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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대혁 Apr 15. 2024

로컬 브랜드 상권, ‘지방소멸’의 대안일까?

<로컬 젠트리파이어 전성시대>를 읽고


임대료가 저렴한 동네가 있다. 창업을 꿈꾸는 청년 혹은 예술가가 서서히 자리 잡기 시작한다. ‘힙하다’는 소문이 나자,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속속 들어서고 임대료가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한다.


이를 감당 못 한 청년과 예술가는 동네를 떠나게 되고, 이즈음이면 골목상권을 이루던 기존 점포들은 물론이고, 주거지마저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차지하게 되면서 주민들도 버틸 수 없게 된다. 홍대나 이태원이 겪은 일이고, 경주 황리단길, 연남동이 지금 겪고 있는 일이다.


서 있는 곳이 다르면 바라보는 풍경도 다르다. 도시에서 벌어지는 현상에 대해서도 누굴 중심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진단이 나온다. 위 이야기의 주인공을 동네에 깃들었던 창업자와 예술가로 본다면 새드 엔딩이겠지만, ‘힙해진’ 동네에 주목하면서 장밋빛 전망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다.


후자에게 홍대와 이태원과 여러 ‘O리단길’은 ‘로컬 크리에이터’의 활약으로 ‘로컬 브랜드’를 갖춘 곳이어서 벤치 마킹할 대상으로 소비된다. 정용택 작가가 쓴 <로컬 젠트리파이어 전성시대>는 바로 이런 시선에 의문을 제기하며 ‘과연 그러한지’ 되묻는다.


‘상업화 젠트리피케이션’이 지방 소멸의 대안일 수 있나?

1장에서 저자는 ‘로컬 브랜드 상권’으로 꼽히면서 지역 재생의 모델로 소개되는 곳들의 실상을 소개한다. 홍대 인근 상권은 프랜차이즈가 장악해 제 색깔을 잃었고, 황리단길은 ‘최근 5년 동안 평당 350만 원에서 3천만 원 수준으로’ 지가가 급등했다고 한다.


저자는 오버투어리즘과 임대료 상승으로 주민들도 떠나게 되는 상황도 소개하며, 이런 모델들을 ‘지방 소멸’에 대한 대안이라 상찬하는 이들 그리고 자본을 가지고 ‘전국 곳곳 상권을 개발하여’ 젠트리피케이션을 일으키는 이들을 ‘로컬 젠트리파이어’라 명명한다.


많은 골목 상권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현상을 지켜보며 지금은 로컬 전성시대가 아니라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생겨나는 이익을 자산으로 축적하는 로컬 젠트리파이어 전성시대라 부르고 싶다. (1장)


2장에서는 소위 ‘핫플레이스’의 민낯을 드러낸다. 저자의 동네이기도 한 연남동의 변화를 소개하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은 단지 헌 집이 새집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중요한 것들의 ‘상실’임을 일깨운다.


골목 안 40년 된 세탁소와 미용실, 순대국집, 껍데기 집, 닭갈빗집이 하나둘 편의점과 부동산, 프랜차이즈 떡볶이집으로 바뀌는 사이 원주민은 동네를 떠나게 되고 ‘가장 이득을 본 이들은 건물주들과 부동산 업자들이다.’


이런 현상은 젠트리피케이션이라기보다 단순한 상업화라는 말이 더 정확하다. (중략) 한국은 월세의 상승에 그치지 않고 공간이 사라지거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굳이 표현한다면 ‘상업화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 듯하다. (2장, 로버트 하우저 인용글)


로컬 브랜드 상권을 만들기 전에 해야 하는 것

저자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서도 밝혔듯이 이 책을 쓴 목적은 ‘로컬 브랜드 상권’을 지방 소멸의 대안으로 꼽는 이들의 주장을 따져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저자는 의도에 충실하게 이런 주장들이 어떻게 강단과 언론 지면을 통해 반복되면서 젠트리피케이션과 오버투어리즘을 개발에 따른 자연스러운 성장통으로 옹호하는지 보여준다.


4장에서 소개된 정부 관계자는 로컬에 진입하려는 대기업들에게 ‘환경, 사회, 로컬’의 가치를 요구하는 것을 ‘불가능한 요구’로 치부하고 있었고, 1장과 5장에서 언급된 ‘도시재생 교육’ 강연자는 임대료 상승을 억제하는 것은 자유시장경제의 법칙에 어긋난다는 평을 내놓았다.


이들의 주장과는 달리, 저자는 선진국에서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해서 어떤 보호책을 마련해 놓고 있는지를 소개한다. 5장에 소개된 일본의 차지차가법은 ‘원칙적으로 기간을 정하지 않는 임대차계약’으로 철거 등의 사유가 아니라면 임차인을 내보낼 수 없다고 한다.


(칼국숫집) 두리반이 홍대 앞에서 밀려나는 가게를 지켜내겠다는 문화예술인, 시민들의 연대로 지켜낸 가게라면 베르그는 시민들의 연대에 더해 임차인을 보호하는 강력한 법이 지켜준 가게다. (5장)


저자는 우리가 부러워하는 일본의 100년 가게가 바로 저런 강력한 보호법의 산물임을 강조하면서 저자는 로컬 브랜드 상권을 만들기 위해서 선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로컬은 일탈이 아니라 일상

마지막 6장에서 저자는 어느 강연장에서 나온 청중의 질문을 소개한다.


로컬은 일상이 되어야 할까요? 일탈이 되어야 할까요? (중략) 가보고 싶은 곳도 좋지만 살기 좋은 로컬이 되는 방법은 뭘까요? (6장)


저자는 이 질문에 덧대어 ‘소멸 고위험 지역’인 ‘관광지’들을 열거하면서 ‘원주민은 떠나는데 관광객만 늘면 지방소멸을 극복하는 것인가?’라고 되묻는다.


저자가 이에 앞서 3장에서 소개한 OTT드라마 <박하경 이야기>는 일상과 조화를 이룬 ‘로컬브랜드’의 좋은 사례일 것 같다. 저자는 이 이야기를 통해 소위 ‘힙한’ 거리가 아니지만, ‘향토, 자연, 문화재’ 그리고 거기에 얽힌 기억과 이야기의 합인 ‘장소성’에 밑줄을 긋는다.


한동안 도시재생 현장에서 일한 나로서도 스스로 ‘젠트리파이어’의 역할을 하지 않았나 돌아보게 된다. 세운상가 일대에서 7년여 동안 도시재생 사업에 참여해 오면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우려가 있었음에도 멈추거나 속도를 늦추자 말하지 못했던 것은 그것이 시한을 못 박고 진행되는, 지자체의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전국을 휩쓸었던 초기 도시재생의 결과를 마주하게 되는 지금, 내몰리는 상인들을 살필 여유도, 그들을 위한 제도를 정비할 여유도 없이 진행된 ‘프로젝트’로서의 도시재생에 대한 회고와 반성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로컬 크리에이터’가 되라는 깃발이 난무한다.


책은, 오랫동안 정부 주도 도시재생 현장에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경고해 온 저자가 틈틈이 뉴스 매체에 기고한 여섯 편의 글을 모았다. 젠트리파이어의 질주에 제동을 건다는 측면에서는 충분하지만, 나는 이 책의 논의들을 이어갈 다양한 논의들을 기대하게 된다.


저자가 ‘젠트리파이어’로 꼽은 이들의 ‘로컬 브랜드 상권’에 대한 상찬이 실제 정부 정책이나 현실 공간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지, 그 사례는 어디고, 현황은 어떤지, 그리고 지방 소멸 위기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인 지자체들에게 어떤 대안을 줄 수 있는지.


아마도 많은 이들이 머리를 함께 맞대야 할 것으로 보이는 이 화두를 던졌다는 것만으로도 시의성이 충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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