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네이버 '클로바X'는 서비스를 접었지만
어제 네이버가 자체 생성 AI 서비스인 '클로바X'를 폐쇄했다. 서비스 종료와 관련한 공지는 6주 전인 2월 말에 이뤄졌지만, 올해 1월 핵심 기능인 '스킬(Skill)' 서비스를 먼저 접는 등 부가 서비스를 순차적으로 중단하면서 클로바X의 비중을 줄이는 듯한 조짐은 꾸준히 보이긴 했다. 개인적으로 클로바X는 이따금 같은 질문에 대한 답변을 다른 AI 서비스들과 비교하기 위해서나, 아니면 정말 심심풀이로 이것저것 간단한 것을 물어볼 때 정도에만 활용했는데, 막상 진짜로 완전히 서비스를 접어 버리니 아쉬운 마음도 든다.
사실 예상은 했다. 챗GPT와 제미나이, 클로드 등이 한 달에 몇 번씩이나 큰 폭으로 모델의 성능과 서비스 내 각종 기능을 꾸준히 업그레이드하는 데 반해, 클로바X는 이를 따라잡기조차 벅차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빅테크 기업들의 주요 생성 AI 서비스들이 처음 나왔던 2023년과 현재를 비교하면 얼마나 AI 모델의 성능이 많이 좋아졌고, 다양한 기능들이 추가됐는지는 여기에 굳이 설명하는 게 새삼스러울 정도다. 개인적으로는 "세종대왕이 맥북을 던졌다더라"고 말하던 시절이 옛날 얘기처럼 느껴진다. 그냥 가볍게 생성 AI를 쓰는 사람들도 "와, 진짜 좋아졌다"고 일제히 입을 모으니 말이다.
클로바X도 스킬 기능, 이미지 이해 기능, 에이전트 기능 등을 추가했고 하이퍼클로바X 기반의 추론 모델과 경량화 모델도 접목하는 등 나름 고도화를 해 나갔다. 그러나 다른 글로벌 AI 서비스들과 비교하면 몇 발짝 느렸다. 한국어에 대한 높은 이해력을 강조했지만 챗GPT나 제미나이, 클로드 등도 더 이상 한국어 이해력에서 약점을 보이지 않게 됐고 어떤 면에서는 클로바X가 오히려 더 아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 네이버도 더 이상 클로바X를 굳이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았다. 네이버도 대화형 AI 서비스를 통한 정면 승부로는 오픈AI나 구글, 앤트로픽 같은 기업들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테다. 정말 이들을 따라 모델 성능을 빡세게 업그레이드하려니 GPU 등 보유 인프라도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전력, 토큰 등 각종 비용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날 테니 현실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게 바로 자체 AI를 활용해 자신들이 하던 사업을 고도화하는 전략이다. 검색, 쇼핑, 금융, 지도 등 네이버의 각종 서비스에 하이퍼클로바X를 접목함으로써 이용자 경험을 높이고 네이버의 플랫폼 하에서 활동하는 SME(중소사업자) 등 플랫폼이용사업자들도 더 효율적으로 묶어두려는 포석이다.
AI가 전 일상에 자연스럽게 적용되는 시대는 반드시 올 것이다. 이를 대비해 선제적으로 각 서비스에 자체 AI를 효율적으로 적용함으로써 경쟁력을 빠르게 확보하는 게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하이퍼클로바X가 한국어를 가장 잘 아는 AI는 이제 아니더라도, 네이버 서비스와 이용자를 가장 잘 아는 AI임에는 분명하니까 말이다. 그 AI를 어떻게 이용자 맞춤으로 잘 적용하느냐에 대한 디테일한 것은 네이버가 앞으로 잘 구상하고 실행해 나가야 할 부분이고. 이게 앞으로 AI 시대에 네이버에게 남은 몇 안 되는 '해자(moat)'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해자가 그래도 이번에는 경쟁력을 발휘해 줬으면 한다. 네이버의 '소버린 AI'가 이름값을 할 수 있는 어떻게 보면 마지막 기회라고 보기도 하고.
소버린 AI, 네이버가 하이퍼클로바X를 띄우면서 많이 했던 얘기다. 자체적인 데이터와 인프라 등을 토대로 개발한 AI를 통해 나름의 AI 주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2023년 말부터 네이버 주도로 본격적으로 언론에도 등장했는데, 클로바X와 큐(CUE:) 등 네이버가 한때 자체 언어모델 기반으로 내세웠던 AI 서비스들이 잇따라 서비스를 종료하다 보니 네이버가 주창하는 '소버린 AI'도 좀 흔들리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소버린 AI에 대해 얘기를 좀 더 해 보면...사실 나는 한동안 소버린 AI에 회의적이었다. 맨 처음에는 아무래도 이 얘기를 주로 네이버 쪽에서 하다 보니 네이버에서 자신들의 AI 모델을 띄우기 위한 일종의 '국뽕' 마케팅이라고 생각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서는 빅테크의 AI 모델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한국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모습을 보이면서 '어차피 AI 모델은 빅테크들이 다 해먹을텐데 우리는 그냥 발전한 AI를 다양한 산업에 잘 접목·전환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옮겨 갔다(어차피 한국 사람들도 다 챗GPT 쓰는데!). 소버린 AI는 자체 AI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인데, 이미 경쟁자와의 거리가 멀어졌고 늦게나마 모델 성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깨지니 AI 전환(AX)으로 화제를 돌려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은근히 전문가들 중에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생각이 바뀌었다. 자체적인 역량을 기반으로 한 '똘똘한' AI 모델이 적어도 하나쯤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미국 정부의 최근 행보 때문이다. 미국이 이란, 베네수엘라 등을 침공하면서 오픈AI와 같은 미국 AI 기업들의 기술을 폭넓게 활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미국 국방부는 미국의 AI 기업들에게 AI 도구를 '모든 합법적 목적(all lawful purposes)'에 사용할 수 있도록 요구했다고도 하는데, 여기에는 전쟁이나 첩보와 관련된 다양한 사항들도 포함된다고 한다. 유독 앤트로픽만 이러한 요구를 거부해서 지금 미국 정부가 사이가 영 좋지 않은 거고.
이걸 보면서 미국뿐만 아니라 어떤 국가든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자국의 AI 기업을 어떤 방식으로든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미국 정부가 하는 걸 보면 '합법적 목적'이라는 것이 과연 어디까지 허용된다는 것인지도 예측할 수가 없다. 그나마 AI 쪽에서 미국의 경쟁자라면 중국인데 중국은 뭐 더 말할 것도 없다. 만일 우리가 이런저런 해외 빅테크 AI를 국가의 핵심 영역에까지 가져다 썼는데, 어떤 이유에서든 미국이나 중국 등과 우리나라의 이해가 충돌한다면? 일상은 물론 국가, 산업 인프라 전반까지 침투한 해외 빅테크의 AI가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된다면? 아무리 AI 기업이 정부와는 독립적이라고 하더라도 특정한 상황에서는 언제든지 긴밀하게 손잡을 수 있다는 점을 최근 미국이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도 강대국들의 'AI 패권'에 대항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패는 마련해 둬야 한다. 정부가 굳이 그렇게 수고를 들여 국내 기업들을 대상으로 '독자 AI 모델 파운데이션' 사업 같은 걸 하는 이유일 테다. 우리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최대한의 역량을 끌어모아 '국가대표 AI 모델' 하나쯤은 만들어 보자는 목표다. 비록 사업의 구체적인 방식에 대해서는 설왕설래가 좀 나오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사업을 시작한 취지만큼은 트럼프 시대의 미국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뼈저리게 실감하게 된다.
네이버, 나아가 국내 AI 기업들이 앞으로 하려고 하는 사업 방향도 이와 무관치 않다.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X든 카카오의 카나나든 다른 국내 AI 모델들이든, 전체적인 성능이 뒤처질지는 몰라도 자사 제품과는 그래도 가장 잘 어울릴 잠재력이 있는 AI 모델임은 분명하다. 챗GPT나 제미나이가 대화형 서비스를 통해 한국 고객들을 끌어들이는 것을 막을 수는 없어도 최소한 그와 연계된 커머스, 검색 등의 서비스 주도권까지 글로벌 기업들에게 빼앗길 수는 없지 않겠는가.
비록 클로바X라는 대화형 AI 서비스는 실패로 끝났지만, 아직까지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서비스와 강력하게 연결한다면 그래도 여전히 네이버 같은 한국 AI 기업들이 차지할 자리는 있다. 또 자신들의 서비스를 위해서라도 이들이 계속 AI 모델을 열심히 업그레이드한다면 우리의 소버린 AI 역량도 자연스럽게 커질 수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빅테크 공세가 강력하지만, 그럼에도 소버린 AI를 어떻게든 키워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