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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리

투명한 다정함

by 청두

몇 년 전, 광화문에 열린 전시에 동료들과 참여했었습니다. 다양한 작가님들이 함께한 전시였고, 그때 뵌 분들께 배울 점이 많았던 터라 여운이 많이 남은 전시였습니다. 이후 종종 광화문을 걸어갈 때면 그날들이 생각나곤 합니다. 그때 만난 큐레이터가 있었습니다. 정장을 입고 항상 또렷한 눈망울로 살뜰하게 작가들을 챙겼었습니다.


전시가 끝난 후 기억에서만 뵈었던 분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을지로 4가 역에서 5호선을 타러 내려가던 중이었습니다. 아는 척을 할지 말지 고민할 틈도 없이 반가움에 인사가 튀어나왔습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 충무로에 오게 될 것 같아요." 이후 인스타그램을 통해 작은 공간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공간을 방문했습니다. 골목을 따라 늘어선 시장을 지나,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포근한 '선물 가게'가 나왔습니다. 마치 위로를 받듯 들어선 가게엔 다정한 일상의 이야기가 담긴 물건이 만들어지고 있었고,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물건을 만들고, 판매하고, 공간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내어 줄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선물 가게'. 바쁜 공장과 시장으로 복잡한 골목과 대조적인 공간은 더 선명하게 다정했습니다. 그림과 물건, 공간으로 일상의 따뜻함을 나누는 선물 가게 사장님 '동구리'를 소개합니다.



목차

동구리 이야기

그래서 그랬어 이야기

공간 이야기



그래서그랬어_11.jpg 동구리 ⓒStudio Visit 정채




동구리 이야기




안녕하세요. 독자분들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지원입니다. 어릴 적 어머니께서 동구리라는 별명을 붙여주셨어요. 편하게 동구리라고 불러주시면 좋아요.


요새 저를 소개할 때 ‘자영업자’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게 참 애매하기는 했거든요. 프리랜서로 최근까지 일을 해왔고, 무엇인가를 창작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스스로가 상인에 속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때문에 보통은 자영업자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 맥락에서 운영하고 있는 ‘그래서 그랬어’도 선물 가게라고 설명하고 있어요. 그래서 뭐, 설명을 얕게 해야 하는 경우엔 ‘소품샵’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라고 이야기합니다.


깊은 설명도 궁금해집니다. 차차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나씩 들어보도록 해야겠어요.


우선, ‘동구리’라는 어음이 잘 어울린다고 느껴져요. 어떤 뜻을 가지고 있을까요?


동구리는 제가 어려서 동그랗고, 다람쥐를 닮았다고 해서 어머니께서 붙여주신 별명이었어요.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일본어로는 ‘도토리 どんぐり’를 뜻한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동그란 얼굴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어머니께서 붙여주신 별명을 사용하고 있어요.



선물가게를 운영하시면서, 판매되는 물건을 모두 제작하고 계시잖아요. 그럼 창작자 혹은 작가의 정체성도 쌓이는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작가’라고 이야기하기엔 부담이 있어요. 처음부터 창작 활동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작가라는 그룹에 속해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아직 정의 내리기가 어렵기는 하지만, 뭔가 생계가 어렵더라도 그것을 감내하고서라도 ‘나는 이 삶과 예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겠다.’라는 굳은 마음을 먹고 스스로 깊이 파고드는 사람이 ‘작가’라고 생각해 온 것 같아요.


지금은 스스로를 이야기할 때 ‘창작자’라고 말하는 것을 좀 더 좋고 편하게 느껴져요. 그리고 타인에게 불릴 때는 ‘사장님’이 더 좋아요. 좀 더 친근하고 싶어서 그런가 봐요.


우리가 앞 골목(인현시장)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장님과는 결이 좀 다르지만,


그래도 앞치마를 맨 것은 똑같은.



그래서그랬어_08.jpg 파란 앞치마를 맨 동구리, 2025 ⓒStudio Visit 정채령





지금은 선물가게 사장님이시고, 그전엔 큐레이터로도 일을 하셨어요. 그 외에도 여러 서사가 쌓여서 ‘선물 가게’에 닿게 되었을 것 같아요.


전시 큐레이터, 도시재생 활동가, 마케터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일을 해왔어요.


지역에 터를 잡고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어 했었고, 제가 만든 무엇인가를 팔고 싶어 했어요. 로컬에 관련된 일한 부분을 먼저 말씀드려보고 싶어요. 한때 제기동, 성곽마을 369 마을에 있었어요. 당시 성북문화원 근로장학생이었어요. 국장님께서 제가 도시재생에 관심이 있는 것을 알고 당시 사업을 담당하는 건축사무소에 연결해 주셨었어요.


삶의 다양한 형태에 관심이 많았어요. 모두가 명문대만 바라보며 입시를 준비하고, 대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경쟁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들이 너무 좋았어요. 그러다 보니 지역의 사장님들이 어떤 일을 하시는지, 작가들은 어떤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어요. 그것들을 엿볼 수 있는 일이 도시재생이었고, 그쪽으로 예산도 많이 쏠리는 터라 진로를 그 방향으로 잡아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예술 경영을 공부하면, 갤러리와 같이 큰 자본이 움직이는 영역이 있잖아요. 그 일에 종사하다 보면 유통하는 자본의 크기와 작품이 나의 정체성과 합일되는 과정을 겪게 되는 것 같아요. 그와 반대로 도시재생이라는 것은 땅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일이고, 사람들과 부대껴야 함 하는 일이잖아요. 각자의 첨예한 대립이 존재하고, 내가 쓰는 마음과 에너지가 금전적으로 환원되기도 어려운 구조이고요. 일을 하실 때는 어떠셨는지, 지금은 어떤 것들이 남았는지 궁금해요.


짧은 기간이기는 했지만 재밌게 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누군가에게 돈을 받으면서 일했던 시간 중 제일 행복했던 순간은 그때였어요. 뭔가 예전부터 사람 냄새가 진하게 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제가 약간 반골기질이 있어요. 어릴 적부터 남들이 다 하는 거 싫어했던 것 같아요.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왔고, 그때 추린 키워드는 ‘다정’이었어요. 도시재생판에서 일할 때 주민들의 생활 속에서 예술을 즐겨하시는 분들을 모아 전시를 하기도 했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멋있는 자리를 만들어 드렸고, 그 결과를 너무 만족스러워하셨어요. 그림을 그리는 김밥집사장님과 나무를 깎아서 신기하고 재밌는 조형물을 만드는 주민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두 분의 작품을 모아 전시를 했었어요. 전시 방명록을 보면서 너무 행복해하시는 모습을 보며 저도 같이 행복했던 기억이 있어요.


일을 하면서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멘탈이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섬세하고 여린 사람인 줄 알았는데, 회복 탄력성이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 대하는 것도 좋아할 수 있는 것 같고요.


그런데 제가 일하면서 공공 예술 영역에서 미감이나 마케팅 역량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앞서 말씀드렸던 전시에서도 최선을 다하려 애썼어요. 유휴공간이었던 곳에 전시를 통해 역대로 많은 사람이 왔다고 들었어요. 사람을 찾아오게 만들어야 하는데, 공공 예산은 한계가 있고 너무 많은 결재가 필요해서 답답한 마음이 많이 들었어요. 때문에 그 일을 지속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게 된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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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 그 예술 모음.집, 2019 ⓒ동구리





SNS활용을 무척 잘하시는 것 같아요. 스스로의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과정과 소통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느껴졌어요. 어떻게 스스로 브랜드를 만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셨을까요?


제가 딱 이런 걸 만들어서 팔아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시점이 텀블벅과 같이 창작자를 위한 플랫폼이 활성화되었던 시기였어요. 마침 ‘클래스 101’에서 마케팅 관련 업무를 했었어요. 창작자들이 강의를 만들어서 팔게 해주는 곳이라는 것을 알고 지원해서 들어갔었어요. 하지만 엉뚱하게도 주식, 부동산 강의를 파는 일을 하게 되었지만요.


여하튼, 한창 개인이 만든 것들에 대해 수요가 있는 시장이 마련되었던 때였고, 그 덕에 용기를 내볼 수 있었어요. 자연스럽게 무엇을 만들어보고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이었어요. 관련 현상에 관심이 많아져서 학사 논문도 텀블벅과 이이디어스 같이 창작자를 위한 플랫폼에 대해 쓰기도 했고요.


요즘 사는 것들의 사생활’이라는 팟캐스트가 있어요.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나가는 사람들의 인터뷰로 콘텐츠로 변해서 지금은 꽤 구독자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걸 틀어놓고 일하는데 많은 용기가 되었어요.


많은 창작자들이 결국 내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 것 같아요. 사장님께서는 어떻게 답을 찾아가고 계신지 궁금해요.


저는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전략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제게 있어 선물가게에서 파는 물건도 일종의 미끼인 거죠. 사람들을 끌어오고 관심을 만들어줘요. 사실,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각 물건과 함께 전해지는 만화 안에 담겨 있어요. 만화라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하려 하면 소비자들은 보지 않더라고요. 학교를 다닐 때 공연을 만든 적이 있었어요. 그때도 기왕이면 많은 사람들에게 예술가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는데, 맨날 오는 사람만 오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팔리는 것들에 대해서 고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그 지점이 마케터 커리어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마케터로서 일을 하면서 어떻게 보게 할 수 있을까. 경험하게 할까에 대해서 체득하게 되었어요.


저 역시 ‘소품’을 보고 이야기로 연결되었는데, 짜 놓으신 경로를 따라갔던 것이었네요.

소품이 굉장히 아기자기하고 소장하고 싶은 욕망을 자극해요. 언제부터 이런 물건을 만드셨던 거예요?


물건을 처음 만들기 시작한 것은 2021년부터였어요. 그때는 부업으로 했었어요. 회사를 다니면서 틈틈이 만들었어요. 하나, 둘 하다 보니 어느 날 실크스크린으로 작업의 범위를 확장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이게 도저히 집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아, 이건 공간이 따로 필요하겠다.’ 싶었어요. 마침 좋은 핑계도 생긴 거죠. 그러다 조건이 딱 맞는 공간을 찾아 계약하게 되었어요.


절묘한 타이밍에 공간을 만나게 된 것 같아요. 그 이야기는 뒤에서 좀 더 이어가 보도록 할게요.


본업을 가지고 부업으로 지속적으로 만들어나간다는 것은 사실 힘든 일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동력으로 계속 만들어나갈 수 있었을까요?


어려서부터 만드는 것을 좋아했고,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어요.


대학을 진학할 때 예술을 할 형편은 아니어서 철이 좀 일찍 들었던 것 같아요. 나 그냥 공부해야겠다. 공부한 만큼 성적이 나오기도 했고요. 그러면서도 예술 언저리에서 돈을 버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그렇게 예술경영을 전공으로 선택하게 되었어요.


당시에 가고 싶은 전공만 생각하고 입시원서를 쓰는 바람에 담임선생님이 나무랐던 적이 있어요. 그때 “너 그럴 거면 한예종 알아봐라.”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렇게 한예종에서 예술경영을 전공하게 되었어요.


담임선생님 한 마디가 엄청난 영향을 줬네요. (웃음)


네, 은사님이세요. (웃음)


이건 꼭 하고 싶다는 거. 만들어나가고 싶은 것이 있으실까요?


사실, 그림책을 그리고 싶어요. 제 안에 저와 화해하기로 했어요. 저는 제가 예술가가 아니라고 막 부정을 했었는데, 마음에서는 그램책을 너무 만들고 싶어요. 공간에 제가 어릴 적 그렸던 그림책을 전시를 해놓기도 했는데 어릴 적부터 꿈이었어요. 초등학교 때도 아무도 안 시켰는데 책을 만들었었어요. 팝업북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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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리의 드로잉 북, 2025 ⓒStudio Visit 정채령







그래서 그랬어 이야기




선물 가게 ‘그래서 그랬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해요.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그래서 그랬어’는 선물가게이지만 작업실을 곁들인? 곳이에요. 개인 인스타나, 커리어에 관해서 고민을 하면서 적어둔 글 중에 어떤 ‘소굴’ 같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쓴 적이 있어요. 표면상으로는 가게이지만, 그 안에서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 소굴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업실 겸 선물가게라고 소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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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굴이라니! 설레는 공간이네요. 어떤 계기로 선물가게와 작업실을 운영하게 되신 걸까요?


예전부터 내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꽤 오래전, 제 인스타그램에 제일 먼저 핀 해놓은 게시물이 2021년도 게시물인데 “선물가게를 차리고 싶다. 2025년에 나야 딱 기다려.”이렇게 적어 놨었거든요. 말처럼 되었어요. 제 입으로 말하긴 부끄럽지만, 게시물을 본 친구들은 “야 멋지다.”라고 얘기를 해주기도 했고요.


공간을 운영하면서 뭘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사람들이 모이고, 이야기가 오가고, 쉴 수 있고, 같이 향유하고 싶고, 그러면서도 일거리도 있어야 하고. 이 모든 것들이 엮일 수 있는 브랜드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거꾸로 했었던 것 같아요.


꿈을 꾸고, 차근차근 일이 되어 갔네요.



IMG_3689 2.PNG 2021년 11월 7일에 게시한 인스타그램 피드 ⓒ동구리




처음 공간을 열고 어떠셨어요?


다른 차원의 문이 열리는 느낌이었어요. 본격적으로 내 공간에서 내 이야기를 시작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공간 구성도 이렇게 저렇게 바꿔가며 최적의 구성을 찾으려 애썼어요. 제 작업공간, 상품 진열공간, 누군가 와서 자신의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을 고루 갖춘 공간을 만들고 싶어서요.


선물가게에서 판매되는 소품을 만들고, 진열하고, 손님을 응대하는 것은 어떠세요? 1인 다역이라 힘든 점이 많지 않을까 싶어요.


힘들 때는 없지는 않은데, 체력이 부족할 때나 시간이 부족한 때가 많았어요. 아무래도 제가 쓸 수 있는 자원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요. 열린 공간이다 보니 사람 때문에 고생할 각오를 했는데 굳이 여기까지 찾아와 주시는 분들은 이미 이곳에 공감을 하거나 기대한 바가 있는 분들이셔인지 다들 호의적이고 친절하셨어요.


꽃향기가 나서 나비들이 모여드는 듯, 다정한 분위기에 친절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항상 사람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편인 것 같아요. 호기심이 많아요.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더라고요. 선물가게 운영하면서 깨달았어요. 손님이 오시면 그분이 요새 어떤 고민이 있으실지, 무슨 생각을 하실지, 어떤 업에 종사하고 계실지 너무 궁금해요. 어쩌다 대화를 나누게 되면 그날 하루 종일 기분이 좋고요. 그런데 누군가를 궁금해하는 건 애정이 있다는 뜻이잖아요. 저는 제 생각보다 훨씬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더라고요.


‘그래서 그랬어’라는 상호와도 잘 어울리는 말씀이네요. 그래서 그랬구나라는 이해이기도 하고, 그래서 그랬냐는 공감의 의미이기도 하고.



_MG_3333.JPG 그래서 그랬어의 투컷 만화와 커튼, 2025 ⓒ작은도시이야기




오신 분들 한 분 한 분을 보내기 아쉬운 때가 있을 것 같아요.


맞아요. 그런데 요새는 누적 손님수가 점점 늘다 보니 한 분 한분 기억을 다 못하는 게 아쉽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해요. 요즘 저의 큰 고민 중 하나예요.


손님이 +2 된다는 것이 단순이 양의 추가가 아닌, 마음씀은 제곱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사람들이 모이고, 이야기가 모이고, 브랜드가 쌓여가면서 ‘그래서 그랬어’의 폭도 넓어질 것 같아요. 후에 이곳을 통해서 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것도 사실 선물가게를 운영하고 싶다는 게시물에 적을 때부터 생각했던 것인데, 나중에는 엄마와 동생이랑 같이 해보고 싶어요. 제가 또 K장녀라서 은연중에 엄마 은퇴 후를 생각하는 것 같아요. 꼭 제가 아니어도 잘 사시지만, 그래도 같이 일을 하면 합이 잘 맞을 것 같아요. 취향도 잘 맞고, 손재주도 워낙 좋으시거든요.


엄마는 현재는 초등학교 보육교사예요. 초반에 부업으로 할 때는 엄마가 컴 코스터도 뜨개로 떠줬었어요.


동생도 미감이 좋아요. 특히 큐레이션에 강점이 있는 것 같아요. 나중에는 직접 만든 물건 말고도 뭔가 빈티지를 매입해서 판매한다거나 하는 역할을 동생에게 맡겨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세 모녀가 취향도 비슷하고 합도 잘 맞아요. 근데 그 구조로 일하려면 일단 매출이 3인분이 나와야 하고, 순수익이 될 때까지는 내가 좀 더 키워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때가 되면 공간도 더 넓어야 할 것이고, 1층으로 내려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식음료도 해야 할 것 같고요. 그렇게 되면 참 좋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개인적으로는 사실 좀 부끄럽긴 하지만 ‘사장님’ 소리를 듣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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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랬어 상품 진열대, 부분, 2025 ⓒ작은도시이야기





공간 이야기




오랜 시간 바래온 공간이 생겼을 때 너무 좋았을 것 같아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좀 나눠보고 싶어요. 어떻게 을지로로 오시게 된 걸까요?


내 공간을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지도를 펼쳤어요. 제가 지금 감당가능한 월세를 낼 수 있는 곳을 찾아보니 이곳이 딱 나왔어요.


무섭지는 않으셨어요?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 낡은 동네에 입주한다는 것이요.


무서운 건, 월세인데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월세를 구하게 되어서 괜찮아요. 접근성이 좋은 도심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가 제겐 아주 절묘한 기회를 열어주었어요.



_MG_3298.JPG 그래서 그랬어 창 한 구석의 고양이, 2025 ⓒ작은도시이야기




공간에서 이뤄나가고 싶은 것들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비슷한 결의 사람을 모으는 일을 해보고 싶고, 내가 하려고 하는 이야기를 좀 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지금 판매하는 상품마다 이야기가 담긴 만화가 있어요. 만화를 온라인에 올리는 방법도 있지만, 직접 와서 보는 것이랑은 또 다르잖아요.


손님들을 통해 제가 만든 걸 보고 즉석 해서 반응을 볼 수 있으니 그 또한 좋은 일이에요. 귀엽다거나 사고 싶다거나 해주실 때는 쾌감이 있어요.


또, 나처럼 뭔가를 만들고 싶은 사람에게 공간을 내어주고 싶다는 욕망도 있어요. 원래 빨리 오픈을 하고 싶었는데 가게를 운영하다 보니 좀 요일이나 시간을 정비해서 시스템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마 곧 시작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루고 싶은 것들에 공통적으로 ‘타인’이 들어간 것 같아요.



_MG_3324.JPG 누군가에게 내어주, 누군가 잠시 머물 수 있는 공간, 2025 ⓒ작은도시이야기



공간을 통해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것들이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처음엔 사장님이 만든 것을 찾아 오지만 또 그들이 채워준 것들로 사장님도 긍정적인 영향을 받아나가며 공간이 채워질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나 혼자서 할 수 있었던 것은 거의 없지 않았나 싶어요. 그냥 그 말 한마디가 계기가 되기도 하고, 용기 낼 수 있는 것도 그렇고요. 어렸을 때를 회고해 보면 제가 뭔가를 만들었을 때 좋아해 준 사람들이 계셨어요.


학교에서 공연팀 기획 같은 일을 하면 관객들을 통해서 피드백해 주고 확장시켜 주는 사람들이 필요한 영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예술이라는 영역에 있어서 사람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브랜드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 중 하나는 서로 함께 도우면서 산다는 지점이 될 것 같아요. 보통 저를 화나게 하는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무한경쟁사회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스스로를 그 시스템에 너무 최적화시켜 버린 사람들이었어요. 마치 혼자 잘 된 것 같이, 결국 누군가의 도움을 통해 살고 있을 텐데 말이죠.


우리 서로가 있기에 함께 빛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기저에 깐 공간이 되어줄 것 같아요. 그 이야기를 어떤 형상에 담아 판매하기도 하고, 공간을 통해서 나누기도 하고. 지금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하는 ‘다정함’을 담아나가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그랬어_05.jpg 상품에 담긴 네 컷의 이야기, 2025 ⓒStudio Visit 정채령



사회에서 스치듯 만난 타인이 나에게 베푼 친절함을 경험하는 것이 행복 지수에 큰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를 보고 엄청 공감했어요. 그래서 1회성이라도 만나서 뭔가 서로 공감하고, 물건을 구매하시는 짧은 순간이라도 제가 좀 살갑게 구는 경험을 나누고 싶어요.


짧은 순간이 바꾸는 것이 적지 않다. 그 작은 것을 귀하게 여기시는 것 같아요.

다시 보니 만든 소품들도 작고 귀한 것들이네요.



공간이 앞으로도 매우 중요할 것 같아요. 혹 얼마간 이곳에 계실 계획이세요?


처음에는 딱 1년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인터넷을 설치하니 3년 약정이더라고요?!(웃음) 그래서 3년까지 버텨볼까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하고 있어요.


만약 다른 곳으로 확장해 나가게 된다고 하면 이곳에 5년 정도는 더 있고 싶어요.



주변에 함께하는 이웃들도 계세요?


LMP 작업실’ 대표님과 친구이기도 하고, 이름이 비슷한 ‘그래서 책방’ 사장님 부부는 친구처럼 느껴져요. 책방에서 주관하는 모임에도 나가고 공간을 방문해 주시고 차 한잔하고 가시기도 했어요.


아직 교류를 한 곳은 아니지만, 방금 ‘고래 사진관’을 다녀왔어요. 아까 같이 점심 먹은 학교후배가 거기서 파트타임으로 꽤 오래 일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구경하고 왔어요. 그리고 가는 길에 ‘중구 동네친구’ 모임에서 만난 분들도 뵈었어요. 참 충무로 좁아요.


또, 동네에서 점점 더 친해지고 있는 분들이 있어요. 제가 자주 가는 ‘진심’이라는 국밥집이 있어요. 자꾸 가니 사장님이 물어보세요. 엄청 맑은 국물의 국밥이에요. ‘프레스 커피바’ 사장님도 있고요. 글루텐프리 브라우니를 만드시는데 너무 맛있어요. 얼굴을 익히고 스몰토크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근처에서 일한다는 얘기를 하게 되더라고요. 최근엔 프레스커피바 사장님이 퇴근하고 들러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깜짝, 동구리의 충무로 맛집 추천

☆진심 : 서울 중구 충무로 2길 9 1층 107호
☆프레스 커피바 : 서울 중구 충무로 2길 8 프레스커피바



외부에서 만난 이웃과 친구들 외에도 선물 가게 안에서도 공간을 일부 필요로 하는 분들과 사용할 수 있는 영역을 만들고 싶다고 하셨는데 어떤 공간을 만들어갈 계획이실까요?


저도 그게 제일 고민이에요. 지금 렌트창도 마련해 두었고, 셀프 체크인을 하면 온라인에 자동으로 반영되는 시스템을 만들어보려고 하고 있어요. 학생들 같이 편하게 머물며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분들이 많이 오시면 좋겠어요. 제가 대학생 때 인스타툰을 그리곤 했었는데, 그것을 하려면 카페에 가야 했고, 가면 또 사람이 너무 많고, 계속 커피를 시켜야 하고, 그런 것들이 싫었거든요. 그때 저를 생각해 보면 이런 공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그래서 그랬어’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겠어요.

처음 뵈었을 땐 미술관에서 정장을 입고 계신 모습을 보았었는데, 이젠 앞치마를 입고 계시네요.


네, 이제 앞치마가 제 옷입니다!



그래서그랬어_12.jpg 작업 중인 동구리, 2025 ⓒStudio Visit 정채령





다정하게 투명한



이야기를 나눌수록 '선물 가게'가 더 다정하게 느껴집니다. 개인이 점유하는 작업의 공간과 손님을 맞이하는 상업의 공간, 그리고 있는 그대로 있어도 되는 어느 여백의 공간의 합쳐지니 오히려 투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사장님이 발견한 가치 있는 일상의 장면이 소품을 구매하고, 머무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기대하게 됩니다. 앞으로 사장님이 이곳에서 나눠나갈 것들이 만들어진 물건과 그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3층 계단에 올라 철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느낀 것들은 물건을 따라, 만화를 따라 함께 자신의 삶으로 돌아갈 것 같습니다. 그 여운이 이전과 다른 순간들을 만들어주리라 생각합니다. 각자의 일상에서 제곱으로 뻗어나갈 투명한 다정함을 상상해 봅니다. 긴 시간, 따뜻한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그랬어_10.jpg 꾸준히 이쁨 받는 어항컵&코스터, 2025ⓒStudio Visit








선물 가게, 그래서 그랬어

그래서그랬어 건물.png
그래서그랬어 지도.png








동구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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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리의 플레이 리스트

THE PLAYLIST OF ARTIST_015, 다정한 선물 가게 사장님_이지원의 플리, 2025 ⓒStudio Visit




동구리의 손, 2025 ⓒ작은도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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