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을 수 없는 길을 열어가는 여백
몇 년 전, 을지로 골목을 걷다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 공사 중인 2층을 올려다보었습니다. 목공으로 마감된 창에 스텐 창틀이 2중으로 설치되고 있었습니다. 설치해 주시는 분은 1층 공장 사장님이었습니다. 처음 을지로에 왔을 때 간판을 용접해 주고 창을 선물해 주시던 사장님들의 모습이 교차하며 어떤 분이 오실지 궁금해졌습니다. 창틀에 저렇게 공을 들이는 것을 보면 분명 창고나 공장이 들어오는 것을 아닐 것이기에.
며칠 후,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항상 멋스러운 옷을 입고 있는 그들에서 풍기는 분위기를 통해 예술 쪽 업을 삼고 계신 분들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모델들일까? 싶은 생각에 다소 생경한 마음이 들었지만 표하기 어려운 반가움이 피어났습니다.
어느 날, 좁은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오르니 낡은 건물이 가진 질감을 살린 전시장이 펼쳐졌습니다. 한편엔 음료를 팔고, 한편엔 옷을 팔고 있었습니다. 능숙한 멋스러움에 동경과 반가움이 교차하였습니다. 그렇게 N/A를 처음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이후로도 동경이 만든 심리적인 거리가 좁혀지진 않았지만, 배달의 민족 '을지로체' 전시를 통해, 을지예술센터 '뉴물전', '예술기능공간'을 통해 교차할 거리를 만들어 볼 순 있었습니다.
언젠가 같이 일하는 동료를 통해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N/A는 이제 상업 갤러리로 정체성을 정한 것 같아." 아트페어를 통해, 씬을 이끌어가는 젊은 작가들을 통해 계속 다른 장소에서 N/A를 만나며 그들의 경로가 궁금해졌습니다. 처음 골목에서 목격했던 이들이 가지고 있던 '멋'에 어떤 '멋'들을 찾고 쌓아왔을지. 어쩌면 어느 순간부터는 동경이 호기심이라는 용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작하기 전까지 예상치 못했던 길을 열어가고 있는, 작가와 갤러리스트 서로에게 쿠션이 되어주고 있는 N/A 오진혁 대표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목차
n/a 이야기
기획 이야기
공간 이야기
내일 이야기
N/A 이야기
안녕하세요. 오진혁입니다. N/A갤러리는 2018년에 어중간한 종합 공간으로 시작되었다가 지금은 6명의 작가와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이름을 듣는 순간 호기심이 자극됩니다. 어떤 뜻을 담고 있을까요?
특별히 큰 뜻은 없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만든 엑셀에서 수식에 따라 변화하는 숫자에서 허용되지 않는 것을 표기할 때 N/A라고 정의하는 것이 좋아서 했어요.
아! 그래서 익숙한 듯 생경한 느낌이 들었나 봐요. 사용할 수 없는 값이나 찾을 수 없는 값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네요. 이름에서는 '제도 안에 있어온 것들이 담지 못한 것들을 담는 곳일까? 알 수 없는 답을 답으로 만드는 곳을까?' 여러 상상하게 되는 이름입니다.
이어서, 6명의 작가화 함께 일하고 계신다고 언급해 주셔서 질문을 이어가 보면 '함께 일하고 있다.' 하심은 어떤 톤으로 이해하면 좋을까요. 소속 작가 개념일까요?
소속이나 전속이라는 느낌보다 도시 별로 컨트롤하고 있어요. 컨트롤한다는 것은 10% 이하의 프로덕션 피만 받고 전시를 도운다고 봐주시면 되어요. 작가의 작업과 방향을 컨트롤하지는 않고 제가 작가가 직접 하기 귀찮은 연락 등을 하고 포트폴리오 만들 때 약간의 도움을 주곤 해요.
지금은, 얼마간 일을 해보니 작가와 함께 ‘아트페어’를 나가는 게 제일 중요하고 큰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갤러리와 작가를 생각하는 '갑, 을' 계약 관계가 아닌 ‘파트너십’으로 보는 게 더 맞아 보이네요.
맞아요. 그렇게 함께하는 작가가 4명 정도 있어요. 2분은 이미 다른 갤러리와 전속 관계인 분들이에요. 외국인이어서 서울에서 생기는 일들에만 함께하고 있고, 4명은 서울 바깥의 일들도 같이 하고 있어요.
정지윤작가, 김무영작가, 정영호작가, 한선우작가, 정용호작가 아시지요?
작가들과는 어떻게 인연이 되셨을지 궁금합니다.
오픈콜로 만나게 되었어요. n/a에서 오픈콜을 하고 미팅을 진행했어요. 전시가 열리기 전에 혹시 파트너십을 가지고 일할 생각이 있는지를 물어요. 애초에 오픈콜을 할 때 장기적인 계획을 생각하고 있다는 의사를 전달하고요.
전시가 서로 마음에 든다면 자연스럽게 일이 이어져요. 저는 미술을 공부한 사람도 아니고 일을 잘하는 편은 아닌지라 미리 작가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저한테 일을 잘하길 기대하시면 안 됩니다.”
작가 입장에서도 오히려 그렇게 이야기해 주시기에 더 신뢰를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요. 더 편하게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맞아요. 원래 둘 다 사진을 찍었어요. 음, 이 이야기를 먼저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다른 친구는 이제 더 상업 쪽의 일을 하고 있어요. 저는 같이 할 때부터 상업 쪽에 흥미가 생기지 않더라고요.
시작에 사진이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시작하게 되신 거예요?
파리에서 사진 공부를 했어요. 정확히 이야기하면 학교를 다녔으나 졸업은 하지 못했어요. 잘렸어요.(웃음)
학교를 다니면서부터 일을 하게 되었어요. 가자마자 한 1, 2년 후에 갑자기 붐이 일었어요. 당시 알바로 하던 일이 있었는데 그게 너무 잘 되었어요. 그때 알게 되었죠. ‘아, 사진을 돈을 버네.’
사진을 공부하기 위해서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셨던 걸까요?
그건 아니에요. 갈 수 있어서 간 느낌이었어요. 프랑스는 학비가 없어서.
어렸을 땐 굉장한 빨갱이였거든요. 대 부분 그렇겠지만 미술 하는 사람들이 막 시위도 나가고 체제 안에서 저항을 했었죠. 지금이야 월급을 주는 입장이 되어서 자본가가 되었네요. 아무튼 어릴 때 막 그랬어요. 왜 공부를 하는데 돈을 내야 되지. 그것에 대한 불만이 많았죠. 그땐 신념이라는 것을 어기면 내가 없어질 것 같은 느낌도 있었어요. 동시에 공부에는 재능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어디서 내 삶을 리셋할까.’, ‘어디 가서 공부가 아닌 경험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학비가 저렴한 곳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처음엔 일본을 가려고 했어요. 학비가 너무 비쌌죠. ‘신문 장학생’이라는 것을 하려고 했었어요. 혹시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어요. 조간, 석간을 돌리면 4년간 학비가 공짜인 장학제도예요. 일본 각 신문사마다 있어요. 숙소도 제공해 주고 당시 돈으로 월 100만 원도 줬어요. 하지만, 1년에 딱 두 번 쉴 수 있어요. 학비와 숙소가 해결되니 돈을 모을 수 있지만, 자유는 없는 거죠. 때문에 준비하던 중 그만두게 되었어요. 그렇게 학비가 공짜인 프랑스를 가게 되었어요.
당시 프랑스를 가서 상업 사진을 찍던 사람 중 한 명이 잘 됐어요. 우리나라 TV에도 나오고 전시도 많이 잡히고 책도 냈어요.
유학 시절 함께하는 아티스트 그룹이 몇 명 있었어요. 모두 학생들이다 보니 친해져서 어떻게 해야 전시를 할 수 있는지, 책을 만들 수 있는지 경험할 수 있었어요. 도와주며 하다 보니 재미를 느끼게 된 거죠.
학교에서 보다 현장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신 거네요.
완전히 그렇게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언어 공부를 못해서 사실 프랑스어 실력이 형편없어요. 한 3분? '레퍼토리가 끝나면 무슨 말을 하지?' 해요. 일본어는 1분, 영어는 2분, 프랑스어는 3분 정도인 것 같아요.
외국에서 계셨던 경험, 익숙함이 갤러리를 운영하시는데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오늘도 보니 외국인 관람객들도 많고요.
무조건 갤러리는 외국인을 상대해야 하죠. 저희 갤러리는 외국 컬렉터가 많이 와요. 한국과 외국 컬렉터의 비율을 비교해 보면 2:8은 되는 것 같아요.
일본에는 패션 메거진에서 홍보가 많이 되었어요. 그리고 예전에 굿즈를 몇 번 만들었었어요. 그때 만들었던 티셔츠가 회자되고 했었어요. 그런 일이 많아서 유럽에서 몇 명과 일을 같이 했었어요. ‘지니 온 프레데릭 Ginny on Frederick’에서 작년 9월 초대 전시를 했었는데 런던에서 핫한 곳과 하게 되었어요. 그 덕에 ‘하우저 앤 워스 Hauser&Wirth' 디렉터, '비엔나 비엔날레 Vienna Biennale' 총감독을 비롯한 외국 분들이 많이 알게 되어서 한국에 오면 들려주시는 것 같아요. 신기할 따름이에요.
그분들께서 보시기에도 N/A가 위치와 공간, 퍼포먼스가 매력적으로 느끼실 것 같아요.
오히려 대형 갤러리가 재미없으신 것 같아요. 하위 호환 같이 느끼시더라고요. 오히려 그런 곳을 갈 바엔 을지로를 오시는 게 훨씬 전시를 비롯해서 재밌어하시는 것 같아요.
유학에서부터 공통점이 있다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과정이었다는 것 같아요. 전시 공간도 그 맥락 위에 있어 보여요.
공간 만든 초반에 재밌었어요. 미술 쪽 인프라가 없다 보니 오히려 편견이 없었어요. 초반 저희 프로그램들을 보면 개판이에요. 좋고 나쁨의 문제는 아니고 다양했어요. 일관성이 없었죠. ‘얘들은 뭘까.’ 싶은 생각을 할만한 과정이었어요. 그래도 이렇게 해왔다는 게 장하긴 해요. 공간 발이 참 컸구나 싶기도 하고요.
기획 이야기
맞아요. 오픈콜을 통해 작가를 모집해요. 작가님들을 보면서 제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면서 더 미술계로 발을 들이게 되었어요. 함께 전시를 만들고 아트페어를 나가며 작가님들과 함께 활동할 수 있었죠. 그러면서 저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어요.
첫 오픈콜 작가가 정지윤작가였어요. 2018년쯤이었을 거예요. 세일즈도 못하고 작업할 때 서로 힘들고 그랬어요. 어쨌든 작년, 올해 같이 ‘파리 인터내셔널 Paris Internationale’에 같이 나가고 페어도 처음으로 같이 나갔어요. 반응이 좋았고 그때부터 세일즈도 했어요. 이후 작가에게도 좋은 곳에서 연락이 많이 오고 있고요. 또 제가 엄청 좋아하는 뮤지엄에서 상을 받아 '코펜겐 København'에서 전시도 잡혔어요.
운이 좋았어요. 두 번째 오픈콜 작가도 미라만이라는 작가인데 엄청나게 도움이 되었어요. 많이 배웠죠. 그 친구도 작년 광주비엔날레(2004)에서 스타였어요. 독일 혼혈인에 판소리로 작업을 하니 광주 비엔날레가 완벽했죠. 비엔날레 서포티드 쓰여 있잖아요. N/A가 들어가 있어서 기분이 엄청 좋았죠.
2025년 김무영작가도 첫 상업전시를 저희와 했는데 아트 '익스플로러'라는 파리에 괜찮은 레지던스가 있는데 그곳에 가게 되었어요.
대표님 이야기를 듣다 보니 현장에서 계속 벌어지는 일들,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계속 학습하고 함께 성장하는 과정을 만들어 오신 것 같아요.
바로 현장에서 뛰게 되어서 여러 이야기가 많으실 것 같아요. 작가들과 함께 하시는 건 어떠세요?
갤러리라는 특성이 작가와 갤러리스트가 함께 만들어가기 때문에 서로가 가지는 책임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떨 땐 그 덕분에 부담을 덜고 일할 수 있기도 하고요. 그건 작가님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서로에게 여백이 되어주는 거지요.
저는 좀 편안하게 재미있게 일하고 싶은 사람이에요. 디렉터 중에 엄하고 명확하게 해야 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잖아요. 대부분이 그런 것 같아요. 작가 출신이 운영하는 곳은 그만큼 예민하게 챙기면서 잘 만들어가시는 것 같고요. 하지만 저는 여백이 되어주는 것이 더 좋아요.
페어에 나가는 것이 결국 저희를 위해서도 작가들을 위해서도 더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마 앞으로 더 많은 노력을 하게 될 것 같아요.
지출되는 비용도 만만치는 않아요. 기본이 2300만 원이니. 부스비, 운송비, 보험비 등등.
공간을 기획해 오신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처음에 N/A를 열었을 땐 갤러리가 되겠다는 목표가 명확하지 않았어요. 영리 목적도 강하진 않았어요. 4, 5년간은 유지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당시엔 종합 공간 같은 곳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진 전문 출판도 했었고 제가 책 4 권을 만들었어요. 출판사 이름은 좀 부끄럽기 때문에 굳이 말하진 않을게요.(웃음) ‘Studio HIK’의 서희선이라는 친구와 함께 했었어요. 각자의 역할을 하고 수익을 나누며 일했었죠. 그러다 사진 전시를 하고 싶었고, 책이 많으니 책을 팔기로 했었어요. 겸사겸사 작업실로도 사용하고 스튜디오로도 쓰고 대관도 할 수 있는 곳이었어요. 그리고 위층은 사람이 살 수 있게끔 만들어 놨었어요. 샤워도 가능하도록요. 하지만 일주일 자보니 이러다 죽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포토그래퍼가 운영하는 다목적 공간이 있네요. 처음 기획하실 때 영감을 준 장소도 있을까요?
베를린에 사진작가 두 명이 운영하는 바가 있었어요. 바 뒤에 작가들의 사진이 조그맣게 걸려 있었어요. 엄청 많았어요. 위스키 한 병을 사면 사진 하나를 줬어요. 병은 킵해놓고 마시고 싸구려 액자에 담긴 사진을 주는데 사진 퀄리티가 아주 좋았어요. 핸드프린트 된 것도 있었고, 폴라로이드도 있었어요. 이런 식으로 해볼까 싶었어요. 술도 팔고.
초반에 메뉴판이 있었던 기억이 있어요.
맞아요. 메뉴판도 있었고 주변에 패션 하는 친구들이 많으니 여기서 사진도 꾸준히 찍었어요. 연예인들 뮤직비디오도 찍었었고요. 유퀴즈에서 연락이 온 적도 있고요. 수입이 나쁘지 않아서 금방 공간 조성에 들어간 비용을 벌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예상대로 되었나요?
코로나와 함께 대관은 모두 끊기게 되었어요.
무엇 보다도 제가 미술 쪽에서 좋아하는 일이 생겼어요. 진지하게 해야 하는 것이라고 판단했고 그때부터 많은 것들이 바뀌게 되었어요.
순수미술에서도 좀 더 매니악한 것들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제일 큰 계기는 N/A의 첫 오픈 콜이었어요.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를 알게 만들어준 계기가 되었죠.
그래도 작년에 저희가 순수익을 처음으로 찍었어요. 제 월급이 나왔기 때문에 참 행복했어요. 갤러리로만 보면 재작년까지는 마이너스였어요.
이젠 컬렉터들이 생긴게 채감 되어요.
작가들과 소통하고, 전시를 만들고, 작품을 판매하는 일들 사이사이에 참 쉽지 않은 과정들이 있잖아요. 어떨 때 제일 힘들고 괴로우세요? 혹은 힘든 점 때문에 변화하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전시가 갑작스럽게 바뀌어야 하는 일이 발생할 때요. 작가가 전시를 못하는 상황이 되면 너무 스트레스가 심해요. 또, 전시 기획할 때 이야기 나눴던 것과 다른 ‘새로운 것’,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 오면 많이 놀래요. 나는 안 놀래고 싶은데. 좀 지루했으면 좋겠는대.
내년부터는 전시와 전시 사이에 시간적인 여유를 더 두려 해요. 전시를 길게 하는 게 훨씬 좋을 것 같아요. 한 6주, 7주, 8주 그 방향으로 하고 작가들과 함께 페어를 많이 나가는 게 훨씬 맞을 것 같아요. 내년에 있을 일을 지금부터 준비하고 있어요. 혹 괜찮은 페인터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페인터를 찾습니다."
공간이 주는 매력도 있고, 전시도 멋진 전시가 많다 보니 많은 작가들이 관심 가지고 보고 있을 것 같아요. 대표님께서 보시기에 어떤 작가들에게 호감이 갈까요? N/A와 어울릴까요?
N/A 스타일이 있고, 제 스타일이 따로 있다고 생각해요.
N/A는 페인팅도 좋아하고 설치, 퍼포먼스를 좋아해요. 작가로서 자신의 삶, 작품을 잘 보여주는 맥락에서 퍼포먼스가 중요해 보여요. 저희가 보는 좋은 미술의 방향성으로 가려면 무조건 그 노력과 재능이 동반되어야 해요. 좋아한 모든 작가들 중 동시대 트렌드를 잘 읽고 작업하는 분들은 작업에만 몰입된 분들이 아니에요.
공간 이야기
역시 돈이 최고죠.(웃음)
공간 가진 힘 때문에 동시에 힘들기도 해요. 어떨 땐 공간이 너무 강해서 바꾸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작품을 압도할 때도 있어요. 동선을 짜기가 힘들기도 하고요. 다른 전시장은 공간을 바뀌기도 하지만 저희는 그러지 못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건물 자체가 가지고 있는 성격도 강하게 작용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맞아요. 그래서 최근에 좀 더 무난한 공간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럼, 혹시 공간을 옮길 생각도 하고 계신 걸까요?
원래는 지금 있는 곳이 재개발되면 자연스럽게 이사가게 될 거라고 예상했어요. 엄청 무섭기도 해요. 생각 보다 오래 걸리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은 일을 하면서 이사까지 알아볼 여력이 없어서 당분간은 현재 모습을 유지하게 될 것 같아요.
저는 원래 충무로 쪽에 암실이 있었어요. 사진 때문에 필름을 사러 오거나 현상을 하러 오곤 했었어요. 일 때문에 오가다 보니 을지로 3가 쪽이 점점 뜨는 걸 보게 되었어요. ‘커피 한약방’이 생기고 ‘호텔 수선화’가 생겼고 ‘신도시’도 생겼잖아요. 월세도 싸고, 작가들 작업실도 많은 곳이라 ‘여기다!’ 싶었어요.
그중에서도 산림동에 자리를 잡게 된 이유가 있었을까요?
대중교통을 타거나 차를 타거나 어디에 내려서 갤러리에 들어오기까지 동선이 중요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갤러리 대부분이 그랬어요. 갤러리가 마음에 들면 골목도 마음에 들고, 지하철도 마음에 들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마음에 들었어요. 예를 들어 편의점에서 일하는 아랍인들도 멋지게 느껴졌어요. 괜찮은 농담을 건넬 만하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이 골목이 제가 딱 그런 느낌이었어요. 지하철역에 타일도 좋았고 특이한 골목도 좋았어요. 공장지대여서만은 아닌 것 같아요. 문래랑 을지로는 완전 달라요. 저희가 들어오자마자 ‘을지트윈타워’ 공사를 시작했는데 그것도 좋았어요. ‘ing’하고 있는 느낌의 도시였어요. 옥상에 올라가서 지붕들 보면 ‘와 한국스러워. 이런 게 바로 조선이지.’ 싶어요.
입구가 독립적인 것도 좋았어요. 되게 시끄러운 곳에서 되게 좁은 문을 지나 올라오면 확 깔끔해지는 그 느낌을 살리고 싶었어요.
갤러리로 올라오는 벽을 따라 석회반죽으로 만들어 놓은 난초 형상들이 있잖아요. 오래된 벽이 보일 듯 안보일 듯 참 희한한 느낌을 만들어요.
맞아요. 기존에 가진 모습을 최대한 살리려고 했어요. 그것들이 새로운 것과 교차될 때 주는 감각이 중요했어요.
보통 공간들이 문을 들어설 때 옆으로 공간을 보게 되는데 저희는 시점이 아래에서부터 시작하거든요. 그게 관객들이 공간에 왔을 때 주는 감각이 있어요. 그 지점이 되게 중요했어요.
그런 디테일을 살린 인테리어를 ‘언라벨 스튜디오’에서 해주셨어요. 되게 잘하시는 분들이에요. 작년에 저희랑 전시도 했었어요. 저희는 상업 영역에 활동하시는 분들 전시하는 걸 좋아해서 함께 했었어요.
입구부터 전시 공간까지 많은 정성을 들여 좋은 부분을 발견하고 살려오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만들어온 과정이 쉽진 않았을 것 같고 이렇게 잘 만들어져서 건물이 가진 구조들이 장점이 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건물이야.’하고 정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지금 공간을 정하게 된 것은 저렴한 월세가 가장 큰 이유였어요. 계약 조건에 ‘원상 복구 안 해도 된다.’는 조건도 있었어요. 대신 모든 설비는 저희가 하는 것으로 했고요.
처음엔 쓰레기로 가득 차있었어요.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죠. 폐기물을 처리하고 공사를 하면서 예상보다 비용이 많이 나왔어요. 총 1억 원 넘게 썼어요. 번돈을 다 썼어요. 처음엔 4천만 원 정도 예상했었어요. 2020년 상황이 괜찮았어요. 카페만 해도 보증금은 나오겠다 싶었는데 1억을 쓰게 될 줄이야.
그래도 당시 사진 일을 많이 할 때여서 저랑 진우(초기 파트너) 둘이 여유가 있었어요. 기본적으로 공간을 잘 만들어야겠다 싶었어요. 저는 미술을 전공한 사람은 아니니 4년 공부한다고 치면 4천만 원 정도 학비로 지출이 될 텐데 공부한 셈 치자고 생각했어요.
1층에 있는 ‘근화금속(영화금속)’ 자리에 ‘세운철강’이 있었어요. 지금도 당시 간판으로 쓴 붓글씨가 살짝 남아 있어요. 여튼 ‘세운철강’ 사장님이 이 건물 주인이세요. 연세가 많으셔서 임대를 놔주신 거죠.
지금도 멋지지만 운영하시다 보면 변화가 필요한 부분들이 있을 것 같아요. 혹시 이후에도 좀 더 보완하거나 바꾸고 싶은 공간이 있으실까요?
2층을 다 터버릴까 싶은 생각이 있어요. 원래 커피 때문에 있었던 공간인데 주방을 빼면 전시공간으로 사용도 가능하고요. 오히려 작가들은 더 재밌게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하고 벽을 트면 네모난 공간을 다 사용할 수 있으니 좋을 것 같아요.
을지로에 있는 예술가, 예술공간 중에 관심 가지고 계신 곳이 있으실까요?
‘을지로 오브’는 좀 멋진 곳이라고 생각해요. 확실히 을지로 3가에 있을 때부터 되게 좋아했어요. 그때 분위기도 더 날것이었고요. 입장료가 있던 적이 있었어요. 그때가 되게 힙했던 것 같아요.
다섯 분이 운영하다가 언제부터 오웅진 대표님 혼자 운영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쉽지 않았을 텐데 미술에 대한 열정이 많이 있으시다고 생각했어요.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을지로 외에도 관심을 가지고 교류하는 곳들이 많이 생겼어요. 앞서 말씀드렸던 작년에 초대했던 런던의 ‘지니 온 프레데릭’, 교토에서 페어를 같이 했던 도쿄의 ‘아노말리’, 11월에 전시를 같이 기획하는 파리의 ‘피츠패트릭’이 있어요. 그 밖에도 너무나 좋은 큐레이터들과 갤러리스트, 작가들이 계셔요. 그분들을 통해서 항상 많이 배우고 있어요.
내일 이야기
5년 후엔 어떤 모습이실까요?
차를 샀으면 좋겠습니다. 영어도 잘했으면 좋겠고요.
마지막으로, 올해 계획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올해 N/A에서는 계획된 전시들이 열릴 예정입니다.
6월엔 바젤의 '리스테 Liste'와 '바젤 소셜 클럽 basel social club'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그 외 몇몇 아트페어에도 참여할 계획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찾을 수 없는 길을 열어가는 여백
이야기를 마치려 하니 언제가 골목에서 처음 뵈었던 반가움이 떠오릅니다. 동네가 뭔가 꿈틀거리던 때라 제가 느낀 반가움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그간 N/A가 있음으로 을지로를 점유한 예술이 '멋'있는 모판을 하나 더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이 동네의 예술에 매력을 더 할 수 있었고, 향유하는 사람들의 폭도 더 입체적이 될 수 있었고, 무엇 보다 창작자들이 자신의 작품을 펼쳐 놓고 싶은 곳이 되는데 큰 역할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 현상이 한순간에 펼쳐놓으신 것이 아닌, 대표님께서 찾아온 길 속 순간의 단면이 쌓여 만들어진 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들에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멋'있는 N/A, 대표님의 모습을 응원할 것 같습니다. 마음에서 조금 더 가까이.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N/A
오진혁의 공간 이동
・website : nslasha.kr
・instagram : @nslash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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