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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경

셔터에 기록을 그리는 관찰자

by 청두

아저씨들 집에 돌아가는 시간, 을지로 철공소 마을 산림동 골목에 족자처럼 말려 있던 그림이 하나 둘 요란한 소리를 내며 펼쳐집니다. 형형색색의 그림들이 걸음과 함께 합니다. 언제부턴가 공장을 지키던 철갑은 작가들의 캔버스가 되었습니다. 그림을 보고 반가워하는 이도 있고, 자랑스러워하는 이도 있고, 그저 즐겁게 사진을 찍는 이들도 있고, 간혹 이게 맞냐며 투덜거리는 이도 있습니다. 무심한 고양이들만 소리 없이 지나갑니다. 어떤 이들이 이곳에 왜 그림을 그렸을지 궁금해집니다.


어느 날 한 공업사 사장님은 씅을 내며 자신의 셔터에 검정색 락카를 뿌려댔습니다.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잔뜩 미간이 찌푸려진 연유를 들어보니 밤사이 누군가 셔터에 싸인을 해놓고 갔다고 합니다. 재개발한다고 거래처도 다 끊긴 마당에 남의 가게에 와서 자기 싸인이나 쓰고 가는 나쁜 놈들이라며 분해하셨습니다. 어느 날 어설픈 태깅이 아닌 멋들어진 그림이 셔터에 그려진 것을 보았습니다. 그림 한편엔 그때 검은 락카로 지워졌던 싸인이 쓰여 있었습니다.


기획자 이원경은 도시 곳곳을 산책하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관찰하러 다니길 좋아합니다. 너무 많은 말이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가득함을 안고 무엇을 찾는지 계속 발걸음을 옮기고 무엇인가를 발견해 또 가득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궁금했던 사람들과 할 일이 '툭' 생겼다고 합니다. 그렇게 8여 년의 시간이 흐른 오늘 골목엔 그림이 가득합니다. 갈겨놓은 경고문, 심심풀이 낙서들과 함께 번듯한 그림들이 마을의 질감을 풍요롭게 만들기도 하고 혹은 화려함으로 모든 것을 압도하기도 합니다.


골목을 누비며 수집하고 항상 누군가와 함께 일하고 있는 이원경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목차

이원경 이야기

기획 이야기

공간 이야기

내일 이야기



산림동 골목의 붕냥이 ⓒ이원경




이원경 이야기




안녕하세요. 기획자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독자분들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이원경입니다. 전엔 닫힌 셔터를 캔버스 삼아서 도시 풍경에 새로운 레이어를 만드는 창작자라고 생각을 하고 소개를 했었는데 요즘엔 도시를 기록하는 사람에 가까울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창작자라는 말과 기록자라는 말은 가까운 말은 아닌 것 같아요. 셔터를 캔버스 삼아서 매개로 작업을 하거나 다른 예술가들에게 작업의 기회를 주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도시를 기록한다는 건 어떤 맥락의 말씀일까요?


청소년 때부터 도시에 있는 낙서를 보는 걸 좋아했어요. 사진으로 찍기도 했고요. 제가 고등학교 때 마지막 1년을 남겨두었을 때 학교가 이전을 했어요. 재개발 단지였죠. 그곳엔 낙서가 많았아요. 무너지고 새롭게 지어질 곳이라는 특성이 낙서가 많았던 이유일 것 같아요.


여기서 말씀하신 ‘낙서’가 그래피티일까요?

그래피티를 포함해서 재개발 반대의 메시지나 자신의 이름을 적어 놓거나 속마음을 써놓거나 한 것들이었어요. 더 포괄적인 낙서예요.


고등학교 시절 등하굣길에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학교까지 걸어 다녔던 길이 방학이 끝난 후 갑자기 확 바뀌었었어요. 그때 친구들과 함께 들어가서 영상을 찍었었던 기억이 나요. 2003년 경 친구의 비디오테이프 캠코더를 빌려 영상을 찍었어요. 같은 예체능반 친구들과 허물어진 곳을 왔다 갔다 하면서 장난도 치고, 사라진 친구를 찾기도 했었죠. 몇 차례 영상의 일부를 전시한 적도 있었고요.


비디오 클립이 남아 있지 않았다면 그 풍경은 기억의 한 장면으로만 남았을 거예요. 을지로에서 해온 제 작업이 청소년기와 연결돼 있다는 점도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기는 어려웠을 거예요.


여하튼, 그런 환경에서 탐험하고 놀고 기록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그때 경험이 현재 제가 사는 시공간에 발현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완전히 다른 형식으로 발현되는 것이긴 하지만요. 셔터아트 프로젝트가 도시 환경과 맥을 함께한다는 것에 있어 일종의 단서 같은 것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송파구 잠실동 '주공 아파트 3단지', 이원경, 2003 ⓒ이원경



지금 하시는 일 기저에는 ‘기록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기저에 깔려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러네요. 어릴 때도 ‘기록을 해야지’라고 목표를 가지고 한 것은 아니었어요. 어떤 욕망이 있는 것 같아요. 뭔가를 하고 싶은데 누가 해주지는 않아서 그냥 혼자 노는 것에 가까운.


전공도 기록과 관련된 것을 하신 거예요?


네 맞아요. 대학에서 사진과 영상을 공부했어요. 때문에 대상을 찾고 기록하며 작업하는 과정이 저에게 익숙했던 것 같아요.


다음으로 ‘낙서’라는 키워드가 작가님께 중요하다고 느껴져요. 왜 낙서를 욕망하게 되신 걸까요?


미술에서 반달리즘Vandalism이라는 개념과 연결되듯, 낙서도 원래는 하면 안 되는 행위로 인식되고, 그 내용 또한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이고 격한 표현이 많잖아요.


처음에 낙서의 행위자가 아니라 관찰자 입장에서 한걸음 물러서서 바라보았어요. 때문에 관찰하면서 어떤 것들은 좀 웃기다는 생각이 들고, 어떤 것들은 멋있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특히 을지로에는 그런 낙서들이 더 다양하고 풍부하게 존재했었어요. ‘쓰레기를 버리지 마세요’와 같은 생활 속 메시지부터, 그래피티를 작가들의 이름, 개인적 메모, 사회에 던지는 비판 등 다양한 주제가 눈에 띄었죠. 저는 그런 문장들이 단순한 낙서가 아니라 하나의 표현으로서 재미있다고 느꼈고, 시간이 지나면서는 ‘앞으로는 또 어떤 이야기가 등장할까’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낙서는 금지된 행위이면서도, 어떤 메시지를 담아내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고, 그 점에서 더 주목하게 되었어요.


'영상기록'과 '낙서'. 너무 다른 매체잖아요. 고도의 기술과 수많은 사람이 함께 만드는 것과 원초적이고 거친 것. 하지만 기획자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서사의 장면들이 기록되고 예상치 못한 사람들에게 보여진다는 점에서 두 형태가 또 매우 닮아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원경 기획자가 학교 밖 청소년들과 함께 진행한 낙서 ⓒ이원경


을지로 산림동의 낙서들, 2025 ⓒ작은도시이야기








기획 이야기



진행해 오신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아무래도 을지로 산림동 골목에서 진행한 ‘셔터아트’가 가장 대표적인 기획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죠?


앞서 말씀하신 '기록하는 사람'이라는 말에 비춰 보면 '셔터아트프로젝트'도 실물로 그려져 있는 것보다 그것이 그려진 현상·결과를 '기록하는 것'이 더 큰 의미를 가질 것 같아요.


맞아요. 그래서 을지로에서 진행했던 셔터아트 작업들도 VR 기술을 빌려 기록했어요. 기록된 형태가 저에겐 작업의 완성이자 특히 재생산의 주재료가 된다고 생각해요.


프로젝트와 관계했던 많은 사람들이 ‘도시재생 벽화다.’ ‘그래피티 컬렉션이다.’ ‘장소특성적 미술이다.’ 이렇게 해석해 주었지만, 제가 추구하는 방향은 기록된 사진의 형태에서 좀 더 확장된 형식인 '시간 예술'을 하고 싶었던 거예요.



▷VR sopt 셔터아트프로젝트

셔터 아트 프로젝트 VR Spot 캡처, 2025



셔터아트 프로젝트를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2017년부터 2025년까지 약 8년 정도 꾸준히 일을 진행하셨었잖아요.


처음 사업을 진행할 땐 중구 보건소 예산을 받았어요. 당시 시장경제과 주무관님이 예산을 만들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셨어요. '산책길 조성사업' 관련 예산을 찾아서 '셔터아트'에 쓸 수 있게 되었고 제가 맡게 되었어요. 예산을 담아서 쓸 수 있는 사업자 형태를 만들고자 했지만 어떤 이유에서 잘 되지 않았어요. 방산시장에 있는 인쇄포장 관련조합에서 예산을 받아 저희에게 지출해 주시는 형태로 일을 하게 되었어요. 수수료도 가져가셨고 예산 지출을 제때 해주시지 않아서 어려움이 있었어요.


아마 셔터아트 사업을 저희에게 뺏겼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제가 운영한 사업이 있기 전년도에 그 조합에서 마을공동체 사업으로 '셔터 내리고, 이야기 올리고'라는 사업을 시행하셨어요. 셔터에 독도, 이순신장군 등의 이미지를 출력해서 붙이는 사업을 진행해 오셨거든요. 셔터에 그래피티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계속 있어왔던 일이고 시각예술씬에서 일상적인 일이지만, 유통업에 종사해 오신 분들 입장에서는 관점이 다르셨을 수 있겠다 싶어요. 첫 사업을 마친 이후 독자적으로 조합을 설립해 운영하게 되었어요.


첫 해부터 진행이 수월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이후에도 다사다난했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어떤 이유로 셔터아트 프로젝트를 계속하게 되셨던 걸까요? 기획자 입장에서 어떤 재미난 점, 의미 있는 점이 있었을까요?

이렇게 오래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곧 재개발이 되고, 기록을 남기고 끝날 줄 알았는데 개발이 되지 않아 한해 한해 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네요.


조금 더 프로젝트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그래피티, 거리예술 같은 미술 장르는 공공 공간과 기물에 작가가 무엇인가를 하는 행위잖아요. 전 그것을 법적인 울타리 안에서 풀어가는 방법으로 해오고 있어요. 때문에 기존에 그래피티, 거리예술을 해온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제가 해온 방식은 틀리다고 생각할 수 있을 거예요. 서울 중심지에 CCTV가 이렇게 많은 상황에서 몰래 불법적으로 작업을 한다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고요. 또 거리의 예술이 시장 안으로 들어온 지 오래이지요. 이따금 불법과 합법 중 무엇이 더 재미있게 할 수 있나라는 질문을 스스로 해보곤 해요. 개인적으로는 합법 안에서 여러 이해관계 안에서 풀어가는 행위를 더 재미를 느꼈던 것 같아요.


또 한 가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자본주의잖아요.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좋든 싫든 공기금을 활용하게 되었죠. 그 공기금이 제겐 재료의 속성이 되었어요. 재료가 작품에 영향을 주듯 ‘돈의 성격’이 프로젝트에 영향을 주었어요. 제가 만약 카페에서 알바를 하면서 돈을 모았다면 프로젝트는 완전 다른 방식으로 풀렸을 거예요. 하면 안 된다고 생각되는 낙서에 돈의 성격이 반영되며 해도 되는 일이 된 거죠. 때문에 그래피티, 거리예술 등 장르에 몰입하는 작가는 공공에 맞서는 형태로 해야 하지 않냐며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실제론 그분들도 대부분 갤러리에 있고, 패션쇼에 있어요. 거리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죠. 그래서 그분들의 이야기에서 모순이 느껴졌어요. 시대상에 맞춰 달라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니깐요.


기획자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돈에도 성격이 있다.'는 말이라는 새롭게 들립니다. 해주신 말을 빌려서 이야기해 보면 중요한 재료인 공공의 재원이 골목에 유입되기 때문에 이후 사업들의 성격이 달라졌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2016년 구청에서 예산을 마련해서 교육 목적으로 아이들 셔터아트를 하게 되었고, 예상 밖으로 그 결과를 공장 사장님들께서 좋아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구청에서도 만족스러워해서 지속적으로 예산을 편성하기 위해 노력해 주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렇다 보니 돈의 성격은 ‘공공’ ‘지역과 협력’ ‘감상’ 등의 요소가 많이 반영되었을 거라 짐작해 봅니다.


작가님께서 8년의 시간 동안 걸어오신 경로도 그 성격 위에 있었구나 싶습니다. 덕분에 많은 작가들이 불법적인 낙서를 하고 떠나버리는 것이 아닌, 자신의 작품을 골목에 온전히 만들어 놓을 수 있도록 초대받았었네요. 작가들이 개인의 방식으로, 기획자님이 기획자님의 방식으로 셔터를 중심으로 모인 이야기들을 잘 기록하고 공유할 기회까지 만들어주셨디는 생각도 들고요.



셔터아트 프로젝트에 참여한 유형주 작가를 인터뷰하는 이원경 기획자





어느덧 시간이 많이 흘렀네요. 그 사이에 그림도 많아졌고요.


아이들과의 셔터아트도 하나의 꼭짓점이 되어주었어요. 방산시장의 셔터도 그랬고요. 그것들로 인해 구청 직원이 서울시 주민참여예산을 통해 사업을 지속할 수 있다는 방법도 찾아 제안해 주었고, 사업에 공감하는 주민들의 투표를 통해 예산을 편성하기도 했어요. 저의 노력도 있었지만 많은 분들의 노력이 있었어요. 예산이 그냥 만들어지지 않았죠.


처음엔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떤 방향으로 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이 없었지만, 할 수 있는 상황에 평소 관심 있던 일을 했어요. 8년 정도의 시간이 흘러 이제 길을 다 채우고 기록을 마친 지금에야 조금 더 명확하게 얘기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구간을 다 채웠다고 하셨는데 생각하신 구간이 있었고 그걸 다 채워야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계셨던 걸까요?


2016년쯤이었을까요. 이곳, 을지로 1가부터 7가까지 긴 길을 생각했을 때 중심 쪽에 위치한 곳에 벽화 거리가 있다면, 중간에 그런 공간이 있다면 도시를 소비할 때 훨씬 매력적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곳에 위치한 산림동 안에는 가로 축인 ‘창경궁로 5길’과 세로 축인 ‘창경궁로 5다길’ 구간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ㅗ’ 자 형태의 길이 제 생각엔 골목 안 중심이 되는 형태라고 생각했어요. 음, 뭔가 편안하다고 생각했던 거지요. 가설 같은 거였어요. 그런 생각을 가지고 2017년부터 띄엄띄엄하게 된 거였어요.


그렇게 만드는 것이 편안하다고 인식하신 것 자체도 지역에 대한 이해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설계하기보다 작가님께서 골목을 오가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들이 작용한 결과 같아요.


이제 좀 이해가 되어요. 작가님께서는 보여지는 작업은 ‘셔터아트 프로젝트’라는 것을 진행하셨지만 기록을 위한 여러 이미지가 연결되는 다른 형태의 영상 작업을 하고 계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셔터가 시퀀스였네요.



셔터 아트 골목길러리 지도, 2025 ⓒ이원경





매해 징검다리처럼 그려진 그림들이 마치 땅따먹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조금씩 채워진 그림들이 각 주제를 가지고 그려진 것 같은데 염두에 두신 것이 있으실까요?


저도 긴 시간 지나서 생각을 해보았어요. 어려서 미술관을 종종 가보긴 했지만 그래도 삶에서 가까이 접하는 건 공공 미술이었어요. 특히나 혜화에 자주 갔었거든요. 그때 ‘이화동’에 그려진 벽화를 많이 봤었어요. 또 벽화 사업에 이리저리 많이 동원도 되었었죠. 막상 현장을 가보면 내가 미술을 하는 건지, 그냥 인력을 대체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어요. 그때 보고 몸으로 경험한 것들이 영향을 많이 줬다고 생각해요.


그때 참여한 벽화사업을 개선한다는 묵직한 단어보다는 '나라면? 이렇게 하겠다.' 싶은 방향으로 진행했었어요. 제가 보았고 그렸던 벽화들은 이제 다 없어졌어요. 다 이유가 있었겠죠. 그런 것들을 고려해서 '이번엔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에서 시작을 했었던 것 같아요.


첫 해에는 이화동에서 보았던, 당시에 사라졌던 해바라기와 잉어를 작가들에게 꼭 그려달라고 했어요. 그리고 셔터의 주인인 공장 사장님들과도 시안을 함께 고민해 달라는 주문을 했어요.



해바라기와 잉어가 들어간 셔터 중, seenaeme(좌) 배민영(중) semi(우), 2017 ⓒR3028 류지영



해바라기와 잉어를 상징으로 만들어 버리셨군요.


맞아요. 그런데 사실 아무도 몰랐을 거예요. 작가들에게 꼭 이미지를 넣어달라고 하는 것만으론 그다지 미술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저는 그게 미술이 되게 하는 핵심 요소라고 생각했고 관객들도 알아보며 셔터아트를 소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당시 기획을 하는 입장에서 작가들이 참여하고 한 해의 프로젝트가 진행될 때 ‘주제’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이후로는 매 번 주제를 만들었었어요.


어느 날, 작가들이 셔터아트를 그리고 간 이후 사장님들끼리 점심을 드시고 다시 공장으로 돌아오셔서 셔터를 내리고 내 셔터가 네 셔터보다 왜 좋은지에 대해 옥신각신 토론하고 계신 모습을 본 적 있어요. 의도한 건 아니셨겠지만 사장님들은 셔터를 통해 점심시간 비평가가 되셨어요.


사장님들의 모습에서 경험이 신뢰가 되어서 어느 순간부터는 같이 시안을 짜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다른 곳들에서는 보기 드문 의미 있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운영하시는 입장에서는 어떠셨어요?


이야기에 동의하면서도 당시엔 그렇게 까지는 생각을 못했었어요. 저는 어린 시절부터 ‘소통’은 너무 어려웠어요. ‘이미 답은 정해져 있는데 나는 설득만 당하면 되는 거로군.’이라는 조금은 회의적인 생각을 했어요. 어차피 단절이 아닌 무언가를 되게 하기 위한 소통이라면 더 간결하게 하는 방법은 오히려 내 생각 모든 것을 공유하지 않는 것이라는 걸 나이 들면서 자연스레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프로젝트 운영 방식에 적용한 거예요. 역지사지해 보면 아저씨들 입장에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아저씨들은 셔터를 기부하는 사람으로 남겨두고 공공은 예산을 주고, 작가는 그림을 그리고, 기획자는 예산을 운영하고 작가를 모으고, 아저씨를 포함한 다수의 사람들은 그림을 보는 역할로 정리하면서 진행했어요. 이것이 정말 모두를 위한 벽화 프로젝트라면 기획자인 저의 관점에서 타자들의 역할을 재정리하는 것이 중요했어요.



아저씨 집에 돌아가는 길, 이원경, 2017 ⓒ이원경




업체가 바뀌면서 셔터 자체가 사라지기도 하고 셔터에 그림이 바뀌기도 하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어요. 셔터에 그림을 한번 딱 그리고 끝은 아니구나 생각했습니다. 빈 셔터가 많이 있음에도 지우고 새롭게 그리는 기준이 있었을까요?


깊게 생각해보진 않았어요. 바뀐다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기록도 이미 있고 어택attack을 당한 것을 수정보완 보다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어요. 그래피티는 내가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작업 위에 태깅tagging을 하거나 바밍bombing을 해요. 잘 그린 그림이나 완성도가 높은 그림은 건드리지 않아요.


최근에도 새롭게 그려진 그림이 보이는 것 같더라고요. 특정 페인트 상호도 한편에 쓰여있고요.

올해 같은 경우는 을지로 4가 역 앞 대로변과 골목 초입에 추가적으로 하게 되었어요. 페인트 회사에서 아트 마케팅의 일환으로 요청이 와서 작가들과 함께 진행하게 되었어요.



KCC페인트의 아트마케팅 일환으로 진행된 셔터아트 중, 2025 ⓒ작은도시이야기




아무래도 여럿이 함께 하는 일이다 보니 재밌는 일이 많았을 것 같은데 기억에 남는 일 하나 이야기 해주세요.


제가 작가들하고 골목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아저씨가 지나가다 놀라시는 거예요. 그분은 제가 주말마다 혼자 골목에 그림을 다 그린줄 아셨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사장님들 사이에서는 엄청난 사람이었겠네요.(웃음) 이원경이라는 기획자가 그동안 이 골목에 있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이 중요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재미있는 일은 아니지만, 공공기관과 셔터아트를 추진하고 난 이후 가격절감을 위해 벽화업체를 선정해 보조로 협조를 강요한다거나 공정함을 위해 제외한다는 식의 메시지를 전달받기도 했어요. 갑자기 작가 심사를 한다거나 맥락에 맞지 않는 광고를 넣자는 등 마찰들도 생각나요.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크래용을 뺏어가서 막 칠하는 느낌이었어요. 공적인 자리에서 구청장을 만난 자리에서도 관련된 일을 이야기했었죠. 하지만 무의미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방산시장 아저씨가 ‘셔터아트 내 거야!’ 했듯이 저도 모르게 이것이 제 거라 욕망하고 있었나 봐요. 모두 주인의식의 딜레마에 빠졌던 것일까요?



도시전경, 셔터아트 프로젝트 골목갤러리 행사 진행 중 모습(좌) 행사 포스터(우), 2021 ⓒ이원경




기획자 이원경에게 지난 8년간의 셔터아트는 어떤 것일까요. 크래용을 예로 드셨는데 그만큼 애정을 가지고 일을 하셨던 것 같아요. 내 것인 것 같다가 손에서 미끄러져 나왔다가 또다시 하게 되는 과정이 있었던 것 같아요.


셔터아트라는 것은 결국 참여해 주신 사장님과 작가님들에게 까지 존재감을 부여하는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 모두에게 보여졌고 모두가 보았으니까요. 보통 판단과 평가를 위해 육각형을 만들어 놓고 보면 장단점을 쉽게 그려볼 수 있잖아요. 색감이 좋다거나, 조형성 훌륭하다거나, 메시지가 좋다거나 등등요. ‘미학적으로 골목에 있는 셔터아트는 과연 아름다운가?’를 묻는 다면 혹자에게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존재감'이라는 점에서는 되게 높은 지점에 찍힐 것 같아요. 나머지는 되게 작을 수 있겠죠. 그것이 저의 존재감으로 연결되기도 하고요.


출발은 ‘내가 좋아하는 카메라’였어요. 영상을 전공한 것이 많은 영향을 줬어요. 카메라에도 셔터가 있지만 골목에도 셔터가 있어요. 빛에 따라 개폐되는 것이 본질적으로는 같아요. 도시에도 셔터가 있다니, 개인적으로 재미를 느꼈고 이렇게 오래 붙들고 있었네요. 이제 그것들을 통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공식적인 것에서부터 사적인 것들 사이에 예술과 일상이 경계선에서 역할을 하고 그것을 해석해 보고 싶었어요. 그것이 어떤 것도 될 수 있었지만 제게 셔터였어요. 셔터가 마음에 들었었나 봐요.


도시 사람들은 주거를 위해, 여가를 위해 다양한 목적들로 공간을 점유하고 싶어 하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간을 점유하기 위해서 대가가 필요하고요. 커피를 사 마시는 행위도 그 맥락 위에 있어 보여요. 공적인 기금으로 그 틈에 끼어든 형태라고 생각해요. 풍경에 끼어든다는 느낌이죠. 처음엔 아니었지만 지금은 일상적 풍경으로 변모한 부분이 있어요. 분명 예전에 없던 것이지만 원래 그랬던 것처럼.


미술하는 사람들은 해석을 하고 싶어 하고. 작가는 그 셔터만 떼어서 자신의 작품으로 자랑을 하고 싶어 하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에겐 포토존이 되었어요.


카메라 셔터가 가진 기능이 골목의 셔터로 전이되는 과정이 지난 8년의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점유하는 공간이 되었고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설 수 있는 기록도 되었고. 이제 한번 마침점을 찍으시는 시점이 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외부에서 보는 입장에서는 위에서 말씀해 주신 낭만적인 의미를 다 알지 못하더라도 여러 목적으로 기획자님을 찾는 일이 왕왕 있을 것 같아요. 다른 지역에서도 결이 비슷한 작업을 진행하셨을까요?


최근 이태원에서요. 을지로에서만의 작업이 너무 한 지역에 매몰되는 것 같은 고민이 있었어요. 이태원에서도 비슷한 결로 프로그램 디렉터가 되어 거리예술 프로젝트를 2년간 진행하기도 했었습니다.




골목 곳곳에 있는 붕냥이는 어떤 캐릭터인가요? 다른 그림들과 달리 붕냥이는 작가님께서 직접적으로 개입한 그림이라고 알고 있어요. 고양이 상체에 붕어빵 하체를 한 묘어라고 해야 할까요? 묘빵이라고 해야 할까요? 귀엽기도 하고, 괴상하기도 하고. 곳곳에서 골목을 유영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요.


어느 날 셔터아트를 준비하며 한 캐릭터를 빠르게 낙서로 그리게 되었어요. 계획해서 그린 것은 아니었어요. 그냥 우당탕탕 그렸어요. 나중에 보니깐 붕어빵 꼬리에 고양이 상체를 그려놨더라고요.


청계천을 지나 종로로 가는 길에 붕어빵 아저씨가 있었어요. 그 붕어빵이 맛도 있었지만 틀에 맞춰 무엇을 계속 만들어내는 모습에서 매우 한국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어요. 그러다 돌아오는 길 우리 골목에 있는 길고양이랑 합쳐서 도시 안에 사는 상상의 생물을 만들게 되었어요. 도시의 산업폐기물도 주워 먹으며 살다 혼종으로 태어난 모습을 단순하게 그렸어요. 초기 붕냥이는 한쪽 눈을 찡긋 하고 있어요. 그 눈이 찡긋한 이유는 사진 찍을 때 뷰파인더로 보게 되면 한쪽 눈을 찡그리게 되죠. 그 표정을 담고 있었어요. 캐릭터는 그린 사람을 닮는 다던데 저를 반영하고 있나 봐요.


지금은 골목 곳곳에 붕냥이 스텐실이 있어요. 셔터아트 기획 중 낙서로 탄생한 거라 프로젝트의 심벌처럼 사용하고 있어요. 사람들을 골목으로 여행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어요. 종종 붕냥이를 봤다며 궁금해하거나 저에게 찾았다면서 연락 주는 사람들도 있어요.



붕냥이 스텐실 작업 중인 이원경(좌) ⓒ이원경 / 골목에 그려진 붕냥이 스텐실(중, 우) ⓒ작은도시이야기






공간 이야기



골목에 기획자님의 이야기가 여러 작가들의 손으로 켜켜이 쌓였네요. 이곳에 터를 잡으신 첫 시작이 궁금해집니다. 을지로엔 어떻게 오시게 된 걸까요?


일이 있는 곳에 가야 한다고 생각을 했어요. 을지로는 제가 보기에 그런 곳이었어요. 처음부터 예술가가 될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영상 세트나 소품을 만드는 일도 했었고 을지로 5가에서 게스트하우스 운영하기도 했어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할 당시는 제 공간에서 작업을 했었어요. 온 손님들, 내가 읽는 책들을 가지고 사진도 찍고 옷걸이에도 걸면서 작업을 했었어요.


당시에도 산책하는 것을 좋아해서 동네 구석구석 다녀보곤 했어요. 어느 날 골목을 걷다 이전에 없던 간판을 발견하게 되었고 작업실을 구하려 하던 차였죠. 그렇게 R3028의 작업실 한편이 새로운 거점이 되었고 그곳에 만난 사람들과 연결이 되어 여러 가지 활동할 수 있었어요.



역사를 직조하는 놀이, 폴라로이드 사진, 이원경, 2017 ⓒ이원경




오가던 곳에서 작업실을 가지게 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 같아요. 활동하시면서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요?


R3028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멤버가 바뀌는 과정도 있었어요. 임용을 준비하거나 학예사가 되는 등 각자의 길을 가면서 저를 포함한 3인이 함께 활동하던 짧지 않은 시기가 있었어요. '셔터아트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고, 주변의 여러 사람들이 주도하던 사업에 함께 하거나 교육활동을 진행했어요.


당시 진지한 작업적 동료는 고대웅작가류지영작가 두 사람이 생각나요. 그 외에도 저라는 사람을 만나러 여기까지 와준 사람, 제 작업을 관심 있게 지켜봐 준 사람, 글쓰기를 가르쳐 주셨던 사람 등 저와 가까웠던 사람들은 한 번쯤 공간을 꼭 들러 갔었어요.


기억에 남는 시각예술 활동이 몇 가지 있어요. 그중 하나는 ‘스페이스바’(세운상가 메이커스 큐브 서201) 에서 열린 도시생물 전 단체전을 꼽을 수 있겠어요. 서울시 주민참여예산을 통해 일종의 예술가 기법교육을 기획을 했어요. 리소 인쇄를 배우고 각자가 해석한 지역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드는 옴니버스 형식처럼 풀어낼 수 있어 흥미로웠어요.


또 을지로 조명 산업 속 이야기를 발굴하고 워크숍을 이어갔던 ‘빛이 세운 거리’ 사업도 기획, 운영한 적이 있는데 당시 프로젝트를 함께해 주신 큐레이터님의 제안으로 대림창고에서 단체전을 이어가기도 했었어요.

‘철의 골목을 찾아서’라는 이름의 서울을 바꾸는 예술(서울문화재단)에 세명의 시선으로 을지로를 서술하는 작업을 진행했었고요. 그 결과 각자 한 권씩, 세 권의 책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었어요. 전시, 책을 만드는 과정이 한 공간에서 시작된 작업이 서로 다른 세 가지 방향으로 확장되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함께 작업실을 쓰며 이 외에도 작은 갈등과 서운함이 있기도 했지만 서로의 작업에 진지한 관객이 되어주었다고 생각해요. 셔터아트를 이어가는 과정에서도 심적으로 의지할 수 있었고,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어요. 이후 바로 앞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어요. 그 공간 이름을 ‘을지천체’라고 짓고 이후 2024년 까지 그곳을 거점으로 주변 공간들과 연동하며 전시 운영, 프로그램 등을 기획 운영 하였어요.



을지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길 것, 리소, 이원경, 2018 ⓒR3028 류지영


을지로라이트웨이 출품작, 혼합재료, 이원경, 2018 ⓒR3028 류지영


철의 골목을 찾아서 아티스트 톡, 서울을 바꾸는 예술, 서울문화재단, 2018 ⓒR3028


을지천체, 서울 중구청, 을지로디자인예술프로젝트






내일 이야기



지난 이야기를 들으니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제작 년 단체전에서 이전에 한 작품 시리즈를 도난당했어요. 사건은 복잡하게 전개되었었지만 결과적으로 저의 작품만 사라졌고 되찾지 못했었어요. 폴라로이드 사진들이어서 개인적으로 작업의 실질적 가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는 큰 사건이 이었어요. 마음이 매우 심란했어요. 잃어버린 사진에 담긴 기억을 복원해 보려는 차원에서 새롭게 작업을 만들자라는 긍정적인 방향을 잡기까지요. 다행히 다시 새로운 형태의 작품을 만들고 있어요. 사진 영상을 하는 사람들에겐 어쩌면 내용만큼이나 중요한 게 프레임이기에 고심 끝에 환풍기 틀을 활용해 마치 작은 셔터처럼 보이게 제작하고 채색하여 그 안에 메시지를 넣어보았어요. 그간의 제 삶을 집약적으로 담을 수 있는 형식이라고 생각해요. 아마 한동안은 이 시각예술 작업에 집중하게 될 것 같아요.



이제 마지막 질문을 드려 볼게요. 5년 후에 이원경은 어떤 모습일까요?


어.. 모르겠어요. 5년 전엔 뭐였지?



작은 셔터, 혼합재료, 이원경, 2025 ⓒ이원경






셔터에 기록을 입힌 관찰자


깜빡 속았습니다. 그동안 셔터아트를 기획한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기록하기 위해 그려진 그림들이었다고 하니 무릎을 탁 치게 됩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사업을 함께한 공공은 공장만을 위한 길을 이제는 대중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 되었다고 기뻐하였고, 도망치듯 그림을 그렸던 작가들은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쳤습니다. VR 회사는 자신의 첫 거래처가 되어준 골목갤러리가 고마웠습니다. 평론가들은 장소특정적 예술이라며 해석하려 달려들었습니다.


뭐, 우리 다 같이 속았으면 어떻습니다. 덕분에 덜 외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김에 미학적인 이야기는 좀 접어두고. 이원경 앞에 덜컥 책임과 돈이 생긴 그날 이후 골목은 이제 많은 사람들의 추억하고 공유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장소의 맥락에 예술이 들어가 이전에 없었던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어쩌면 골목에 발을 들인 사람들의 숫자의 제곱수의 이야기가 생겼을 것입니다.


더불어 어떤 성격을 가진 돈과 함께 일을 해야 할지, 기획자의 목적과 사업의 지향은 어떻게 포개져야 하는지 곰곰하게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 교집합에 책임감은 무게를 잊지 않으며 저도 올 한 해를 만들어가야겠습니다. 긴 시간 해오신 작업에 고생 많으셨고, 긴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저씨 집에 돌아가는 길'을 작업 중인 이원경, 2018 ⓒR3028 류지영






이원경의 작업실 이동






이원경 더 보기

・website : fillupseoul.com




이원경의 손 ⓒ작은도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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