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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최남단, 사실 최남단이 아니라고?

교묘한 마케팅, 심지어 AI마저 속였다

by 챠크렐

네이버에서 '아시아 최남단'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곳은 싱가포르 센토사 섬의 '팔라완 비치'다. 싱가포르 여행에서 센토사섬은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고, 팔라완 비치는 섬 내 대표적인 명소로 꼽히는데 여기에 아시아 최남단(Southernmost Point of Continental Asia)이라고 적힌 포인트가 실제로 있다 보니 이곳에서 '아시아 최남단' 인증샷을 찍는 관광객들이 상당히 많다. 실제로 작년 여름에 이곳을 방문했을 때도 친구들끼리 온 듯한 한국인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고 있었다.


네이버 블로그에는 여행을 다녀온 블로거들이 '아시아 최남단' 등의 제목을 붙여 이곳에 관한 각종 글을 올려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아시아 최남단' 검색 결과에 가장 먼저 이곳이 뜬다. 네이버의 대화형 생성 AI 서비스인 '클로바X'와 AI 검색 서비스인 '큐(CUE:)' 역시 예외는 아니다. 입을 모아 아시아의 최남단이 팔라완 비치라고 하면서 주요 출처로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 등을 제시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곳이 아시아 최남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센토사 섬 팔라완 비치에 있는 '아시아 최남단'. 수많은 관광객들의 인증샷 장소이기도 하다. 나 역시 지난해 방문.


그 어떤 기준으로 봐도 이곳이 아시아 최남단이 될 수는 없다. 엄밀히 말해 아시아 최남단은 싱가포르가 아닌 인도네시아의 파마나섬(Pamana Island)이다(은다나섬이라고도 한다). 이곳은 남위 11도로, 적도보다도 더 남쪽에 있다. 반면 싱가포르는 북위 1도로 어쨌든 적도보다는 북쪽에 있다. 섬을 제외한 유라시아 대륙 기준으로만 보면 역시 팔라완 비치가 아닌, 말레이시아 조호르주의 '탄중 피아이(Tanjung piai)'라는 곳이 아시아 최남단이다. 이곳에는 유라시아 '대륙' 최남단 표지가 있다.


왼쪽이 말레이시아 탄중피아이, 오른쪽이 싱가포르 팔라완 비치. 팔라완 비치가 좀 더 남쪽에 있기는 하지만, 싱가포르는 대륙이 아니라 섬이기에 '대륙 기준 최남단'이 될 수 없다.


물론 팔라완 비치가 탄중 피아이보다는 살짝 남쪽에 있기는 한데, 적어도 탄중 피아이는 '대륙 최남단'이라는 타이틀은 확실한 반면 팔라완 비치는 애매하다. 심지어 싱가포르 본섬 내에서도 팔라완 비치는 최남단이 아니다. 당장 팔라완 비치에서 남쪽으로 5분 정도 걸어가면 '탄종 비치'라는 해변이 있다. 싱가포르 본섬의 최남단 지역은 각종 호텔과 골프장, 별장들로 이뤄져 있는데, 호텔 투숙객과 별장 소유자 등만 제한적으로 출입할 수 있다고 한다.




도대체 왜 최남단이 아닌 곳이 최남단으로 널리 알려졌을까.


싱가포르가 센토사 섬에 '아시아 최남단'이라는 표지판을 정확히 언제 설치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략 2000년대 초중반 정도로 추정이 가능하다. 2006년 팔라완 비치가 단장 후 재개장을 했는데 이때 이미 '아시아 최남단' 표지판이 있었다고 하고, 2001년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한 여행기에서는 센토사섬을 설명하면서 'Southernmost Point of Continental Asia'라는 표현을 썼다. 아무래도 싱가포르 당국에서 당시에 막 떠오르고 있는 센토사섬을 알리기 위해 '아시아 최남단'이라는 표현을 마케팅 요소로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이야 어쨌든, 싱가포르의 유명 관광지에 '아시아 최남단'이라는 상징물이 붙자 이곳을 찾은 전 세계 수많은 관광객들의 눈에 자연스럽게 띄었다. 그러면서 '센토사섬 팔라완 비치가 아시아 최남단'이라는 사실이 널리 퍼진 것으로 보인다. 당장 각종 여행 관련 블로그나 카페, 커뮤니티 등을 봐도 팔라완 비치와 아시아 최남단을 엮어서 올린 글들이 몇 년 전부터 이미 수두룩했으니... 당연히 이렇게 떡하니 '아시아 최남단' 표지판이 있는데 이것이 진짜인지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말레이시아 탄중피아이에 있는 '아시아 대륙 최남단' 상징물. 탄중피아이에서도 가장 남쪽에 있다. 역시 작년에 가서 직접 찍었다.


팔라완 비치가 '아시아 최남단'이라는 주장이 100% 틀렸다고 보기 애매한 면은 있다. 아시아 '대륙' 기준으로야 최남단이 아니지만, 배를 타지 않고 걷거나 육상 교통으로 갈 수 있는(다리와 연결된 섬 등을 포함하면) 곳 중에서 따지면 그렇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Southernmost Point of Continental Asia'라는 표현을 직역하면 '대륙 아시아(Continental Asia)'에서 최남단 지점이라는 것이니까. 하지만 이 역시도, 싱가포르 본섬에 팔라완 비치보다 더 남쪽 동네가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그런데 주요 대화형 AI 서비스 중 '아시아 최남단'을 센토사 섬으로 소개하는 곳은 네이버뿐이다.


아시아의 최남단이 어디냐고 챗GPT, 제미나이, 퍼플렉시티, 클로드, 그록(Grok), 클로바X에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최신 모델 기준이고, 추론 모드는 설정하지 않았다. 챗GPT, 제미나이, 퍼플렉시티, 클로드, 그록(Grok)은 모두 아시아 최남단은 파마나섬, 아시아 대륙 최남단은 탄중 피아이라고 정확히 얘기했다. 제미나이와 퍼플렉시티는 센토사 섬의 팔라완 비치는 흔히 최남단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아니라고도 부연했다.


클로바X의 답변. 막판에 여지를 두긴 했지만...


하지만 클로바X는 아시아 최남단이 팔라완 비치라는 답변을 서두에 내놓았다. 이곳에 '아시아 최남단'이라는 표지판이 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소개했다(이거 자체는 사실이긴 하다). 물론 답변 말미에 "일부 자료에서는 실제 최남단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로 여지를 두기는 했지만, 주요 AI 모델 중 '팔라완 비치'라고 답한 유일한 모델이라는 점은 아쉬웠다. 그래도 추론 모드(Thinking)를 켜면 팔라완 비치를 '관광 홍보 목적의 최남단'이라고 명확히 짚어 주기는 한다. 여전히 정확한 최남단 위치가 싱가포르 본섬 최남단이라고 헛다리를 짚기는 하지만...


이러한 오류는 네이버의 AI 검색 서비스인 'AI 브리핑'에서도 나타났다. 아시아 최남단에 대해 검색하자 AI 브리핑은 정확히 "아시아 대륙의 최남단은 싱가포르 센토사섬의 팔라완 비치"라고 명시한다. 그러면서 출처로 여러 네이버 블로그 글들을 내세운다. 원 출처 자체가 잘못된 정보를 담고 있다 보니 AI 검색에서도 잘못된 정보가 표출되는 상황이다. 다만 이 같은 오류는 구글의 AI 검색인 'AI 오버뷰'에서도 나타나는데(한국어 기준. 영어로 물어보면 제대로 된 답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한글로 된 출처들이 팔라완 비치를 아시아 최남단이라고 잘못 언급한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똑똑한 AI라면 이런 건 걸러냈어야 하는데 말이다.


왼쪽은 네이버 'AI 브리핑', 오른쪽은 구글 'AI 오버뷰'. 모두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 사례다.


최근 오픈AI를 필두로, 제미나이의 성능이 빠르게 개선되면서 AI 서비스 간 경쟁이 점차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비스 이용 과정에서 사소한 오류가 지속적으로 나타난다면 이용자들이 다른 서비스로 빠져나가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여러 AI 서비스를 쓰고 있는데, 유독 네이버에서만 잘못된 정보가 나온 사례가 몇 번 있다. 이런 작은 오류들부터 줄여 나가야 한다.




덧. 말이 나온 김에, 각각의 '아시아 최남단' 지역으로 가는 법을 간단하게 설명해 보겠다. 이 중 직접 가 본 곳은 탄중 피아이와 팔라완 비치다.


하늘에서 파마나섬을 바라본 모습. 로테섬 남쪽에 떠 있는 작은 섬이다.

파마나 섬(실제 아시아 최남단)

파마나섬은 작은 무인도로 상주인구가 없다. 최남단이라 군사적 목적으로 해군이 임시 주둔하는 정도다. 방문 자체는 가능하다. 인근에 있는 유인도인 로테섬에서 배를 타고 가면 된다고 한다. 다만 정기선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지 어부의 어선을 빌려 타고 가야 하고(당연히 돈을 줘야 한다), 군사적 목적으로 활용되는 섬이라 사전 허가도 받아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일반 외국인 관광객들이 가기에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로테섬까지 가는 것도 쉽지 않은데 발리섬이나 티모르섬의 '쿠팡'이라는 도시에서 또 비행기나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그나마 발리섬 직항이 있으니 거기서 로테섬으로 가는 교통편을 타면 갈 수는 있겠다. 물론 거기서 파마나섬까지 가는 것이 또 난관이긴 하지만. 여담으로 현지 언론에 따르면, 최남단 영토를 기념하기 위해 10여 년 전에 군인이자 현지 위인인 '수디르만'의 동상을 세웠다고 한다.


탄중피아이 입구에 있는 조형물. 색상 배치가 구글 로고를 연상시킨다.


탄중 피아이(대륙 기준 최남단)

우선 싱가포르 창이공항이나 말레이시아 조호르에 있는 세나이 국제공항을 통해 조호르바루 시로 간다. 보통 한국에서의 직항이 많은 창이공항을 통해 싱가포르로 입국한 뒤, 말레이시아 육로 국경을 넘어 진입하게 될 것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센트럴 JB 역을 통해 조호르바루 시내로 오게 될 텐데, 문제는 여기서 탄중피아이로 가는 대중교통편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구글 맵 기준으로는 버스를 적어도 세 번 환승해야 하는데 편도 2~3시간 이상을 잡아야 하고, 그나마도 배차 간격이 불규칙해 그 이상 걸릴 가능성도 높다. 그래서 결국 그랩을 이용하게 된다. 그랩 이용 시 왕복 요금은 한국 돈으로 약 8~10만 원 정도 생각하면 된다.


시내에서 탄중피아이까지 가는 그랩을 잡기는 어렵지 않지만, 탄중피아이는 조호르 주(행정구역상 조호르바루 시는 아니다) 구석진 곳에 있는 동네라 이곳에서 다시 잡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그랩 기사에게 부탁해 (약간의 팁을 더 내고) 탄중피아이를 둘러보는 동안 기다려 달라고 하는 것이 좋다. 그랩 기사가 먼저 기다려 주겠다고 제안하기도 한다. 물론 팁을 얼마나 낼지는 그랩 기사와의 협상에 달렸는데, 그랩 애플리케이션 내에 팁 기능이 있으니 이를 활용해도 괜찮을 것 같다.


팔라완 비치에서 이 출렁다리를 건너면 '아시아 최남단' 표지판이 있는 작은 섬으로 갈 수 있다.


팔라완 비치(마케팅용 최남단)

마찬가지로 싱가포르 창이공항을 통해 싱가포르로 입국한다. 공항과 바로 연결된 싱가포르 MRT(지하철)을 타고 타나메라(Tanah Merah) 역에서 EWL(동서선·초록색) 본선으로 한 차례 환승한 다음, 시내 구간을 지나 우트램 파크(Outram Park) 역에서 NEL(동북선·보라색) 선으로 갈아타고 종점인 하버프런트(Harborfront) 역까지 간다. 역에서 센토사섬까지 가는 해상 케이블카 터미널이 바로 연결돼 있어, 이걸 타면 센토사섬에 도착할 수 있다. 센토사섬 내에서는 도보로 이동하거나 무료 셔틀버스(코끼리열차와 비슷하다)를 타면 된다. 팔라완 비치에 도착하면 작은 섬에 다리가 연결된 것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이 섬에 '아시아 최남단'을 나타내는 표지판이 있다. 창이공항에서 바로 가려면 몇 차례 환승해야 하지만, 시내 쪽에서는 이보다 금방 갈 수 있다.


이렇게 쭉 정리를 해 놓고 보니, 왜 다른 두 곳을 제치고 팔라완 비치가 아시아 최남단으로 널리 알려졌는지 알 것 같다. 센토사섬은 싱가포르를 가면 꼭 들러야 하는 대표적인 관광지로 꼽히는데, 이곳에 '아시아 최남단'이라는 표지가 있으면 당연히 회자가 많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찾아가기 쉽지 않은 다른 두 곳에 비하면 말이다. 떻게 보면 수많은 사람들은 물론, AI마저 속일 정도로 마케팅을 잘 한 셈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사실을 명확하게 알면 더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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