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Eulji Art Trail,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부릉부릉!
을지로에서 함께 EAT할 동료들에게.
안녕하세요!
저는 마포구에 위치한 서울프린지네트워크, 라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쿄라고 합니다. 프린지는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이라는 독립예술축제를 28년간 운영해 온 단체이고,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은 주로 공연예술을 기반으로 한 장르/형식/주제의 구분과 제약이 없는 다양한 시도를 매년 여름, 예술작업으로서 선보이는 축제입니다.
마포의 프린지에서, 공연예술축제를 기획하는 쿄가 갑자기 을지로는 왜?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먼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를 좀 설명드려야 할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이 반갑고, 우리가 앞으로 함께 할 일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저는 2019년, 잠시 런던에 체류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우연찮게 제가 살던 동네인 Ealing에서 하는 Borough of Ealing Art Trail(줄여서 BEAT라고 부르더라고요)를 만나게 됩니다. 저는 Ealing이라는 동네에 그렇게 많은 예술가들이 살고 있는 줄 몰랐는데요. 평범한 주거지역으로만 생각했던 동네의 구석구석에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숨어있었다니! 축제를 기획하는 저로써는 절대 놓칠 수 없는 행사였어요.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씩 2주간 진행되는 BEAT 행사날이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살고 있던 집 근처에 있던 곳들부터 방문하기 시작했어요. 겉으로는 전혀 작업실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던 집들이 사실 작업실이었다니 공간이 어떻게 생겼고, 누가 그 공간을 쓰는지, 어떤 작업을 하는지 너무 궁금했거든요!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도착한 첫 번째 스튜디오. 집 앞에 행사 포스터가 한 장 붙어있고, 딱히 안내하는 스탭도 없이 그저 대문을 열어둔 집 안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와, 근데 이게 왠걸?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의 차고, 거실을 작업실로 쓰는 작가, 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면서 자신만의 작업실을 구해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작가, 일링의 카페에 자신의 작품을 전시한 작가… 정말 다양한 형태의 공간에서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작가들이 심지어 우리 옆집에도 살고 있었더라고요! 굉장한 충격이었어요.
또 예술가의 작품과 작업실을 보러 동네를 돌아다니고, 대화를 나누고, 작품이나 굿즈를 구입하는 동네 주민들을 보면서 저는 이런 모습을 서울에서도 보면 너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영국의 미술 인프라, 작업 환경, 작품을 관람하거나 구입하는 문화는 한국과 너무나도 다를 거예요. 더군다나 행사를 기획한 건 공공도, 기업도 아닌, 동네에 살고 있는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들어진 네트워크였거든요. 이렇게나 자발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의 예술행사라니.
그러다 몇 년 전, 청두를 따라 을지로의 작업실과 갤러리를 돌아다니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기억이 얼마 전 떠올랐어요. 그때도 을지로의 여러 공간을 돌아다녔지만 사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작가님의 작업실이었거든요. 작가들끼리야 친구 작업실에 놀러 가는 것이 일상일 수도 있지만, 주변에 예술가 친구가 없다면 작업실에 방문해서 그 작가의 작업들이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고, 대화 나누는 경험은 정말 드문 것 같아요. 저는 심지어 그곳에서 너무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나서 적금을 깰 뻔… 하기도 했답니다.
완성된 작품만 덩그러니 걸려있는, 혹은 작가가 갤러리에 있어도 대화를 시작하기 어려운 환경이 아닌, 친구집에 놀러 가는 기분으로 작품을 볼 수 있다면 그 작품에 대한 애정과 관심, 나아가 구매욕구(!)까지 생길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청두에게 우리도 을지로에서 BEAT 같은 것을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어요. 을지로에는 예술가들의 네트워크와 멋진 공간들이 이미 있으니 우리가 그분들을 모아보고, 함께 ‘을지아트트레일(EAT)’을 시작하면 어떻겠냐고요. 또 우리가 공공의 영향력이나 자본 없이 우리 스스로 뭔가 시작해 보면 좋겠다고요.
청두가 흔쾌히 수락하고 빠르게 여러분에게 설문지를 돌린 동안 저는 신이 나서 런던의 BEAT팀에게 서울에서 EAT을 계획하고 있다고, 일링을 오마주해 Art Trail을 행사명에 써도 괜찮을지,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함께 만날 가능성을 찾아보면 어떨지도 메일을 보내 인사도 나눴답니다!
저는 우리가 스스로 만든 네트워크로 EAT을 시작해 보고, 이후에 더 많은 예술가와 관객, 그리고 파트너를 만나면 좋겠어요. 작품도 직접 관객들에게 선보이고, 을지로에 대한 얘기도 나누고, 같이 놀기도 하고, 수익도 만들어보고요. 이런 즐거운 상상들을 저와 청두는 나누고 있답니다! 여러분도 함께 하실래요?
우리 일단 한번 만나는 게 어때요? 그냥 가볍게 만나요, 만나서 인사하고, 서로 누구인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 사람인지, 어떤 즐거운 상상들을 하고 있는지 나눠요. 그리고 그다음을 함께 꿈꿔요.
4월 30일 저녁 어때요? 을지로 어드메에서 만나요.
2025년 4월 14일
마음을 담아,
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