



결제까지 마쳤지만 수공이 들어가야 하는 반지는 약 일주일쯤 뒤에 찾으러 오란다.

기다리는 걸 힘들어하는 나였지만, 기한이 있었기에 그나마 괜찮았다. 매일 반지를 낀 나를 상상하며 잠들었다.



지이이이잉


'반지가 완성되었으니 찾으러 오세요.'

문자를 받았고 한 걸음에 매장으로 달려가 그리던 반지를 껴보았다.




'어라, 생각보다 안 예쁘네..?'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끼어진 반지는 생각보다 내 손과 어울리지 않았고 어쩐지 투박해 보이기까지 했다. 내가 그리던 모습은 이게 아닌데 말이다.




어떻게 하면 이 반지와 정을 붙일 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고, 변화가 필요했다. 단조로운 실버 색깔이 문제라고 생각했고, 포인트를 줬다.

안쪽은 골드, 바깥쪽은 실버.

그나마 좀 마음에 들었다. 이 정도면 정을 붙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이것 또한 얼마 가지 못했다. 어딘가 만족스럽지 않았고, 더 좋은 반지가 있을 것만 같았다.

나를 너무도 잘 알았던 남편은(그때는 예비 남편) 도대체 어떻게 하고 싶냐고 물었다.



"바꾸고 싶어."

가장 나다운 말이다.



색깔에 변화를 줘봤지만 이것도 내 취향은 아니다. 그냥 디자인을 아예 바꾸고 싶었다.



어쩌겠는가. 이게 나인걸.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요리조리 맞춰갈 성격은 못 되는 나인걸.



"결혼반지인데 여보 혼자 바꾸면 어떡해?"

"디자인을 비슷한 걸로 바꾸면 되지."

참 지금 생각해도 황당하지만 그때의 내 변덕은 아무도 꺾을 수 없었다.

우리는 결국 있던 반지를 녹여 아예 새로운 반지를 만들어냈다. (사실 우리라기보단 나)

실버가 아닌 골드, 크고 두껍지 않은 적당한 두께.



이게 나이다.

변덕이 심한 아이. (굳이 좋게 포장하자면 경험을 중시하고, 해보고 싶은 게 많은 꿈쟁이)


나의 변심 이력은 이렇다.



변덕 1. 고3, 대학 포기 선언


고3, 한창 대학 입시 준비를 하던 때,

주변에서 난 명문대에 입학할 거라고 거의 확신 아닌 확신을 하고 있었다.(굳이 말하자면 서울 TOP10 정도 되려나.)

나 또한 나에 대한 기대가 있었고 대학이 너무 가고 싶었다.


웬걸, 원하던 대학들이 줄줄이 떨어졌고, 자존감은 바닥을 찔렀지만 자존심이 센 나는 그 누구에게도 티를 낼 수 없었다.


"나 대학 안 갈래."
"나 꿈이 있었어. 바리스타가 되고 싶어."


폭탄선언을 했다. 웬 바리스타. 언제부터 내가 바리스타를 꿈꿨다고.


지금 생각해도 황당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때는 그게 나의 최선(의 변명)이었고, 원하던 대학에 떨어져서가 아닌 원래부터 바리스타의 꿈을 가지고 있었던 것 마냥 포장했다.





하지만 그도 얼마 가지 못했다. 꽤 괜찮은 대학교에서 추가합격 연락을 받았고, 그 상태로 나는 그 학교에 입학했다.


대학교 1학년, 고삐 풀리듯이 놀고 즐겼다. 이게 어른들의 삶이구나! 해방이구나!

대학 포기 선언을 할 땐 언제이고, 마치 대학 생활을 위해 공부를 했던 것 마냥 즐겼다.





변덕 2. 대학교 1학년, 전과 선언


1학년이 마칠 때 쯔음, 나는 또 하나의 폭탄선언을 했다.

"나 전과할래."


원서를 넣을 땐 지금의 전공이 내 적성인 줄로만 알았는데 대학생활을 1년 겪어보니 아니었다. 세상에는 나를 더 흥미롭게 자극하는 분야가 많았고 그곳에서 더 활기를 띠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1학년을 마치고 전과를 했다. 심지어 복수 전공도 했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으니까. 이것도 저것도 다 배워보고 싶었으니까.


이제야 적성을 찾은 나는 꽤 괜찮은 학점으로 대학교를 졸업했고, 감사하게도 졸업 전에 좋은 기업에 취직도 하였다.




변덕 3. 입사 2년 차, 이직 선언


회사에서 나름 인정받는 신입으로 열심히 일했다. 일도 재밌었고, 배우는 것도 많았다. 다만 대기업 문화의 특성상(어쩌면 내가 다닌 곳이 그런 거일 수도 있지만) 내 목소리를 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나 이직할래."



나는 내 생각과 목소리를 내고 싶었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곳으로 이직을 선언했다.


내가 선택한 곳은 외국계 기업.

아무래도 외국계 기업이라 하면 조금 더 수평적인 문화를 떠올리게 되고, 나이가 아닌 능력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곳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대기업에서 외국계 기업으로 이직을 선택했다. 주변에선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내비치었다. 이제 곧 승진도 할 테고, 정년 보장된 대기업을 내려놓고 이름도 모르는 외국계 기업을 가니.

물론 대기업의 타이틀을 져버리면서 내려놓아야 할 것들이 굉장히 많았다.


수정 씨는 직장이 어디세요?

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게 'ㅇㅇ이요.' (기업 이름 하나면 모두가 아~했으니)를 더 이상 외치지 못했고, 대기업의 복지를 누리지 못했다. 부모님 또한 주변분들에게 딸의 직장을 설명하는 데에 이제 어려움에 부딪쳤다.

지금 내가 다니는 외국계 회사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 물론 나도 이직을 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으니.

어찌 됐든 나는 지금 계획에도 없던 외국계 기업에 재직 중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왜 한 곳에 적응을 못하니?'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긋하게 한 곳에 적응은 못하지만 어디든 적응할 준비가 되어 있는 거라고.




그림으로 그려보는 것과

내가 그 그림 속에서 뛰어노는 것은 천지차이이다.



내가 그린 그림 속의 동산은 예쁘지만 내 피부색, 내 체형, 내 생김새는 그 동산에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스물아홉. 많은 나이는 아니나 또래보다 꽤 많은 경험을 해 봤다고 자부할 수 있다.(설령 그 깊이가 낮다더라도.)

해보고 싶은 건 해봐야 직성에 풀리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내려놓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나이기에.


끈기는 없다. 변덕도 심하다.

이게 가장 나다운 모습이다.



싫을 땐 꾸역꾸역 버티는 것이 아닌, 그 누구보다 재빨리 내려놓고 새로운 것을 택하기. (그게 탈출구이든 진심이든.)


어쩌면 그 속에서 버텨냈더라면 객관적으로 지금보다 더 괜찮은 생활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알 수는 없다.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나 최소한 정서적으로는 불안했을 것 같다.


변덕을 부리고 나면 스트레스는 없다. 내가 갖고 싶은 걸 가졌기 때문에.


그리고 나는 단언할 수 있다.

수많은 선택지를 바꾸고 또 바꾸다 보니 지금 여기까지 왔고, 내 삶에 한 치의 미련도 후회도 없다.

선택을 하던 그때의 나에겐 모든 게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니.


인생에 정답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변덕이 만무했던 과거의 나의 선택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나의 변덕들로 만들어가는 내 삶이 적어도 내 인생에선 정답(Right)이라고 확신한다.


그게 바로 가장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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