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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하늘 Jan 22. 2024

게같네

마음도 탈피가 필요해



몇 년 전 군산에서 고대하던 간장게장을 먹었다. 정신없이 우적우적 먹다 보니 밥을 두 공기나 비웠다. 빵빵해진 배를 두드리며 가게를 나와 차에 탔다. “이런 게 행복이지~안 그래?” 친구는 동의한다는 듯이 빙긋 웃음 지었다. 행복한 포만감에 취한 채 새만금으로 드라이브를 갔다. 맑은 하늘과 시원하게 쭉 뻗은 도로, 드넓게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니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노래를 흥얼거리다 어딘가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가만히 그 느낌을 따라가 보니 왼쪽 윗어금니 사이에 게껍데기가 단단히 박혀 있었다. 3초에 한 번씩 혀끝으로 쓸어내며 어떻게든 빼내려고 애썼다. 멋진 경치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온 신경을 쏟아 고추씨보다 작은 그것을 빼내는데 열중했다.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쪼매난 조각 하나가 사람을 미치게 한다. 어찌나 단단한지 빽빽한 틈을 파고들어 빼곡하게 만든다. 그때의 기분은 묘하게 게같다.


요즘 나의 글쓰기도 그렇다.


글을 게시하지  않아서 느끼는 부채감이 마치 이 사이에 낀 게 껍데기 같다. 은은하게 사람을 괴롭힌다. 글을 쓰지 않은 건 아니다. 브런치스토리에 게시하지 못한 글들이 밥 한 공기 속 밥알의 개수만큼 쌓였다. 감감무소식처럼 보였던 이유는 소심해졌고 지독히도 혼자이고 싶었다. 왜 이렇게 연락이 뜸하냐는 친구들의 물음에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며 아무렇지 않은 척했고 약한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얼마나 약해졌는지 가족의 짜증스러운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수업 중에 학생이 하품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감이 땅속으로 추락하기도 했다. 독감이 유행이라 다행이라고 느낄 정도로 안 끼던 마스크를 꺼내어 사람들의 시선을 피했다. 손바닥만 한 얇은 천으로는 날 가릴 수 없기에 일상이 버거워지면 글로 도피했다. 흔들릴 때마다 글로 잡아두려는 탓에 툭하면 메모장을 켰다. 사실 일도 관계도 아무 일 없이 잘 흘러간 터라 나의 문제라 여겼다.


다만 이번에는 자책으로 가지 않고 글로 쓰며 가만히 마음 가는 대로 들여다보기로 했다. 스스로에게 수많은 물음을 던지며 헨젤과 그레텔이 남긴 빵조각을 따라가듯 내 마음이 그리는 지도를 보고 뚜벅뚜벅 걸었다. 과거의 힘든 기억이 마구 떠올라 그때의 수치심을 다시 느꼈다. 사서 고생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개고생을 하는 한이 있어도 이번 기회에 말끔히 떼어내고 싶었다.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이 새드엔딩이라 더 기억에 남는 것처럼 내 머릿속에 멋대로 계속 방영되는 생각을 끄기 위해선 해피엔딩으로 바꿔야 한다. 틈날 때마다 과거로 돌아가 시뮬레이션을 자꾸 돌리며 대본을 완성했다. 메모장에는 2000개의 쪽대본이 써졌고 어떤 장면은 대사를 거듭 수정하느라 100번 가까이 NG를 내기도 했다. 김은숙 작가가 되어 나만의 시나리오를 쓰고 오케이 컷이 될 때까지 대사를 뱉고 뱉었다. 그때의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만 지금의 내가 다시 성숙하게 대처하면서 구겨진 나를 조금씩 펴줬다. 그러다 보니 출구로 가는 빛줄기를 보았고 그 빛을 따라 터널밖으로 나왔다.


 나의 약한 모습을 인정하고 수용해야 출구를 찾을 수 있다. 예전엔 자책하며 스스로를 더욱 어둠 속으로 밀어 넣거나 다른 이의 도움으로 벗어나려고 했다. 이제는 방법을 터득한 것 같다. ‘또 터널이 나왔구나. 큰 길일 수록 터널도 긴 법이지. 그냥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가면 돼.’  이제는 이겨내는 방법을 안다. 출구가 없는 터널은 없다.


오늘은 장장 6개월이 걸린 게고생을 아름답게 포장하려고 오랜만에 책상 앞에 앉았다. 어쩌면 나는 탈피 중이었는지도 모른다.


게를 포함한 갑각류는 성장하기 위해서 탈피의 과정을 겪는다. 탈피를 하다 힘을 못 내서 죽기도 하고 목숨을 건 탈피 후에는 가장 약할 때라 적을 피해 은밀하게 이뤄져야 한다.


마음도 탈피가 필요하다. 어른이 되면 키는 더 이상 자라지 않지만 마음은 계속 자라고 있으니. 비좁은 세계를 벗어나 마음을 키우려면 혼자 조용히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묵은 껍데기를 계속 달고 다닐 순 없다. 탈피를 하려고 그렇게 약해졌나 보다. 모래알만 한 자극에도 그리 흔들렸나 보다.


강해지기 위해 약함을 두려워하지 말자. 단단해지고 싶기에 물러지는 나를 경계했는데 마음이 지금 탈피 중이라고 생각하니 모든 게 이해가 갔다.


나에게 글은 탈피의 흔적이다.

더 크고 단단해진 집게발로 오늘도 한 자 한 자 마음을 다해 쓴다.

게의 작은 조각이 사람을 미치게 할 수 있다면 이 글도 독자의 마음에 콕 박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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