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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niciel Oct 12. 2023

조금 특별한 경험들

어쩌다 보니 그랜드투어

살다 보니 사회에 나와서야 내가 했던 경험 중 몇 가지가 특별한 축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중 하나는 고등학생 때 여름방학 기간 동안 뉴질랜드 북섬에 있는 한 여자 고등학교로 3주 동안 단기어학연수생처럼 다녀온 일이었다.


당시 내가 살았던 논산에서는 이런 것이 유행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곳은 남고만 3개고 여고는 2개 밖에 없다. 여고에서는 방학 때마다 이 같은 단기 해외 연수 프로그램을 진행 했는데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뉴질랜드 북섬으로 갈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었고, 다른 학교에서는 뉴질랜드 남섬으로 가는 것과 일본으로 홈스테이를 갈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아마도 유명한 것이라고는 논산훈련소라든가 조금 더 이야기하면 딸기 뿐인 이 시골 동네에서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무언가 하나 더 해주고 싶은 부모님들의 열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프로그램을 지금도 진행하고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12년이 지나서 돌이켜보았을 때 이때의 경험이 나의 많은 부분을 재구성 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지금도 무척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어제 무얼 먹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12년 전에 뉴질랜드에서 처음으로 먹었던 감자튀김의 맛은 아직도 기억이 날 정도다. 이국에서의 생활 경험은 나의 세계관에 균열을 내었고 나는 한번 깨졌고, 그다음 더 확장될 수 있었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런던 내셔널 갤러리와 협력해 진행된 전시회에서 유독 나의 뇌리에 각인 된 테마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랜드 투어'였다. 그랜드 투어는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종교 전쟁이 마무리 되고 나서 평화롭고 자유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시작되었던 영국인들의 유학 열풍이었다.


대륙의 변방에 위치한 섬나라에서 주류에 뒤처져 있다는 열등감에서부터 시작된 이 유학 열풍은 유럽의 다양한 지성들이 교류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오늘날 '하나의 유럽'이라는 개념을 탄생하게 한 초석이자 대단한 문화적인 현상이었다.


이런 엄청난 문화적인 현상이 왜 어릴 적 배웠던 교과서에는 다루어지지 않았던 것인지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고등학생 때 그 잠깐의 해외연수와 이어서 대학생이 되어 교환학생 신분으로 혼자 야심 차게 떠나 온갖 고생을 다하면서 치열하게 살아 보았던 프랑스에서의 1년이 내 나름의 그랜드 투어라면 그랜드 투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나의 세계관을 스스로 부수고 확장해 나가는 경험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도 돌아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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