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별에서 14화
밀가루 반죽에 뜨거운 물이 쪼르륵 떨어진다. 팔을 걷어붙인 태구가 끓기 시작한 멸치 육수의 불을 줄이며 말했다.
"좀 더 맛있는 걸 먹으면 좋을 텐데 이런 대접을 해서 죄송합니다."
목에 걸고 있던 카메라를 풀던 기자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닙니다. 세상에 누가 챔피언에게 수제비를 대접받아 보겠습니까."
태구는 손가락으로 살살 밀가루를 흐트러 트리다 서서히 힘을 주며 반죽을 시작했다.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음식은 자주 해 드시나요? 엄청 익숙해 보이시는데요."
"예. 오프시즌에는 꽤 하는 편입니다. 시간이 남기도하고 하다 보면 아무 생각도 안 들어서 좋습니다. 옛날 사람처럼 먹을걸 준비하고 먹고 자고 하는 게 저는 좋습니다."
태구의 말처럼 이렇다 할 물건이 없는 집이었다. 신의 오른손이라는 별명을 가진 승승장구 하고 있는 챔피언의 집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집안이 휑했다.
"좀 동굴 같죠?"
"아닙니다. 미니멀하고 좋습니다."
기자가 집을 가볍게 둘러보는 사이 반죽을 하는 태구의 이마에는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거의 다 되어갑니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아요."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
"예 물론입니다. 쓸만한 사진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요, "
기자는 카메라를 들어 태구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충분히 줌을 당겨 얼굴이 가득 차게 해 본다. 언제 봐도 단단한 얼굴이었다. 챔피언의 얼굴이란 저렇게 부서질 곳이 없는 표정을 지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신의 오른손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강태구 선수의 손에서 빚어지는 수제비가 어떤 맛일지 무척 기대가 됩니다."
물건이 없는 집이라 그런지 기자가 누르는 셔터 소리가 집안에서 잔향을 일으켰다.
"모든 반죽이 그렇겠지만 수제비 반죽은 꾹꾹 눌러주는 게 중요합니다. 공기를 빼고 밀도를 높여 주어야 좋아요. 그래야 국물 안에서도 풀어지지 않고 씹었을 때 식감이 뛰어난 아주 쫄깃한 반죽이 완성됩니다."
"그렇군요. 저는 만들어 본 일이 없어서.. 사실 저는 인터뷰를 하는 자리에서 수제비를 만들어주신다고 하셔서 조금 놀랐습니다.
"그건 아마 제 생각과 연관이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저는 훈련을 할 때 아주 쫄깃한 수제비를 만든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제 주먹이 수제비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링에서 너덜너덜하게 땀에 절어도 풀어지지 않는 수제비를 빚는 거죠. 주먹을 뻗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손을 이렇게 펴고 있다가 상대가 다가오면 순간 글러브 안의 주먹을 꽉 움켜쥐면서 공기를 빼내죠. 그 순간 제가 얼마나 강하게 움켜쥐는지 아는 사람은 아마 맞고 있는 상대뿐이겠죠. 꽉쥔 주먹이 정확히 목표에 다다르는 순간이 좋아서 복싱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군요. 밀도라.. 재미있는 이야기네요."
"물과 밀가루를 이용해 반죽을 거듭할 때마다 탄탄해지는 수제비처럼 제 손가락들과 손바닥이 만들어내는 밀도가 폭발력을 갖게 되는 거죠. 그게 이에 걸리면 쫄깃함이 되는 것이고 턱에 걸리면 KO가 되는 것 아닐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반죽이 다 끝났는지 한숨을 내 쉬는 태구의 왼쪽에서 멸치 육수가 김을 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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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됐습니다. 드셔 보세요."
태구의 자신감처럼 식탁 위에서는 비릿함 하나 없는 멸치육수의 냄새가 가득했다.
"그럼 감사히 먹겠습니다."
기자가 천천히 수저를 떠올려 맛을 음미하는 동안 태구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다.
"어떻습니까?"
"말씀하신 대로 굉장한데요. 이게 확실히 아귀힘이 있으셔서 그런지 쫄깃함이 남다릅니다."
"알아주시니 감사합니다."
태구도 한수저 떠 입에 넣고 씹으며 말을 이어간다.
"저는 그런 것 같아요. 밀도와 체계 꽉 짜인 것이 주는 한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단단한 밀도에 맞으면 사람은 '픽' 하고 쓰러질 수밖에 없죠. 다만 언제 걸리냐의 문제일 뿐입니다."
"그렇군요. 매일 노력하는 태구 씨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겠네요."
"꼭 그렇진 않아요. 밀도와 충격 그리고 녹다운. 이건 모든 곳에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이미 완성된 밀도에 한 번 걸리면 쓰러지는 거죠. 음악도 그림도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