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당피 Oct 13. 2020

하루가 또 간다

DAY 17

요즘 내 하루하루는 불투명한 랩으로 감긴 고깃덩어리 같다. 분명 매일 다른 일과 다른 대화로 채운 시간들이었기에 저마다 다른 무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그저 희미하고 뿌옇다. “회사에 갔다” “누구를 만났다” 하는 식의 단편적인 설명을 넘어 무엇을 보고 느끼고 생각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감상은 불가능할 지경이다.


아주 정신없는 요즘이다. 회사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건의 메일을 보내고, 몇 통의 전화를 주고받고, 순서대로 정리한 할 일 목록이 아니면 “뭘 하려 했더라”하며 쉽사리 정신을 놓아버린다. 무언가 잘못된 게 분명하다!


퇴근은 도망치듯 한다. 오전 8시 이전에 자리에 앉아 오후 6시가 넘어 회사를 나오는 나를 보며, 혹자는 “그건 힘든 야근도 아니다”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럴 수도 있으나, 또 그렇지 않기도 하다. 어쨌든 퇴근을 했으니 자유다 싶지만, 집에 와서 또 마무리 업무를 해야 한다. 저녁 시간 즈음의 휴식을 얻고 집에서의 추가 업무를 얻은 것이니. 대충 업무가 마무리되면 “내일의 내가 해주겠지”하며 잠자리에 든다.


이렇게 정신없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하루가 아쉽다. 하루를 기억하기 위해 무얼 해야 하나. 혹자처럼 먹은 것을 영상으로 촬영해 남기기라도 해야 할까. 같은 하루라도 다른 것을 느끼며 지냈던 1년 전의 내가 그립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기사를 읽고 나에 대해 생각하던 시절이 언제 또 오려나!

작가의 이전글 연극이 끝난 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