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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im Oct 21. 2020

나의 첫 직장

Day 45

졸업반 시절 매년 더해지는 취업난의 여파에 

함께 취업 준비를 하던 또래의 친구들 사이에 불안감이 만연했다.


누구나 대기업에 들어가길 희망했고 

그중에도 초봉이 높고 누구나 인지하는 그런 회사들은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나 역시 그런 곳들을 원했고 많은 곳에 지원서를 넣었다.


대다수의 결과는 면접도 가기 전에 좌절이었다. 아마도 학점 때문이었으리라.

"그놈의 경험" 속으로 살짝(?) 후회하기도 하며 모자란 내 학점에 대해 한탄도 했다. 

그러다 딱 2 군데서 연락이 왔다.

소비재를 판매하는 외국계 기업 한 군데와 초고속 성장으로 대기업 반열에 오른 대기업 한 군데였다. 수많은 좌절을 맛보았기에 두 군데 모두 면접을 보았다. 너무도 간절했고 두 군데 모두 합격했다. 장고 끝에 훗날을 위해 대기업을 선택했다.


여러 계열사를 가지고 있던 회사에

조선, 해운, 자원, 선박 애프터마켓, 대형 크루즈, 에너지 등 다양한 수직계열화의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었고 나는 그중 자원 쪽인 상사 역할을 하는 지주사에 입사했다. 


회사가 신입사원에게 과감한 투자를 했던 것 중 하나가

수백 명이 넘는 공채 입사자들을 크루즈에 태우고 중국 연수를 다녀오는 교육 과정이 있었다.

중국에 있는 조선소도 보고 주요 거점들을 돌며 회사에 대한 애사심을 키우도록 밀어줬다.


그런 비용을 쓸 수 있다는 것이 한참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든 과감한 투자였으며 얼마나 신입사원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초고속 성장의 배경을 서포트할 수 있는 인재 등용의 숨은 무기 같은 것이었으리라 판단된다.


그렇게 해외 연수를 다녀오고

해외영업으로 입사한 회사에서 인사팀과 부서 결정 면접을 하게 되었는데

바다를 좋아하고 취미이자 특기인 요트, 그리고 배에 관심이 많던 터라 

조선영업을 1순위로 지원했다. 실제 입사 면접에서도 그렇게 합격을 했으니 당연히 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회사 차원에서 인력을 필요로 하는 부서에 우선 배치되도록 하고 있고 조선영업 사업부보다는 자원사업본부가 영업실적이나 확장성, 인재 필요도가 높으니 전환 배치하는 방향으로 반강제적으로 결정하였고 그중 화력발전용 석탄을 선택하게 되었다. 


무슨 아이템인지도 모르고 선택한 직무에 초반 OJT(On the job training)에서 도대체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해 학습하는데 시간을 할애했고 '세상을 움직이는 거대한 에너지 자원의 무역업'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 실제 거래되는 연간 거래 금액이 수백억을 넘어갈 정도로 규모가 컸고 시황에 영향을 적게 받는 차세대 핵심 사업이라는 인상을 깊게 받았다.


그렇게 시작한 업무는 무역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되었고 그다음 거래처였다. 특히 트레이딩은 기본적으로 정보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정보원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고 있는가가 승패의 핵심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업계 사람들 속에서 얼마나 핵심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가,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신뢰가 있는가, 믿을만한 사람인가, 일을 잘하는가 등등 다양한 요소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쌓여야만 이 일을 잘할 수 있었다.


광산을 소유하고 있어 광산의 관리, 생산되는 생산물을 세계 각 지역에 판매하는 일, 현장과의 소통, 바이어와의 소통, 영업 등 다양한 업무를 소화해야 했고 그 이외의 시간은 큰돈이 오가는 일인 만큼 숫자를 정리하는 일, 은행 여신을 관리하는 일(은행, 재무팀, 회계팀과의 커뮤니케이션), 지사와 소통하는 일 등에 에너지를 많이 썼다. 


그리고 사고파는 일을 하다 보니 전 세계 업황을 잘 보아야 하고 해운 시황, 날씨까지 고려해야 했는데 날씨는 석탄의 특성상 비가 오면 탄이 젖고 식어서 열량이 손실되기에 가치가 하락하게 된다. 그리고 배에 싣고 내리는 작업도 불가능해 운임비가 추가적으로 발생하게 되고 보관비 등등 부가적인 비용이 상상을 초월하게 발생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정보에도 민감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삼국 간 거래를 하다 보면 환율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데 언제 사고 언제 파는지 계약서, 거래 확약서 등 송금에 관한 도장이 찍히는 날짜의 매매기준율에 따라 환차익도 발생하기 때문에 이 또한 관리 대상 중 하나였다.


이런 복잡한 일들을 소수의 인원들이 다이내믹하게 풀어나가야 하는 일이었다. 실제 주니어였던 나에게도 부족한 인력의 회사 사정상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중간 관리자들이 토스했던 게 많았던 것 같지만) 사람을 만나는 일부터 실제 은행을 상대하는 일, 거래처 커뮤니케이션 등 다양한 업무를 실제 할 수 있었다.


다만 일을 하는 방식이 과거와 현재, 미래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것, 회사 성장의 이면에 시스템과 관리, 재무적 이슈 등 악재가 겹치면서 성장 속도만큼 빠르게 사세가 기울었다는 점이 롤러코스터처럼 입사 3년 차가 되지 않은 시점에 타의적 퇴사를 고민해야 했던 아픈 직장이 되었지만 말이다. 


입사 초부터 중요한 일을 다양하게 할 수 있었던 값진 경험

흥하고 망해가는 회사를 함께 경험한 동기들

망해가는 회사에서 경험했던 일들 특히 사람들의 관찰, 법적 분쟁, 심리적 갈등 등의 일

산업을 보는 큰 시야

세상을 움직이는 에너지와 환경 문제


심리적인 동요를 수없이 다잡고

퇴사와 이직의 고민들

미래에 대한 생각


다양한 관점에서 나를 돌아보고 일에 대한 고민도 했던 시기였다.


그 정도면 첫 직장 치고는 충분히 값진 경험이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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