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앙꼬가 되어준 레트나 공원
새벽의 난리때문에 12-1시 사이에 일어나 게으름 피우며 밍기적밍기적 대다 3시가 다 되서야 집을 나섰다. 하지만 원래 계획에는 차질이 없었다. 클럽의 후유증이 있을것을 생각해 오늘은 게으름을 피우는 날이였기 때문이다. 상우와 여행 계획을 짜며 얘기 했던게 있었다, 유럽여행을 간다면 한번쯤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비싼 돈 주고 비싼음식 한번 먹어보자고. 그래서 미슐랭이고 뭐고 프라하 고급레스토랑 등을 찾아보며 정한곳이 바로 댄싱하우스 안에 있는 Celeste. 무슨 음식으로 유명한지, 무슨 이유에서 유명한건지는 모르고, 그저 미슐랭 가이드에서 선정한 레스토랑이라 정한 것 뿐이였다.
3시에 집에서 나와 곧장 댄싱하우스로 향했다. 댄싱 하우스는 블라도 밀루닉과 프랭크 게리가 공동 디자인 했고, 높은 수준의 건축기술을 보여주고 있는 건축물이다. 건물 자체가 원통에 위에서부터 아래까지의 측면이 휘어져 있으며 한번 꼰듯한 형태를 취하고 있어 댄싱하우스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댄싱하우스는 레트나 공원에서 블타바 강을 건너 강변을 따라 프라하 국립 오페라 하우스쪽으로 15분정도 걸어가다 보면 유이라스쿠프 다리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
댄싱하우스 앞 블타바 강에 있는 보트들은 보트 호텔이다. 말그대로 외형은 보트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내부를 들어가보면 호텔이다. 그 옆을 지나며 댄싱하우스로 향했는데, 하루쯤은 보트호텔에서 지내도 좋은 경험이 될것 같았다.
레스토랑 Celeste는 댄싱하우스 맨 윗층에 위치해 있다. 우리가 간 시간대에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쌩한 분위기였다. 날씨도 어둑어둑하고 햇빛도 없어서 레스토랑 분위기가 더욱 침울해 보이고 조용했다. 예약을 따로 하고가지 않아서 1시간정도만 앉을 수있는 예약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유럽의 대부분의 유명한 레스토랑들은 예약을 하고 가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기에 미리 예약을 하고 방문하는 편이 좋다.
에피타이져로 스프를 하나씩 시키고, 메인요리로는 상우는 먹물스파게티, 난 양고기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기 전에 식전빵이 나왔는데 고급레스토랑답게 접시부터가 너무 예뻤고,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폴폴 풍겼다. 스프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맛이였다. 달콤하면서도 짜고, 약간 고구마 갈아놓은 것같은 식감도 나면서 신기했지만 조화롭게 어우러져 정말 맛있었다. 하지만 양이 너무 많아서 하나만 시켜서 둘이 나누어 먹어도 될것 같았다. 메인요리들은 기대이하였다. 아직 그런 고급 입맛이 아니라 그랬는지, 먹물파스타나 양고기 스테이크 둘다 입맛에 맞지 않았고, 배가 막 차는 음식들이 아니라 스프 말고는 불만족스러운 식사였다. 하지만 처음으로 느껴보는 고급진 분위기에 난 만족했고, 한번 경험해봤다! 라는 생각을 하며 음식점을 나왔다.
가격에 비해 만족도가 그리 높지 않았다, 우리처럼 자유여행을 즐기는 학생이고, 포만감을 중요시 여긴다면 이 레스토랑은 추천하지 않는다. 갈 계획이 있다면, 오후 시간대가 아닌 아예 늦은 저녁으로 잡는 편이 좋다. 맨 윗층에 위치해 있어서 경치는 정말 좋기 때문이다. 또 밤에는 건물에서 다양한 조명을 켜놓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고 낭만적인 분위기에서 식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의 날씨, 역시나 뒤죽박죽이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하더니, 소나기처럼 다시 뚝 그쳐서 아 이제 안오려나보다 싶어서 환전소를 찾는데,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비가 쏟아졌다. 우산도 하나밖에 없어서 둘이 하나로 쓰기엔 너무 부족해서 결국 둘다 비에 쫄딱 젖었고, 그 채로 환전을하고 서둘러 트램을 타 집으로 돌아갔다. 오늘은 뭔가 이런날 인가보다 하고 다시 샤워부터 하고 침대에 들어가 누워서 또 시간을 떼웠다.
동유럽의 날씨는 정말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늘 우산이나 우비를 챙겨다니는게 좋다. 우린 워낙에 짐을 많이 들고 다니는것을 안좋아하기 때문에 빈손으로 다녔지만.
해가 지고 야경을 볼 시간이 될때쯤, 레트나 공원 안에있는 프라하 레트로놈으로 향했다. 레트로놈은 프라하가 독립을 하면서 평화의 상징으로서 세워진 조형물이다. 레트로놈이 아주 예쁘고 볼만한 것은 아니지만 조형물의 위치가 야경스팟이라고 해서 가봤다. 레트로놈이 있는 곳은 1층과 2층으로 나누어져 있어 2층으로 올라가면 레트로놈이 세워져있고 1층에는 술이나 음료를 파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 실내가 아니라 야외에 위치해 있다 ) 비가 좀 온 뒤라 날씨가 쌀쌀했지만 야경에 맥주를 놓칠 수 없어 각자 한병씩 사들고 레트로놈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 블타바 강 건너 보이는 프라하가 훤히 보이는 자리에 걸터 앉아 한참을 구경했다. 한 커플이 맥주를 들고 1층쪽 절벽에 걸터 앉아있는데 한폭의 그림같아 너무 예뻤다.
야경이 지루해질때쯤 블타바 강이 보이는 방향에서 오른쪽으로 더 깊숙히 들어가봤다. 이곳 저곳 천막이 쳐있었고 다양한 음식들을 팔고 있었다, 아마 주기적으로 이렇게 공원에서 야시장처럼 음식들을 파는 것 같았다. 난 치즈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샀고, 상우는 연어 크레페를 사먹었다. 사람도 꽤 있었고, 야외 테이블에 앉아 각자 한손에는 맥주를 들고 얘기를 하는 모습이 너무 낭만스러웠고, 그런 모습이 부러웠다. 뭐 있나 한번 둘러본 공원에서 이런 낭만을 느끼고,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시간이 좀 늦었던 터라 이미 장사를 접은 집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많아서 오후에 갔던 레스토랑에서 느꼈던 썰렁함은 느끼지 않았다. 한쪽에선 서커스도 하고 있었지만 이미 마지막 공연을 진행중이라 보지는 못하고 주변을 좀 둘러보다 다시 집으로 향했다. 시간은 이미 11시를 훌쩍 넘겨있었지만 집으로 가는 길에 꽤 많은 수의 가족을 보았다. 어린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나와 밤을 즐기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한국이랑은 다른 점이 많아보였다.
이렇게 예상치 못한 곳에서 뜻밖의 낭만을 즐길 수 있는 도시이기에, 더욱 더 매력을 느낀다.
레트나공원은 생각보다 크기 때문에 구석구석 잘 둘러보는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