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말대로 메데인, 불안이 도사린 메데인의 밤거리
걸어가도 괜찮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실례를 무릅쓰고 그의 옷깃을 흔들며 다시 말해 달라 했다. 사실인지 확인받고 싶었다. 다시 한 번 진지한 표정으로 깔리엔떼라는 말을 덧붙인 그는 혹시 숙소를 새로 구해야겠다 싶으면 연락하라는 말을 남긴 채 사라졌다.
우리가 그렇게 무서운 곳에서 지내고 있는 건가. 앞으로 메데인에서의 며칠을 그렇게 위험한 곳에서 지내야 하는 건가. 남자가 쏘아올린 작은 포탄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그러니까 어쩌면 그의 오해나 거짓말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 존재를 무시하기란 쉽지 않았다.
웬 오지랖 넓은 미국 남자 하나가 지나가는 말로 건넨 시덥지 않은 농담이나 오해라고 치부하기에 그의 태도는 꽤나 진지했다. 게다가 뒤에서 고개를 끄덕이던 여자까지. 믿고 싶지 않은 상황을 믿을 수밖에 없게 하던 요소들이 잔뜩이었다.
와중에 남자에게서 도착한 메시지 하나는 우리를 더욱 불안에 떨게 했다.
“뭐래?”
“자기가 한 말 진짜래. 범죄율이 너무 높아서 정부에서도 관리가 안 되는 지역이래. 범죄자도 진짜 많고, 총도 조심해야 한다는데? 당연히 밤에는 더 위험하고.”
역에서 호스텔까지는 걸어서 이십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한낮과 달라진 거라고는 풍경의 색 뿐이었지만, 우리는 역에 도착하고 나서도 쉽사리 역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설마 별 일이야 있겠어 하면서도 내심 피어오르는 불안을 감추는 건 힘들었다. 콜롬비아에 도착한 이후 처음으로 휴대 전화를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은 채 역 밖으로 나섰다.
즐기는 단계에 다다를 정도로 익숙해졌다 생각했던 사람들의 시선이 오늘은 어쩐지 공포로 다가왔다. 늦은 시각까지도 좌판을 벌이고 있는 상인들과 광장 주변을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그 사이로 눈에 띄던 두세 명 혹은 네댓 명으로 이뤄진 무리는 정말이지 수상하게만 보였다. 정작 우리도 세 명으로 이뤄진 무리라는 걸 생각도 못한 채 말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이미 머릿속에 명확하게 입력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등판에 적힌 ‘POLICE’ 글자가 구세주라도 되는 양 순찰을 도는 경찰에게로 다가갔다. 도움을 받고 싶었다. 호스텔 사진과 이름을 보여 주며 가는 길을 알려줄 수 있는지 부탁했다. 사실 이 물음에는 ‘제발 우리랑 같이 가줄 수는 없나요?’라는 속뜻이 숨겨져 있기는 했지만, 적어도 가는 길이 안전한 길임을 확인받고 싶었다.
동료들과 함께 지도를 한참 들여다 보던 경찰은 이 길은 ‘위험’하니 다른 길을 알려 주겠다고 말했다. 에스빠뇰을 할 줄 모르는 것이 불행인지 다행인지, 하마터면 “아니, 경찰 아저씨 위험하다니요. 지금 당장 저희와 함께 가시죠!”라는 말이 절로 나올 뻔 했다.
경찰은 새로운 길을 가르쳐 주며 걸어 가기에는 조금 머니 택시를 타는 것이 어떻냐고 물었다. 걸어다니는 것이 익숙했거니와 밤늦게 택시를 타는 것이 더 불안했다. 다만 길이 위험하지는 않은지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었던 우리는 이렇게 말했다.
“안전하다면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간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안전했고 활기가 넘쳤다.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 가족들, 붉고 푸른 전등으로 가득한 거리는 축제가 한창인 듯 했다. 정말이지 걸어가도 괜찮은 곳이었다.
대체 우리는 무얼 그렇게 두려워 했던 걸까. 그 과정에서 우리가 의도치 않게 오해하고 의심하고, 심지어는 욕보이기까지 한 이들은 얼마나 많을까. 안전히 집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보다, 찰나의 순간, 단지 눈이 마주쳤다는 이유만으로 이름도 나이도 모를 타인의 머릿속에서 범죄와 공포의 대상이 되었을 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마음 한 켠을 찔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