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29. 서울인쇄센터 일지 8. 이태영 운영위원장 인터뷰
서울인쇄센터 운영을 맡은 지 2년 차에 접어들었다. 지난해는 센터에 일상을 만들어가는 데 집중했다면 올해는 좀 더 인쇄인과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벌여나갈 생각이다. 이를 위해서 올해는 가능한 여러 인쇄인을 만나 인쇄업의 현황과 센터의 역할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로 2022년 서울인쇄센터의 운영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이태영 젤기획 대표를 만나 지난해에 대한 소회와 새해의 계획을 들었다.
작년 운영위원회가 가장 힘을 쏟은 활동은 교육 사업이었다. '서울인쇄대학'이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강사를 섭외하고 홍보하고 수강생들을 모집하는 일을 운영위원회가 거의 전담했다. (관련 기사 : 인쇄인에게 필요한 교육은 우리가 만든다 https://omn.kr/21jh4)
드문 일이었다. 운영위원회란 분기나 격월쯤 모여 지난 회기의 업무 보고를 받고 자문을 나누는 정도지 이렇게 사업에 직접 뛰어드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이럴 수 있었던 데에는 이태영 위원장의 의지가 크게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인터뷰의 첫머리로 왜 교육 사업에 그렇게 열정으로 참여하셨는지를 물었다.
"인쇄인들이 자기 기술 분야는 남을 가르칠 수 있는 정도의 기술을 지녔지만, 기술만으로는 경영에 성공할 수가 없어요. 2000년이라면 카리스마를 지닌 리더가 통했죠. 다소 억압적으로 주도해도 사원들이 잘 따르고 회사가 운영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니거든요."
이태영 위원장 스스로 33년째 인쇄소를 운영하는 경영인이면서도, 인쇄업의 생존과 변화를 위해서는 기술자가 아닌 경영인으로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인쇄업에 뛰어든 청년들이 털어놓는 애로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인쇄일에 적응하기 쉽지 않게 만드는 이유는 바로 윗세대와의 소통이었다. 지금 인쇄소를 운영하는 대부분 인쇄인이 기술을 배울 수만 있다면 그 외의 조건들은 감내했던 것과는 달리, 지금 세대와 함께 일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리더십과 소통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은 계속 제기되어온 이슈이다.
지난해 '서울인쇄대학'이 왜 기술 분야 보다는 관계와 소통, 경영 등 기술과 거리가 있는 내용들로 채워졌는지 이해되었다. 리더십 외에도 경영인으로서 인쇄인은 실물 경제 공부도 중요하다는 게 이태영 위원장의 의견이다. 그는 일례로 금리 얘기를 꺼냈다.
"경제나 금리 변화에 대한 교육이 되었다면 지금처럼 가파르게 금리가 오르는 상황에서 발 빠르게 고정금리로 갈아탈 수 있을 텐데, 이를 모르는 지금 많은 인쇄소가 8~9%로 치솟은 금리를 물면서 경영이 악화되는 상황이에요."
코로나를 지나면서 인쇄소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인쇄소가 금융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자연히 금리 상승은 경영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텐데, 이런 상황에 대해서 미리 교육받거나 정보를 교류할 수 있었더라면 많은 인쇄소가 지금처럼 힘들지는 않았을 거라는 얘기다.
센터는 올해도 서울인쇄대학을 이어가고자 교육위원을 따로 꾸리고, 분기별로 꾸준히 개강할 계획이다. 이태영 위원장이 구상하는 올해 교육은 무엇일지 물었다.
"지금 강의를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핵심은 커뮤니티로 이어지는 교육이에요. 서로 가진 기술과 역량을 공유하면서 협업하고 시너지를 내는 것이 필요하죠."
작년에 시작한 서울인쇄대학에서도 이태영 위원장은 수업만큼 종강 후 기수별 모임을 운영하는 데 큰 공을 들였다. 종강과 함께 회장과 총무를 뽑고 모임을 정기화했다. 아직은 친목을 다지는 수준이지만 기수가 쌓이면서 그의 바람처럼 협업도 점차 늘어갈 것으로 기대한다.
교육을 통해 공동체를 만들고 거기서 협업을 끌어내는 방식을 확신을 갖고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미 여러 경로로 이와 같은 활동들을 꾸준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천여 개 인쇄소가 조합원으로 있는 서울인쇄정보산업협동조합의 일반인쇄부 간사를 맡고 있고, 중구상공회 감사이자 경영애로해소위원이기도 하다. 그 밖에도 여러 모임에서 '총무' 역할을 맡고 있어, 오죽하면 직업이 '사무총장'이라는 소리도 들을 정도라고 한다.
도시재생사업이나 지역 공공사업을 진행할 때 참여하는 주민들을 보면서 한편으론 감사하기도 하면서 궁금하기도 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내가 사는 성내동에서도 도시재생이 몇 년째 진행 중이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한 번도 참여한 적이 없었다. 다른 동네에서 도시재생지원센터장을 하면서도 말이다. 생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 이들이 이토록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이유는 뭘까?
"조금 관심을 갖고 노력을 하는 거죠. 누군가 노력을 해야만 그게 이루어지거든. 남 잘되면 배 아픈 사람도 있지만 남이 잘되면 아주 즐거운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많아요."
남이 잘되는 모습에, 함께 잘되는 모습에 즐거운 이들. 작년 한 해 서울인쇄센터를 통해 만났던 인쇄인들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말이다. 다들 당장 발끝만 보며 생업을 챙기기에도 모자란 때라고들 한다. 그럴 때 주변을 살피는 일은 맘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센터가 작년 차근차근 계획된 일들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도, 또 올해를 계획할 수 있었던 것도 기꺼이 '남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준 이태영 위원장과 같은 인쇄인들 덕분이다.
이태영 위원장과 여러 인쇄인이 작년에 문을 연 '서울인쇄대학'은 올해도 분기마다 정기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2월에는 교육위원회에서 커리큘럼을 구성하고 3월경에 수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올해는 또 어떤 인쇄인들이 모여 '함께 잘 되는 일'을 위해 머리를 맞댈 수 있을지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