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niciel Jun 15. 2021

63. 핫플레이스 주민의 빨래 원정기(2)

핫플에서는 빨래도 핫하게

기대했던 것과 달리 내가 사는 곳과 아주 가까운 곳에는 빨래방이 많이 없었다. 그렇지만 조금 걷기를 감수하면 어느 정도의 시설 일지는 짐작하기가 어려웠지만 저렴하게 빨래를 할 수 있는 코인 빨래방이 한 두어 군데 있었다. 하지만 빨래를 시작하면 빨래를 돌리고 말리는 데에 한두 시간은 기다려야 하지 않는가? 그래서 기왕에 빨래를 하러 원정을 떠날 거라면 조금 더 문화적인 공간에 가고 싶었다고 핑계를 대본다.


그러던 나는 해방촌에 위치한 재미난 빨래 카페를 발견하게 되었다. 약간의 귀찮음을 감수한다면 핫플레이스의 핫한 빨래 카페를 가볼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집에서 편하게 빨래하기 글러먹어 빨래 바구니를 들고 밖에 나온 사람이 조금 걷는다고 대수겠는가 마찬가지로 버스를 타는 것도 상관없었다. 이번 기회에 기분 전환도 하고 싶었다.


나는 커다란 빨래 바구니와 빨래를 기다리는 동안 읽을 책을 한 권 들고 길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근처 정류장에 내린 다음에 해방촌 언덕길을 올랐다. 이곳의 언덕길도 만만치 않았다. 힘들었지만 얼마간 지도를 따라 걷다 보니 내가 찾던 카페가 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더 쉬운 방법이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지리를 잘 몰랐던 나는 또 지도 앱에서 가르쳐주는 대로 버스를 타고 열심히 걸어서 목적지로 향했다. 내가 빨래 카페에 다녀간 날은 작년 이맘때였는데 그날의 날씨도 무척 덥고 햇볕이 쨍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빨래를 하기에는 아주 좋은 날씨였다.


내가 방문했던 곳은 모 방송 프로그램에 나오기도 했던 곳이었다. 건물 외벽부터 새하얗게 칠해져 있던 이 카페는 내부도 전체적으로 깨끗한 화이트톤의 인테리어를 갖추고 있었다. 마치 여기가 빨래하는 곳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느낌. 그리고 그 중간에 무심하게 놓인 녹색 뱅크 스탠드와 레트로 한 녹색 스트라이프 의자가 왠지 60년대 미국 느낌을 주었다.


그 녹색의 레트로 한 아이템을 제외하면 사실 아주 모던한 분위기였는데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청록색이 그 시절 미국에서 유행했던 색깔이어서 나도 모르게 떠올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원래 목적이었던 빨래를 하기 위해 사장님께 말씀드려 빨래 비용을 결제하고 드럼 세탁기에 나의 묵은 빨래를 색깔 별로 분류해서 몽땅 집어넣었다. 방문한 시간대에 손님이 별로 없어서 혼자 두 대를 사용할 수 있었다.


세탁기가 있는 곳에는 이렇게나 많은 세탁세제와 섬유유연제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빨래를 할 때 사용하는 세제는 그저 생필품이니까 아무렇게나 제일 싼 것을 사다가 쓰고는 했었는데 이곳에서 이런 좋은 세제는 처음 써보았다.


세탁기가 있는 공간과 카페 공간은 문을 하나 두고 분리가 되어 있어서 세탁기의 소음이 크게 들리지는 않았다. 나는 음료를 하나 주문하고 빨래가 다 될 때까지 테이블에 앉아서 미리 준비해 간 책을 읽었다. 오랜만에 새로운 공간에서 책을 읽고 있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책을 읽다가 빨래가 다 되어서 이번에는 건조기에 던져 넣고 카페 내부를 슬쩍 구경했다. 카페 한 켠에는 세탁 세제뿐만 아니라 섬유향수와 같은 빨래 관련 아이템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어디 어디 유명한 곳과 콜라보도 많이 하는 것 같았고 단순한 빨래터가 아니라 여러 가지를 시도하고 있는 것 같아서 인상적이었다.


향을 좋아하는 나는 또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샘플 섬유향수를 뿌려보았다. 향이 너무 좋았다. 아직은 세제까지 프리미엄으로 쓸 만큼 넉넉한 주머니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가격을 보고는 슬쩍 내려놓았지만 아쉬웠다. 좋은 세제 하나로 지루한 집안일 중 하나였던 빨래가 조금 더 기분 좋은 경험으로 바뀌는 듯하였다. 언젠가는 세제까지 탐닉해보리라.

매거진의 이전글 62. 핫플레이스 주민의 빨래 원정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