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10월 10일 종가 기준 5만 8900원을 기록하며 우려했던 '5만 전자'로 내려앉았다.
2022년 5만 원대를 기록한 이후 19개월 만에 다시 5만 원대로 내려왔고, 불과 3개월 전인 7월 11일에 장중 최고가 8만 8800원과 비교하면 34%가량 하락한 수치다. 여기서 의문은 과연 삼성전자라는 기업이 불과 3개월 만에 '위기'에 직면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삼성전자의 위기는 이미 2018년부터 시작돼 왔고, 그 위기가 본격적으로 가시화된 시점이 지금이다.
전영현 부회장의 사과문 일부
'어닝쇼크'로 평가되는 올 3분기 잠정실적을 발표한 10월 8일 삼성전자 DS부문장인 전영현 부회장은 직접 자신의 이름을 걸고 사과문을 올렸다. 이 사과문에서 가장 처음 나오는 내용이 '기술의 근원적 경쟁력 복원'이다.
삼성전자의 기술력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2018년 이재용 회장의 '파운드리 세계 1위' 선언 이후다. 그 이전까지 파운드리는 반도체 사업에서 서브에 불과했지만, 이 선언 이후 파운드리 세계 1위가 삼성전자의 미래 비전으로 제시됐다. 관련 투자도 과감하게 이뤄졌다.
하지만 파운드리 세계 1위 선언 이후 6년이 지난 현재 대만 TSMC와의 점유율 격차는 더욱 벌어졌고, 2030년으로 제시한 세계 1위 목표 시점까지 1위를 달성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운 상황이다.
메모리에선 과감한 투자와 대규모 양산으로 초격차를 이뤘지만, 파운드리는 아무리 과감한 투자를 해도 물량을 맡겨줄 '고객'을 찾지 못하면 수익을 낼 수 없다.
근본적으로 삼성전자가 현재의 위기를 초래하게 된 이유는 한때는 최대 장점으로 불리던 다양한 포트폴리오에 있다. 힘을 하나로 집중해야 하지만, 집중하기엔 너무 많은 사업에서 세계 1위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10일 삼성전자는 인터브랜드 ‘글로벌 100대 브랜드’에서 브랜드가치 1008억 달러 기록, 5년 연속 ‘글로벌 톱5’ 수성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의 브랜드가치는 전년 대비 10% 성장한 1008억 달러로, 글로벌 5위를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브랜드가치 상승 원인에 대해 AI 관련 산업 전반의 성장에 힘입어 모바일 AI 시장 선점과 AI 기술 적용 제품 확대, 반도체 부문 AI 경쟁력을 통해 큰 폭으로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세계 브랜드가치 상위 10개 회사는 △애플(4889억달러) △마이크로소프트(3525억달러) △아마존(2981억달러) △구글(2913억달러) △삼성전자(1008억 달러) △토요타(728억달러) △코카콜라(612억달러) △메르세데스벤츠(589억달러) △맥도날드(530억달러) △BMW(520억달러) 등이다.
하지만 브랜드가치 톱10 중에 반도체 기업으로 유명한 엔비디아, TSMC는 찾아볼 수 없다. 삼성전자보다 브랜드 가치가 위에 있는 4개 기업은 모두 '서비스'를 중심으로 매출을 내는 회사들이다.
결국 현재는 서비스를 만드는 기업과 그 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을 제공하는 엔비디아, TSMC 같은 기업들이 서로 손잡고 성장하는 시대다.
이런 측면에서 삼성전자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둘 다 놓치고 있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삼성전자는 절대 자사의 브랜드 가치를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고객사에 요청에 따라 반도체를 생산하는 '파운드리'사업에선 치명적인 단점이다.
이런 브랜드 전략 탓에 삼성전자가 지금도 고집하고 있는 '온디바이스 AI'가 나오고 있다고 여겨진다. 온디바이스 AI는 갤럭시S24에 탑재된 AI 번역과 같이 기계 자체에 탑재되는 AI다. 프로그램이 아니라 하드웨어적으로 탑재해 인터넷이 되지 않은 오프라인 상태에서도 AI를 구현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현재 '인터넷이 되지 않은 오프라인 상태'가 될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비행기를 타고 가거나 무인도에 떨어지지 않는 한, 과연 오프라인 상태에서 AI를 쓸 일이 얼마나 있을지 사업 초창기부터 강한 의문이 들어왔다.
이런 온디바이스 AI에 집착하다 보니 글로벌 AI 서비스 기업과 긴밀하게 협업하지 못하고, 브랜드로도 경쟁 관계에 놓인 상태에서 압도적인 기술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메모리 시장에서도 늘 시장과 기술을 압도적으로 선도해 왔다는 자부심 탓에 HBM과 같이 고객사의 니즈에 맞춰 공급해야 하는 제품에서 SK하이닉스에게 뒤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그동안 삼성전자 반도체 수장은 모두 메모리 사업에서 성장하고 성공 신화를 써 온 엔지니어 출신이 맡아왔다. 김기남, 경계현, 전영현 다 마찬가지다.
이 분들은 다 '기술력=사업 경쟁력'이란 믿음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대규모 투자와 대규모 양산으로 승부를 보는 메모리와 달리 파운드리나 시스템반도체는 고객사의 니즈를 파악해 협업해야 하는 사업이다.
과연 전영현 부회장의 사과문에서처럼 삼성전자가 기술 경쟁력을 복원하고 브랜드 가치를 지키면 다시 부활의 날갯짓을 할 수 있을까.
삼성전자가 세계 1위를 했던 TV, 스마트폰, 중소형 OLED, D램, 낸드플래시 등 모든 제품은 수직계열화를 통해 독자적으로 치고 나갈 수 있는 분야들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협업에 능한 기업이 살아남을 것이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