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름 단상
영국에 가기 전 부랴부랴 영어 학원에 등록해서 다녔는데 여느 영어 학원처럼 영어 이름을 만들라고 했다. 학교가 끝나고 학원에 가면 나는 ‘Amy’였다. (사실 무슨 이름이었는 지도 기억 안 난다)
그리고는 영국에 가서 당연히 그 영어 이름을 쓰려고 했는데, 입학 상담을 받다가 우리 가족은 교직원에게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아니, 영어 이름이 왜 필요해? 넌 너의 이름이 있는데!”
우리는 각자 이름이 있는데 왜 영어 이름을 만들까? 우선 그런 ‘영어만 하는 분위기’를 위해서 일 거다. 아니 근데 그러면 한국어 공부하는 외국인은 롤링 스톤스도 ‘굴러가는 돌’로 불러야 하나.
두 번째 이유로는.. 발음하기 어려우니까? 사실 나도 그냥 내 이름을 쓰면서 영국에서 내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 선생님을 찾기 어려웠다. Ji-yoon은 늘 ‘자융’ 아니면 ‘징융’ 아니면 ‘좌이윤느’ 뭐 이런 식이 되었다. 대부분은 1-2달 정도 후에는 정확히 불러주어서 내가 출석 때 엄지 척을 보여주며 맞다고 칭찬해주기도 했는데 한 분은 정말 일 년 내내 어려워해서 나에게 새로운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별명도 기억 안난다)
그래도 그들은 노력했다. 다른 아이들의 이름을 외우듯 내 이름을 외우기 위해 노력했다. 맞게 발음한 건지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어색하게 불리면서도 나는 그게 좋았다. 내 이름을 갖고도 나는 자연스럽게 섞였고 영어도 잘 배웠고 사람들은 내 이름을 기억해주었다. 그러니까 영어 이름은 정말 필요하지 않았다.
의지의 문제다. 이방인을 어떻게 볼 것인가. 어떻게 우리 사회 안에 적응하도록 할 것인가. 이름을 새로 만들기를 권유, 강요하는 사회는 문화가 동화되길 원한다. 너 것을 버려야 우리 것을 취할 수 있어,라고 은연중에 얘기한다. 반면 자신과 가장 오랫동안 함께 있어온 것, 태어날 때부터 수없이 불려 오던 정말 원초적인 존재 -이름-을 간직하라는 건 우리가 너의 것을 공부할게, 이해해볼게, 먼저 노력할게.라는 뜻이다. 그런 사회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