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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두 Aug 19. 2024

어디로 가야 하죠

01. 한 인간과 한 마리 개


어디에 살 수 있을까

어느 날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삶을 전제로 설계된 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집을 구한다면 그곳으로 이사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의도 외곽 오래된 아파트에 살았습니다. 바로 옆에 생태공원도 있어 자연 속으로 공간 이동을 한 것 같은 느낌을 들게 하는 곳이었습니다. 반려견과 집을 나와 그곳을 거닐면, 느리게 흐르는 좁은 강에서 노니는 오리 가족을 볼 수 있고 맹꽁이와 두꺼비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딘가 있을 수달을 보호하는 목책도 볼 수 있었습니다. 꽃이 피고, 녹음이 짙어지고, 단풍이 들고, 눈이 내리는 온전히 자연을 만나는 그곳은 서울이라고 믿기 힘든 작고 긴 숲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하지만 조금은 큰 개와 함께 걷다 보면, 조금은 큰 개가 아무에게나 가서 애교를 떨며 배를 까는 친구가 아니다 보니, 아파트 단지 내에서 마주하는 사람들 중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인상을 쓰기도 하고, 길 한쪽으로 붙으며 불평스러운 이야기를 입 밖으로 토해내기도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면 입마개도 하지 않고 다니냐며 자신의 일행에게 속삭이기도 했습니다. 존재하는 것 외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았지만 개를 무서워하거나 불안해하는 이들에게는 존재 자체가 문제였습니다.


포유류는 진화하면서 후각을 발달시켰습니다. 상대적으로 시각은 퇴화되었습니다. 인간은 포유류 중 다시 시각을 발달시킨 몇 안 되는 종에 속합니다. 때문에 다른 포유류는 우리가 세상을 보고 이해하는 것과 다른 형태와 언어로 세상을 이해합니다. 특히 무리생활을 하는 개는 상대방의 태도와 상태가 자신에게 중요한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게끔 진화했습니다. 시각에 비해 후각이 발달한 그들은 사람에게서 풍기는 호르몬을 통해 상대방을 이해합니다. 누군가가 자신에 대해 호감을 가질 때 나오는 호르몬과 비호감을 가질 때 나오는 호르몬으로 상대를 어떻게 대할지 판단합니다. 그렇게 길을 지나다 만나는 사람이 풍기는 호르몬 냄새는 개에게 영향을 줍니다. 때론 개를 긴장시키고 방어적으로 만듭니다.


특히, 저의 반려견은 어릴 적 파양 되어 유기된 적이 있습니다. 전 주인을 만날 때마다 극도록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면 '참 속도 없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분과 있었던 어린 시절이 좋았구나 싶은 생각이 복잡하게 듭니다. 문제는 유기 이후였습니다. 노숙한 백구가 업둥이처럼 강아지를 받아줘 보호해 주어 다행이었지만, 4개월 강아지가 내어 놓아 진 골목길은 좋은 환경은 아니었습니다. 그곳엔 '개는 때려서 길들여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어르신들, 괜히 기분이 나쁘면 분풀이가 필요한 자아가 미숙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어린 강아지는 자주 매질을 당했습니다. 그때 맡았던 그들의 냄새가 더 각인되었습니다.


강아지는 시간이 지나 새로운 반려인을 만났고 하루하루 개가 되어갔습니다. 몸이 커지고, 이가 날카로워지고, 목소리가 우렁차졌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알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짖으면 놀라고, 이를 드러내면 겁을 먹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전 사람들이 자신이게 했던 일을 함부로 할 수 없고, 오히려 자신이 위해를 줄 수 있는 주체가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낌새가 좋지 않으면 선재적으로 겁을 줘야겠다는 판단이 개의 행동 과정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훈련사를 모셔왔습니다. '우리 강아지가 사고를 칠 것 같다.' 두려운 마음으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훈련사를 보고 매섭게 짖는 개를 보고 훈련사는 보호자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하나씩 알려주었습니다. 그렇게 부모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개의 언어를 배우고, 행동방식을 배우고, 소통방식을 배웠습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두 종이 어떻게 이해하고 서로 도울 수 있는지 알게 되는 첫 단추를 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개는 조금씩 사람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웠고, 사람은 그 과정에서 세상을 보는 폭을 조금씩 넓힐 수 있었습니다.


사람도 어릴 적 겪었던 아픔이 무의식 중에 저장되어 오늘 나의 행동에 영향을 주듯 개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꾸준히 성장하고 성숙해 갔지만 내 안에 역린이 건드려지는 상황은 언제든지 발생했습니다. 그 상황이 사고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항상 조심하며 동행 했습니다. 하지만 도시는 조심의 폭을 아주 조밀하게 해야 하는 공간입니다. 특히 아파트라는 구조는 더더욱 조밀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민이 많았습니다. 도시에 살아야 일을 할 수 있는데, 도시는 나의 반려견과 살기에 너무 조밀하고 폐쇄적인 구조였습니다. 그렇기에 반려동물과 같이 살 수 있도록 설게 되고 운영되는 주거가 있다는 소식은 너무 반가운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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