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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하늘 May 03. 2024

글로 죽 쒀서 똥 된다

글로 감정을 배출하는 과정



불안, 우울 같은 감정이 들면 너무 무서웠다. 그 감정을 품고 있는 자체가 두렵고 나를 삼킬 것 같아 친구에게 하소연을 하며 어둠을 나눠야 버틸 수 있는 날이 있었다.


하지만 친구에게 나의 우울을 전한 것 같아 미안하고 다음에 더 잘해주어야겠다는 부채감이 생기고 심드렁한 태도를 보이는 지인의 모습에 칼에 베인 것 같았다. 불안할 때마다 친구를 찾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니어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핸드폰 메모장에 감정을 담기로 했다. 그래서 힘든 감정을 내려놓았다. 그럼 체기가 좀 가셨다.



마음근육이 약해져 소화가 안 되는 날에는 감정을 칼로 다져 죽으로 만들어야 한다. 레시피는 간단한다. 막연한 두려움을 잡아채어 눈물로 구석구석 닦아낸다. 깨끗해졌어도 아직은 소화할 수 없기에 글로 작게 작게 토막 낸다. 감정의 실체를 눈으로 보며 이런 감정이구나 이런 모양이구나 싶어 안심되어 감정과 상황을 직면할 수 있다.


앙증맞게 도막이 난 감정들을 냄비에 때려 넣어 젓는다. 인고의 시간이다. 그러면서 ‘왜 이런 상황에서 이 감정이 들었지? 이 감정은 어디서 왔을까?’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어떤 생각에서 기인했고 그 생각은 나의 경험과 과거에서 왔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게 과거로 가서 나를 만나고 내가 그런 생각을 가졌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고 오는 것만으로도 이미 감정의 죽은 푹 익었을 것이다.


아마 처음은 그런 감정이 뜨거워 입에 대기도 힘들지만 거대한 두려움이 부드럽게 익은 걸 보면, 마음이 누그러진 것만 봐도 효과가 크다.


한 번이 어렵지 하다 보면 식은 죽 먹기가 된다. 소화가 아주 잘 된다. 감정은 이따금 기다리면 배출이 된다. 어떤 감정은 너무 질기고 딱딱하여 변비처럼 남을 수 있지만 결국은 다 배출되기 마련이다.


마음이 힘든 날에는 소화가 잘되는 죽을 먹고 푹 쉬는 게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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