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여느 때와 똑같이 나는 회사 인트라넷에서 건강검진 날짜를 예약했다.
'이왕이면 연휴 전이 좋겠지.'
그런 단순한 생각으로 나는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전으로 날짜를 잡았다. 그리고 잊었다.
다시 그 날짜를 상기한 것은 한 두달쯤 뒤의 일이었다. 전화가 왔다. 건강검진센터였다.
'신청하신 날짜에 위 내시경을 진행할 수가 없어서 연락 드렸습니다. 날짜를 변경하시거나 다른 검사로 변경하셔야 해서요.'
나는 이 초쯤 생각하다가 검사를 바꾸겠다고 대답했다. 날짜를 변경하려면 휴가 일정을 다시 조정해야했다. 그러면 부서원의 휴가도 다시 맞춰야 하고, 부장님 승인도 다시 받아야했다.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팠다.
'다른 검사로는 CT검사들이 있습니다. 뇌, 요추 등 어느 쪽을 받으실지 결정하시면 됩니다.'
나는 조영제가 들어가지 않는 검사를 물었고- 어디선가 조영제가 안좋다는 얘기를 귀동냥으로 들었다 - 요추검사는 그런 것 없다길래 그럼 요추 CT 받을게요 하고 결정해 버렸다. 어차피 직장에서 하는 건강검진이라는 거 요식행위니까. 아무려면 어때. 빨리 받고 끝나는 게 장땡이지. 그런 생각이었다.
검사 당일날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모든 검사를 마쳤다. 아침 시간대라 대기를 많이 하지 않아서 좋았다. 검진센터에서 주는 쿠폰으로 지하에서 밥을 먹었다. 아직 하루가 절반이상이나 남았고 딱히 무언가 할일은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냥 기분이 좋았다. 직장인의 소확행이었다.
검진센터에서 결과서가 도착했다. 양호, 양호, 양호. 언제나처럼 양호가 가득했다. 내가 그렇게나 건강한가, 아니면 검진센터 인심이 후한 건가. 평소 회사 생활에서 느끼는 피로감에도 불구하고 결과서는 언제나 문제없음이었다. 하지만 그날의 결과지에는 평소와 다른 문장이 하나 있었다.
'정밀 검사 및 의사와 상담 요망'
처음 보는 문구였다. 그날 아무 생각없이 받았던 요추 검사 결과였다. 나 멀쩡한데 무슨 소리지? 이해가 안됐다. 마흔이 되면 다들 몸 여기저기 어디 한군데가 고장이 난다고 하던데 나도 그런 건가. 불안하긴 했어도 그때까지는 그렇게 심각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역시나 상담을 빨리 끝내고 싶어서 최대한 빠른 일정을 잡아 의사와 상담했다. 상담이라고는 해도 검진센터에서 하는 상담이었고 그곳에서 수술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소견서라는 걸 써주면 그걸 가지고 상급병원으로 가서 다시 상담을 받아야 했다. 검진센터 의사는 '괜찮을 거에요' 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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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랴부랴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별 거 아닌 거 같지 않았다. 상급병원으로 가라니. 결과서에 적혀 있던 '신경 초종'이라는 단어를 검색했다. 하반신 마비 어쩌고 하는 글자가 눈에 띄었다. 마비? 척수에 종양이? 신경초에 종양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신경초종으로 의심이 되고 정확한 것은 검사를 해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집근처 대학 병원에서 상담을 받았다. 하지만 종양 위치가 까다롭다고 했다.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다고 했다. 후유증은 가벼운 신경통부터 인터넷에서 종종 봤던 '하반신 마비'까지 다양했다. 그나마 경추가 아니라 요추라 사지 마비가 될 가능성은 적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때 든 생각은 혹시 후유증이, 심각한 후유증이 생기면 뭘해먹고 살 지? 였다.
그건 오랜 습관이었다. 뭘 해먹고 살지? 철이 들 무렵부터 나는 그 질문을 머리에 이고 살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 생각은 머리 위를 떠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생활력 만렙으로 돈 되는 일이라면 다하고 산 건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그냥 힘들면 쉬고 돈이 없으면 없는대로 생활을 줄였다. 모임을 줄이고 사람을 만나지 않고 일일일식을 했다. 더 벌어서 더 쓰기, 보다 안 벌고 안쓰기가 내 체질이었다.
하반신 마비가 되면 일단 밖으로 다니는 일은 힘들겠지. 어차피 밖에 나돌아 다니는 걸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니까. 그것 자체가 아주 힘들것 같지는 않았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글을 쓰는 일이나 그림을 그리는 건 할 수 있지 않을까? 회사는 그만둬야 겠지? 병가를 낼 수도 있나?
무수한 현실 고민이 나를 덮쳤다. 슬프다거나 서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돌고 돌아 결국 다른 대학 병원에서 정밀 검진을 받았다. 전문가라고 했다.
검사 결과는 척수 내 종양이었다.
'신경다발이 지나는 척수 안에 종양이 생겼다. 그런데 크기가 크다. 신경을 잘라야 할 수도 있다. 암일 수도 있다. 조직 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 수술이 잘 되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후유증이 생길 수도 있는데 꼭 수술로 제거해야 하냐고 물었다. 나는 지금 멀쩡 한 것 같은데.
'MRI 결과만 보면 지금 휠체어를 타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다' 라고 했다.
마비 증세가 나타나면 그때는 정말 회복이 안될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수술을 받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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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종양이 신경과 붙어 있어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이라고 의사가 물었다.
종양을 남기면 신경이 기능은 하겠지만 종양이 결국 다시 자라며,
종양을 전부 제거하면 종양은 사라지겠지만 신경이 기능을 못할 수도 있다, 는 것이었다.
하루 쯤 고민 끝에 나는 '신경을 살려달라'고 했다. 걸을 수 없게 되는 일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 수술대에 눕더라도 일단은 걷고 싶었다. 하루에 오천보씩 걷는 건 아니지만.
수술실로 들어가기 직전 침대에 누워 기다리는 나에게 아내가 물었다.
"오빠 어떻게 하라고 했지? 신경을 자르더라도 종양을 다 자르라고 했지?"
"아니, 종양을 남기더라도 신경을 살려달라고 했어."
아내는 알겠다고 했지만 왠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아내는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는 성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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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은 5시간 쯤 걸렸다. 종양은 완전히 제거했고 신경도 살렸다. 조직 검사 결과, 진단명은 척수암이었다.
암보험 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이런 저런 일이 있었다. 회사를 퇴직했다. 원래는 5년 쯤 더 다닐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건 보장된 시간이 아니었다. 그리고 몸이 썩 좋지 않았다. 수술은 잘되었지만 전신마취 수술을 하고 나면 한 두달쯤 힘들 수 있다고 했다. 실제 느낌으로는 회복까지 1년 넘게 걸린 것 같다. 그전에 손쉽게 하던 일들이 좀 힘들었고, 살도 쉽게 쪘다. 단지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여파'가 없어졌다고 느낀 것은 1년이 지난 뒤였다.
둘째가 태어났다. 소식을 들은 의사는 다행이라고 했다. 간혹 수술 후 문제가 있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했다.
번역 공부를 시작했다. 하반신 마비가 되면 해야지 하고 생각했던 일 중 하나였다. 앉아서도 할 수 있고 집 밖을 다닐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재밌었다. 직장에서처럼 사람과 부딪히지 않아도 되었고 상사가 없어 마음이 편했다. 암에는 스트레스가 안 좋다고 하니 스트레스를 안 받는게 좋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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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적고 보니 별 거 아닌 일처럼 느껴진다.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인생이 끝난 것 같았다.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생각했다. 혹시라도 잘못되면 나는 무엇에 기대어 살아야 하나 생각했다. 고민은 끝이 없었지만 답은 없었다. 인생은 원래 불공평하고 무작위로 일어나는 사건에 충격을 받는다. 그냥 내가 그 중 하나였을 뿐이다.
짧은 만화를 그렸다. 척수암과 관련된 정보를 담은 만화였다. 그림을 잘그리는 편은 아니다. 그래도 진단을 받았을 때 열심히 자료 조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글들에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있었다. 따뜻했다. 인터넷이 아니었다면 나는 어디에서도 위로받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보답하고 싶었다. 어쩌면 어딘가에서 내가 그린 만화를 보며 조금이나마 안심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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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서 없이 긴 글이 되어버렸다. 원래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더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전부터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는 했다. 하지만 무언가 써보려고 하면 번번이 좌절했다. 쓰려던 것이 써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아 지우곤 했다.
어떤 마음은 밖으로 꺼내는데 시간이 걸린다. 이 글에서 꺼내보인 마음도 그런 것들 중 하나인 것같다. 적절한 말의 형태를 갖추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이제서야 마음 밖으로 나왔다.
요즘 나는 편안하다. 회사를 그만 둔 뒤로 경제적으로 쫄리고 있지만 그래도 마음이 편안하다. 하고 싶던 일을 어떻든 그럭저럭 해나가고 있다. 잘 될지 어떨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데 만족한다. 가끔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집 밖을 산책한다. 아기는 금새 잠이 든다. 잠이 든 얼굴을 보고 있으면 모든 것이 꿈만 같다. 지금이 꿈 같기도 하고 수술대 위에 누워 있을 때가(정확하게는 등쪽 수술이라 엎드려 있었다) 꿈 같기도 하다.
내일이 잘 될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사람일은 알 수 없는 법이다. 세상은 가혹하다. 오늘 별 다른 일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희망을 품는 대신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산다. 다행이다. 모든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