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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피 Aug 31. 2020

'그냥' 하면 되는 일

DAY 5

그저께 털어놓았던 고민을 좀 해결하고자 지난날 내가 썼던 글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독서모임 친구들과 함께 하루 하나의 글을 써 단체 카톡방에 공유했던 '사색노트' 폴더를 열었다. 마치 교환일기 같았던 사색노트에 무슨 이야기를 터놓았었는지, 그 시절 나는 어떤 생각으로 어떤 글을 쓰고 지냈는지 궁금했다. 노트북을 켜 사색노트 폴더를 열고 가장 끌리는 제목을 클릭했다. "그냥 하면 되는 일"이었다.


요즘 내 주변엔 "잘" 해야 하는 것들 투성이다. 매 순간 어떤 게 더 나은지, 이게 정말 최선인지 되짚어보게 되고 그래서 자꾸 멈칫거리게 된다. 사색노트 주제를 떠올리거나 글을 쭉 써 내려가면서도 펜으로 줄을 긋거나 동글동글 지워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한편으로는 그럴 때마다 '진짜 대충'하자던, '아무 거나'라도 괜찮다던 우리의 목소리가 생각나 부담이 덜어진다. 내일 또 생각하면 되지 싶기도 하고 이런 날도 있는 거지 하며 넘길 때도 있다.  


어쨌든 사색노트 6일 차다. 여기서만큼은 '잘해야 한다' 보다 '그냥 하면 된다'가 더 맞는 말이라 좋다. 또 하루에 한 가지 부담 없지만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좋고, 하루 한 번 정도는 흘러가는 시간 속에 무심코 스치는 일들을 눈여겨보게 되어서 좋고, 또 그렇게 기억한 하루의 한 구석을 나눌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도 좋다.


그 시절, 나는 취업준비생이었다. 하루하루가 시험대와 같았던 시기. 매 순간을 주변과 비교하게 되고,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가 나의 미래를 낙인찍어버릴 것만 같은 나날들이었다. 그래서 뭐든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조금 시달렸던 것 같다. 촘촘한 계획표 안에 나를 욱여넣고 넘어지거나 빠져나오려 하는 순간 스스로를 자책했다. 그랬던 내게 사색노트는 아주 작은 숨구멍이었던 것 같다. 사색노트를 위해 하루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투자하며 하루를 돌아보고, 하루 중 인상적인 순간을 떠올리고, 그중에서도 친구들에게 해주면 좋을 말을, 또는 내 기분을 알아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고른 말을 적어 내려가곤 했다.


그래서 두 번째 문단이 정말 마음에 든다. "잘해야 한다"보다 "그냥 하면 된다"가 더 맞는 말인 곳이 있었다는 게, 그리고 지금은 내 마음속에 그런 곳이 더 많아졌다는 게 참 감사하다. 앞으로도 '그냥 하는' 일이 많아지면 좋겠다. 부담 없이, 재고 따지지 않고, 마음 편히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길. 그래서 좀 더 즐거운 인생이 되길, 또 내가 누군가에게 그렇게 "그냥 있으면 되는" 쉼터가 될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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